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는 월드컵 우승국입니다.

이방인이 그 나라의 떠들썩한 축제를 지켜볼 때...

by 미쓰양푼이

프랑스 아트사커

선두 주자인

지단 선수가 뿔이 났다.


갑자기

상대팀 이탈리아 선수를 향해

박치기를 한다.


알아듣지는 못하지만

야유와 같은 소리가

로마 레스토랑에 울려 퍼진다.


지단은 퇴장을 당했고,

승리의 여신은

이탈리아와 한 팀이 되었다.


로마 시내는

국기를 들고 나온

사람들로 북적인다.


그들이 신나니

덩달아 나도 신난다.

마치 우리나라가

월드컵에

승리한 것처럼 말이다.




2002년,

광화문에서 한국의 월드컵

첫 승리에 기뻐하며

모든 사람과 하나가 되었던

추억이 새록새록하다.


광화문에서 명동까지

승리의 행진을 하던

많은 사람들이

'Be the Reds' 옷을 입었던

외국인과 하이파이브를 하던 순간까지도

아직 내 머리에 캡처되어

생생하게 남아있다.



2006년,

로마의 한 광장에서

이탈리아의 젊은 장정 5명이

'외국인인 나'를 중심으로

원을 만들며 환호한다.


승리의 기쁨을

함께 하자는 제스처였다.


우리는 서로의 언어를

알아듣지 못하지만,

같이 방방 뛰며

소리를 지르는 것만으로도

소통이 되고 즐겁다.


덕분에 머리에 쓰고 있었던

선글라스를 잃어버려서

숙소로 돌아온 후 의기소침해지긴 했지만

며칠 동안 계속 이어지는

월드컵 승리 열기는

내 관광의 활력소로

자리 잡았다.



2018년,

또다시 우리나라에서

국제 행사가

개최되었다.


이번엔

동계 올림픽이다.


많은 사람들이

자국에서 열리는

행사에 즐거워했지만,

나는 더 이상

그런 것으로부터

기쁨을 느끼지 못한다.


이제는

대한민국이

월드컵 우승국이 된다고 해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개막식을 TV로 시청하는데

기쁨은커녕

눈살이 찌푸려졌다.



땅콩 회항으로

국가의 대역 죄인이 되었던

한 기업인이



평창 올림픽 유치위원장의 딸이라는

명분으로 성화 봉송에

참여했기 때문이다.



2011년 7월 6일,

남아공 더반에서

있었던 일이다.


TV 채널 어느 곳을 돌려보아도

2018년 동계올림픽 개최지가

'평창'이라고 발표하는

장면만 나올 뿐이다.



어떤 프로그램은

그 순간만을 편집해서

수차례 반복해서 보여준다.


나는 당시 기자 지망생으로

뉴스를 챙겨보던

사람이었는데

그 장면이 참 불편했다.


올림픽 유치에 대해

반대하는 입장을

가진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평창 올림픽 유치를 위해 이명박 정부가,
IOC 위원장이었던 삼성의 이건희 회장을
1인 특별 사면한 것은 정당하지 못하다.’
고 생각했다.


https://m.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396089.html?_fr=gg


내 생각에

뿌리 깊게 박혀 있었던 논리는

다음과 같다.


‘법치국가로서
품격을 잃은 나라에겐
국제적인 행사를
개최할 자격이 없다.’



민주주의 국가로서의 원칙과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실용성의 대립이

이런 아이러니한

상황을 만들어 냈다.


결국

경제적 이익이라는 명분으로

2018년 평창 올림픽은

순탄히 개최되었고

그 대회가 우리에게

남긴 것은 이익이었는지

손해였는지에 대한

의견은 분분하지만

이제는 그런 것에 흥미가 없다.


언론인 지망생으로서

갖고 있었던

세상에 대한 관심은

평창이 올림픽 개최지로

선정되던 그날

물거품처럼 싹

사라져 버리고 말았다.


내가 기자가 되고 싶었던 이유는

‘사회의 정의 실현 혹은 기득권층 견제와
같은 저널리스트로서의 이상’


을 실현하고 싶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나도

민주주의의 이상보다

자본주의의 이익을 더 중요시하는

어쩔 수 없는 대한민국의 국민이다.


나 역시도

나라는 사람을

신뢰할 수 없었다.


언론인으로서

권력을 잡는 순간

이상만을 추구할 수 있는

사람인지

가히 의심스러웠다.


내 미래를 상상해 봤을 때

그려지는 그림은

두 가지였다.


첫째, 원칙을 고수하며

배고픔에 허덕이거나


둘째, 풍요로움을 위해

권력과 결탁하거나


둘 중에 하나였다.


그렇게 나는

기자에 대한

꿈을 접었다.


'원칙이냐?
실용성이냐?
그것이 바로 문제로다.'


라는 이분법적인

고민 끝에 내린

결정이었다.


그 당시,

나는

외줄 타기만 할 줄 알았지

균형을 지킬 줄 모르는

풋내기일 뿐이었다.


민주주의의 절차적 질서를

무시한 나라가

올림픽을 개최해서는

안 되듯이

언론인으로서

모순 덩어리인

나라는 존재도

기자라는 멋있는 직업에

어울리지 않았다.


결국,

말도 많았고 탈도 많았던

대한민국 평창에서

2018년 동계 올림픽이

성황리에 개최되었다.


나는 마치

이탈리아에서 월드컵 우승을

직접 목격하던 이방인처럼

나라의 떠들썩한 축제를

멍하니 지켜볼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