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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로운 Oct 27. 2024

project 3. 부모님과 함께 일하기

34년 노포에서 발휘되는 팀워크





여기 삼겹살 2개, 소주 하나 주세요!”
“네, 삼겹살 두 개요! 3번에 삼겹살 2개 추가 있습니다-”




최근 나는 부모님 가게를 도와드리고 있다. 우리 부모님은 30년 넘게 같은 자리에서 고깃집을 하셨다. 투박한 정이 묻어나는 삼겹살 노포다. 돌이켜보면 나와 오빠는 이 삼겹살집 덕분에 학교를 다녔고, 학비도 대고, 졸업 후엔 사회에 나올 수 있었다. 어렸을 때는 가게에서 일하는 게 부끄러워 뒷문으로 몰래 다니기도 했지만, 이제는 밥벌이의 고단함을 알기에 시간 날 때마다 부모님을 돕는다.



우리는 꽤 잘 맞는 3인 팀이다. 엄마, 아빠, 나. 작지만 효율적인 가족팀이다. 축구로 치면 엄마는 주방과 홀을 연결하는 미드필더, 아빠는 돌판을 지키며 결제를 담당하는 수비수, 나는 쟁반을 들고 뛰어다니며 서빙을 맡는 공격수다. 나는 가득 쌓인 그릇을 번쩍 들어 주방에 들여놓은 뒤 다시 테이블 사이를 미끄러지듯 돌아다닌다.



“사장님, 여기 돌판 좀 닦아주세요!”
“네에- 갑니다!”



나는 테이블을 빠져나오며 아빠에게 맡기고, 아빠는 능숙하게 눌어붙은 기름을 긁어내며 판을 닦는다. 고기는 기세다. 먹다가 불이 끊기면 안 되니 중간중간 돌판을 바꿔줘야 한다. 엄마는 주방에서 고기를 썰고 이모님과 함께 밑반찬을 준비한다. 나는 서빙하러 다시 번개처럼 움직인다.



가게 일이 끝나면 우리는 ‘작전 타임’을 갖는다. 오늘 장사는 어땠는지, 내일을 준비하기 위해 필요한 재료는 무엇인지 점검하는 시간이다. 최근 화두는 깨진 돌판이었다. 몇 개는 새것으로 교체하기로 하고 마무리를 짓는다. 그런데 이렇게 팀워크를 발휘하며 일할 때마다 나는 부모님이 얼마나 고생하시는지 새삼 느낀다.



하지만 이 고된 일은 단순히 육체적으로 힘든 것만이 아니다. 특히 부모님처럼 30년 넘게 자영업을 이어오신 고령 자영업자들에게는 경제적인 어려움과 제도적 장벽이 이중으로 다가온다. 높은 인건비와 물가 상승은 자영업자들에게 큰 부담이다. 예전에는 홀에 한 분, 주방에 한 분씩 이모님이 더 계셨지만 이제는 인건비 부담으로 홀로 버티는 날이 더 많다. 주변 상인들과 이야기를 나눠 보면, 다들 사정이 비슷하다. 물가는 오르는데 손님은 줄고, 대표적인 음식업 폐업률이 20%를 넘는다는 통계가 그들의 이야기를 증명한다.



“그럼 정부 지원을 받으면 되지 않냐”는 말이 쉽게 나올 수 있다. 실제로 정부는 자영업자를 위해 여러 대출과 지원 사업을 제공하고 있다. 그런데 여기서 현실적인 문제가 생긴다. 부모님 같은 고령 자영업자들은 이런 지원에 접근하기가 어렵다. 대부분의 정보가 온라인으로 전달되고 신청 역시 인터넷이나 모바일 환경을 통해야 하기 때문이다. 우리 부모님은 스마트폰은 쓰시지만 문서 작업은 힘들어하신다. 컴퓨터도 마찬가지다. 물론 지금은 내가 도와드릴 수 있지만, 홀로 가게를 운영하는 고령 자영업자들은 지원을 받고 싶어도 방법을 몰라 포기하는 경우가 많다.



부모님도 예전에는 정부 지원이나 지자체 혜택에 대해 전혀 몰랐다. 내가 도와드리기 전에는 혜택이 있는 줄도 모르고 지나친 적이 많았다. 한전에서 제공하는 지원 사업에 대신 신청할 때는 구비 서류와 복잡한 절차에 막혀 엄청난 시간이 걸렸다. 바쁘게 일하는 고령의 사장님들이 서류 하나를 받으러 가게 문을 닫고 공공기관을 돌아다닐 수 있을까?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그럼 온라인으로 하면 되지 않냐”라고 물을 수 있지만, 고령 부부가 사는 집에는 컴퓨터도 없고, 인터넷이 있어도 익숙하지 않다. 부모님은 클릭 한 번에도 긴장하신다.



이런 상황을 보면, 고령 자영업자들이 처한 현실이 얼마나 취약한지 절감하게 된다. 단순히 더 많은 지원이 필요하다는 문제가 아니다. 지원이 있어도 그 혜택을 실질적으로 누릴 수 있는 접근성이 중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정책은 허울만 좋은 말에 그치고 만다. 이와 더불어 부모님의 나이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런 강도 높은 일을 언제까지 계속하실 수 있을까? 몸이 힘들어질수록 가게 운영이 점점 더 어려워진다. 젊은 나도 몇 시간만 일하면 온몸이 쑤시는데, 부모님이 계속 고기를 썰고, 돌판을 닦으며 버티는 것이 마음에 걸린다.



부모님의 미래를 생각하면 고민은 더 깊어진다. 은퇴 후 생활비가 충분하지 않은 상황에서, 두 분이 연금만으로 살아가기는 어려울 것이다. 물론 자식들이 적극 도와드리면 좋지만 부모님 은퇴 후 생활을 온전히 책임질 수 있는 가정이 얼마나 될까? 이건 분명 우리 가족만의 문제는 아닐 것이다. 고령화되는 사회에서 노령 인구의 은퇴 후 문제는 이미 커다란 사회적 이슈다.



노인들이 안정적으로 재취업할 수 있는 기회가 많아지고, 연령에 맞는 일자리가 늘어나야 한다. 또, 복잡한 절차 없이 자영업자들이 쉽게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시스템이 필요하다. 단순히 인터넷 환경을 개선하는 수준이 아니라, 직접적인 대면 지원이나 맞춤형 서비스가 뒷받침되어야 한다. 사회가 이들을 위해 조금 더 세심하게 배려할 수는 없을까?




물론 그때까지는 내가 부모님 곁에서 열심히 한 도와드리겠지만. 가게에서 부모님과 함께 고생하는 순간들이 힘들지만 소중하다. 내가 들고 나르는 그릇 하나하나에 부모님의 삶이 담겨 있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더 나은 세상이 오길 바란다. 부모님과 같은 자영업자들이 조금 더 수월하게 일하고, 조금 덜 걱정하며 살 수 있는 세상 말이다. 부모님과 같은 분들이 좀 더 편안하게 웃을 수 있는 날이 오기를. 이 삼겹살집이 앞으로도 우리 가족의 자랑이 되길, 그리고 우리가 서로의 힘이 되어 줄 수 있길.




“여기 소주 하나 추가요!”

“네엡-!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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