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들은 왜 반대로 말할까?
“아니, 난 안 먹어. 너 먹어”
“아이고, 필요 없어, 너 필요한 거 사”
“아니, 나는 괜찮은데 너 때문에 그러지”
엄마들은 왜 항상 ‘예스’를 '노’라고 할까?
나는 가끔 이것이 ‘모든 엄마들의 공통된 특징이 아닐까’ 생각한다. 지인들과 이야기를 하다 보면 거의 모든 어머니들이 비슷한 성향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얼마 전 친구는 엄마 생신에 ‘뭐 필요한 거 없냐’고 물었더니 ‘아-무 것도 필요 없다’고 하셨단다. 고민 끝에 ‘현금 선물’ 한아름 들고 갔더니 너무나 좋아하셨다고. 지금도 종종 찾아뵙는 친구 어머님은 내가 항상 뭘 사 들고 가면 ‘아이고, 뭐 이런 걸 사와’ 하면서도 얼굴은 발그레한 소녀처럼 기뻐하신다.
몇 년 전, 여름에 더위가 한창일 때였다. 엄마는 좀처럼 에어컨을 틀 생각이 없었다. “엄마, 에어컨 좀 켜자. 너무 덥잖아!”라고 말했더니 돌아온 답은 "아니, 안 더워. 바람 선선하니 좋은데 뭐." 그런데 그때 엄마의 목에는 휴대용 선풍기가, 한 손에는 또 다른 미니 선풍기가 들려 있었다. 그럼에도 여전히 이마엔 땀이 송골송골 맺혀 있었지만, 그녀는 기어코 '갱년기 때문'이라며 '에어컨을 틀자'는 내 말에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 뿐이었다. 결국 몰래 에어컨을 켰고, 엄마는 “시원하긴 하네” 하며 피식 웃으셨다. 나는 생각했다.
역시, ‘엄마의 '노'는 '예스'구나’.
이뿐만이 아니다. 엄마는 가족끼리 외식을 가면 늘 피날레를 장식하는 후발주자가 된다. 그녀는 항상 가족들을 챙기느라 본인 몫을 챙길 틈이 없다. 엄마가 식구들을 챙기느라 고기를 몇 점 못 드신다는 걸 알기에 언제나 추가 주문을 시도하지만 매번 그녀의 강력 수비로 무산되고 만다. “더 드실 거죠?”에 대한 엄마의 대답은 늘 ‘아니요’다.
아빠는 ‘눈치 없는 육식파’라서 빠르게 배를 채운 뒤 치고 빠지는 편이고, 오빠는 사람 잘 챙기고 따뜻한 ‘다정한 고기파’지만 아기를 보느라 온 정신이 팔려 있기에 결국 엄마를 챙길 사람은 나 밖에 없다. 하지만 내가 고기를 구워 엄마 접시에다 열심히 가져다 놓으면 그녀는 더 빠르게 다시 내 접시로 토스하고 만다. 결국 '고기의 빈익빈 부익부'는 항상 실현되고, 고기가 수북한 건 언제나 그녀가 아닌 나의 접시다.
이런 경험이 몇 번 쌓인 후로 나는 엄마의 "아니"를 전부 "응"으로 해석하며 살아왔다.
"엄마, 이거 먹을까?" "아니, 난 괜찮아." -> "그래, 먹자."
"엄마, 저거 필요해?" "아니, 없어도 돼." -> "필요한데 굳이 사주지 않아도 돼."
“엄마, 더 드실래요?” “아니, 안 먹어.” -> “그러든가”
이렇게 거의 직감처럼 엄마의 '아니'를 '예스'라고 해석하고 살아왔건만. 최근 혼란스러운 일이 터졌다. 엄마 생신이 다가와서 오빠와 비밀스럽게 가족 여행을 계획했다. “엄마, 이번에 가족여행 갈래요?”라고 했더니, 엄마는 역시나 “아니, 나는 안 가고 싶어. 그냥 너희 끼리 다녀와.”라고 하셨다. 평소처럼 “에이, 그러지 말고 가자~” 하고 설득했는데, 엄마는 단호하게 “진짜 가기 싫다” 고 하시는 게 아닌가. 나는 이번에도 ‘막상 당일이 되면 못 이기는 척 가시겠지’하고 여행을 짰다. 그런데 여행 전날, 엄마가 정말 '절대, 절대 가지 않겠다'라고 하시는 게 아닌가?
결국 가족 누구도 그녀의 고집을 꺽지 못했고 우리는 ‘엄마 없는 엄마 생신여행’을 떠나야만 했다. 아빠와 나, 오빠네 가족만 덩그러니. 물론 귀여운 조카 덕분에 즐거운 가족여행을 보냈지만 그녀의 빈자리가 사뭇 크게 다가왔다. 집에 돌아가니 다행히 엄마는 “집에 혼자 있으니 너무 편하더라. 너희 덕분에 좋은 생일 보냈다”며 좋아하셨다. 그러면서도 “가서 조카는 어땠냐, 아빠는 잘 드셨냐” 질문을 쏟아냈다.
가끔 엄마는 복잡하다.
엄마의 “아니요”는 종종 “예스”이기도 하고 때로는 정말 ‘아니요’ 일 때도 있다. 따라서 나는 상황에 맞게, 그녀의 기분에 맞춰 엄마의 ‘아니요’를 해석해야 만 한다. 하지만 그녀의 ‘아니요’에도 공통된 것이 하나 있었으니 그건 바로 ‘가족에 대한 사랑’이다. 그녀는 언제나 자식을 먼저 생각하고, 늘 우리에게 무엇 하나라도 더 챙겨주려고 한다. 엄마의 ‘아니’는 때론 진짜 ‘아니’이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자식들이 더 행복하길 바라는 배려에서 나오는 단어다.
엄마가 “필요 없어”라고 말할 때는, ‘나보단 네가 쓰는 게 더 중요해’라는 뜻이었고, “난 안 먹어”라고 할 때는 ‘네가 배부르게 먹는 게 좋으니 난 괜찮아’라는 마음이었다. “나는 괜찮아”는 단순히 괜찮다는 의미가 아니라 ‘너희만 좋으면 나는 정말로 괜찮아’라는 뜻이었다.
이제는 엄마의 “아니요”를 단순히 거절로 해석하지 않는다. 대신 그 말속에 담긴 사랑과 배려의 무게를 생각하게 된다. “아니요”라는 말 뒤에 숨겨진 수많은 “그래, 네가 좋다면”이라는 마음을 이해하게 된 것이다. 그러고 보니, 엄마의 ‘아니요’는 결국 한없는 “예스”와 닮아 있었다.
벌써부터 엄마의 내년 생신이 걱정이다. 다가오는 그녀의 생일, “아니요”는 “예스”일까 “노”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