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은 싸우면서 큰다
“그건 당신이 가라고 해서 간 거잖아.”
“가든 말든 마음대로 하라고 했지, 누가 가라고 했어요? 어머, 이 사람 또 내 탓을 하네.”
“누가 탓을 한다고 그래?”
며칠 전, 아빠가 다녀오신 상갓집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아침부터 두 분이 아웅다웅하신다. 잠결에 들려오는 대화를 듣고 살짝 방문을 열어 거실을 스캔해 본다. TV를 보고 계신 엄마와 신문을 보시는 아빠는 아무 일도 없다는 듯 조용하다. 싸움은 끝났지만, 그 여운이 공기 중에 남아 발바닥이 시릴 정도다. 적당히 거리를 유지해야 할 타이밍을 직감하며, 아침 인사만 남기고 씻으러 향한다.
서당개 3년이면 풍월을 읊는다고, 부모님 댁에서 더부살이한 지 1년쯤 되니 부모님 표정만 봐도 어떤 상황인지 대충 파악이 된다. 오늘은 아무쪼록 쉽게 끝날 것 같지 않다. 원래 싸우면 오래 산다는데, 우리 부모님은 파이팅 넘치게 싸우셔서 그런지 여전히 그럭저럭 금슬 좋게 사신다. 나는 이제 그 싸움의 한가운데에 끼어든 세 번째 선수다. 선수가 한 명 더 늘어나니 싸움은 더 다각화되었고 나는 그 안에서 내 역할을 찾은 듯하다.
얼마 전 두 분이 아침부터 가게 문제로 다투셨을 때도 그랬다. 엄마는 아빠가 요즘 일을 안 하고 술만 늘었다고 화가 잔뜩 나셨다. 아빠는 나름대로 억울한 눈치였다. 분위기가 점점 냉랭해지자, 이때다 싶어 내가 나섰다.
“그럼 이렇게 하시죠. 이번 주말 저녁은 제가 계속 있을 테니까 두 분이 하루씩 쉬시는 걸로! 제가 또 2인분 하잖아요? 하핫.”
뜻밖의 제안에 엄마와 아빠는 동시에 잠깐 멈칫하셨다.
“... 참나, 가게 일도 잘 모르면서 네가 어떻게 내내 있니? 몰라서 안 돼. 우리가 가야지.”
엄마는 의아한 표정을 지으면서도 화가 누그러진 기색이었고, 아빠 역시 입가에 살짝 웃음이 돌았다. 차갑던 분위기가 한결 부드러워짐과 동시에 싸움은 불이 붙기도 전에 싱겁게 끝이 났다. 그리고 그 주말엔 셋이서 파이팅 넘치게 가게에서 일을 했다. 그 이후로 두 분이 한동안 같은 문제로 다투지 않으셨다. 이제 나에게도 '끼어듦'에 기술이 생긴 것이다.
어렸을 때 나는 두 분이 다투실 때 한쪽 편을 들다가 기름에 불을 붓거나, 방문을 쾅 닫고 들어가 되려 더 날카롭게 굴었다. 하지만 이제는 되도록 중립을 지키며 상황을 소강상태로 만드는 데 집중한다. 싸움이 한창일 때 적절히 끼어들어 서로의 흥분을 가라앉히기도 하고, 갈등이 해소된 뒤 각자의 이야기를 들어주기도 한다. 물론 중간에 어설프게 끼어들면 역효과만 난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중요한 건 적재적소, 적절한 타이밍에 끼어들어야 한다는 사실. 나이 들어 좋은 점 중 하나는 자연스럽게 ‘낄끼빠빠’의 기술을 터득하게 된 것이다.
가족 간의 싸움은 단순히 갈등 그 이상의 의미가 있다. 싸움이란, 특히 오래 함께 살아온 사람들 사이에서는 순간의 감정이 오랜 시간 쌓여 온 불만과 얽히며 복잡하게 흘러간다. 그래서 다른 이의 눈에 사소해 보이는 다툼조차 당사자에게는 더 크게 다가와 큰 상처를 남길 수 있다.
이때 적절한 중재는 이 감정의 폭발을 완화하고, 갈등이 점점 깊어지는 것을 막아주는 역할을 한다. 서로의 입장에 집중하느라 놓치고 있던 것을 제삼자의 시선에서 짚어주거나, 싸움의 흐름을 살짝 틀어주는 작은 개입이 큰 차이를 만들기도 한다. 사실 이건 단순히 싸움을 그치게 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갈등이 더 큰 파장으로 이지지 않도록 돕는 애정 어린 행위다.
우리는 싸우면서도 결국 함께 살 수밖에 없다. 그렇기에 다투더라도 최대한 서로에게 상흔을 남기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두 분을 오랫동안 곁에서 지켜본 나는 갈등의 흐름을 적절하게 짚어내고 감정이 폭발하는 중요한 통로를 차단하는 역할을 맡는다. 이 싸움에서 나는 관중이자 중재자이며 때로는 적절히 참여해 서로의 관심을 분산시키는 중요한 임무를 맡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화목한 가정을 위해 구성원으로서 내가 할 수 있는 최소한의 배려이며 나아가 가족끼리 더 잘 이해하고 협력하기 위한 과정이다.
어렸을 때 엄마에게 물은 적이 있다.
“엄마, 아빠랑 왜 그렇게 싸워? 그럴 거면 차라리 헤어지지.”
잠시 멈칫한 엄마는 이내 담담하게 대답하셨다.
“살려고 싸워, 살려고. 그나마 네 아빠랑 나랑 싸워가면서 여기까지 온 거야. 살려고 싸웠어. 더 잘 살려고.”
그때는 이해할 수 없었지만, 이제는 알 것 같다. 정반대의 사람들이 서로 이해하며 살아가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가정을 지키며 사는 것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 지를. 서로 다투고 화해하는 동안, 싸움의 삼각관계 속에서 서로를 이해하며 조금씩 더 단단해지고 있다는 것도.
사진 Unsplash Dan Counsel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