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복 입고 한국말하면 창피해요...
"기사님 광화문으로 가주세요."
택시를 탔다.
광화문 세종대왕 동상과
이순신 동상 앞에서
사진을 찍기 위해서이다.
택시 기사님께서
나에게 말한다.
"광화문에선 한국인이
한복 입고 돌아다니는 거
부끄러우니깐 지나다니면서
한국말하지 마세요."
기사님께서 하시는 말씀은
일상생활에서
한복을 입지 않기 때문에,
광화문에서 한복 입고
활보하는 것이
좀 어색하다는 말을
하고 싶으셨을 것이다.
그런데
그것이 진짜 부끄러워서
부끄럽다고 말씀하신 것이라면
그렇게 말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 참으로
안타깝기 그지없었다.
그렇다.
나는 지금 한복을 입고 있다.
아키타에 있을 때
내 룸메이트였던
란이 한국으로
여행을 왔다.
그 기념으로
한복 촬영을
하기로 한 것이다.
그런데
한복에 경복궁 배경은
뻔한 패턴이니
‘우리는 남들과는 다르게 찍어 보자’
라는
의미로
광화문으로
향했다.
경복궁이
전통적인 한국을 대표한다면
광화문은
현대적인 한국의 표상이다.
그래서
광화문에서의
한복 촬영은
뜻깊었다.
왜냐하면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결과물이
나올 테니까 말이다.
아저씨 말대로
광화문에 도착하니
사람들이 이곳에서는
한복이 어울리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우리를 쳐다본다.
처음에는
그 시선들이 부담스러웠는데
시간이 지나다 보니
한복을 입은
우리도 적응을 했고
우리를 지켜보던 사람들도
우리 모습에 적응을 했다.
무엇이든지
처음 하기가 어렵지
몇 번 반복하다 보면
그 이후로는 특별했던 것이
아무것도 아닌 일이
되어 버린다.
한참 사진 촬영 삼매경에
빠져 있는데
나를 향한
괴성에 깜짝 놀랐다.
"빨갱이 꺼져!"
하필 내가 빨간 한복을 입고 있어서
나한테 소리를 지르는 줄 알았다.
광화문에 가면
여러 가지 편 가르기 운동이
횡행하는데
그중에 한 목소리가
내 귀에 들어온 것이다.
공식적으로
이 땅엔 빨갱이가
존재하지 않는다.
1948년 남북이
각각의 정부를 수립한 후
공산주의자들은
모두 북쪽으로 넘어갔다.
그 이후에
빨갱이라고 불리는 사람들은
보수주의자들과 정치색이
다른 사람들일 뿐
진짜 빨갱이가 아니다.
그런데
아직까지도
빨갱이라는 용어를 써가면서
이념 논쟁을 하고 있는
사람들을 보면
1950년대의 한국을
보고 있는 것 같다.
현대적인 한국을 담기 위해
광화문에 갔지만
아직도 그곳엔
과거의 한국이
공존하고 있었다.
자세히 보니
광화문은 경복궁만큼이나
한복을 입고 돌아다니기에
적절한 장소였다.
한복이
창피하다고 이야기하시던
택시 아저씨는
한복 이야기가 끝나자
뒤에 앉아 있는 내 친구를
욕하기 시작한다.
정확히 이야기하자면
일본에 대한 욕이다.
그 얘기에
형식적인 맞장구를
쳐드리긴 했지만
문득 자존감은 바닥이면서
자존심만 센
우리 민족의 모습이 보였다.
한복이라는 자기 문화에
자긍심도 없으면서
'내가 너보다 잘났으니 너는 잘못됐어.'
라고
말할 줄만 아는
우리 민족 말이다.
콩고에서 온
조나단이라는 학생이
‘MBC 라디오 스타’에
출연한 적이 있다.
내가 지켜본 조나단은
쾌활한 성격의 소유자로서
한국사회에 뛰어난 적응 능력을
가진 친구였는데
그가 한 말 중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그가 한국인들에게
남기는 당부였다.
"한국인들은 어떤 나라 사람들보다도
자국 문화에 대해
높게 평가해주는 말을
듣고 싶어 하는 경향이 강한데
한국인 스스로 한국 문화에
자긍심을 느끼는 것이 중요하지
그것을 꼭 외국인에게
인정받으려고 안 했으면 좋겠다."
그의 말이 맞다.
남의 인정보다도
더 중요한 것은
나 스스로에 대한
나의 인정이다.
내가 나를 인정하면
내 앞사람이 하는 말은
대수롭지 않게 된다.
또 내가 나를 인정하면
'내가 너보다 잘났네.‘라고
나를 타인에게 강하게
어필할 필요도 없고
’ 나는 옳고, 너는 틀렸어.'라며
타인과 싸울 필요도 없어진다.
이렇게
우리 개개인이
스스로를 인정하면서
만족스럽게 살아가다 보면
광화문에서의
'빨갱이 꺼져'와 같은
이념 논쟁도
점차 사라지게 되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