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마을 운동은 50년 전 이야기

당신은 당신이 속한 집단 안에서 본인을 찾습니까?

by 미쓰양푼이
'일본이 기무치를 만들어
김치의 국제 규격화 자격을 놓고
한국과 전쟁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한국이 김치 종주국임에도 불구하고
일본의 이와 같은 행보가
세계 시장에서의 한국 김치 위상을
크게 흔들어 놓고 있습니다.'


이것은 고등학교 1학년

가정 시간에 시청한

다큐멘터리 내용이다.


"일본은 왜 항상 우리한테
걸림돌이 되지? 너무 싫어!"


일본으로 인해

뼈아픈 역사를

공유하고 있는

우리 반 학생들은

다큐멘터리 내용과

우리의 과거를 연결시키며

다 같이 분노한다.


수업시간이 끝났는데도

반 전체는

계속 그 얘기를 한다.


하지만

집에 갈 때쯤이 되니

교실 어디에서도

김치 이야기는

더 이상 들려오지 않는다.


다음날이 되어서도

마찬가지였다.


솔직히

우리는

한국 김치의

세계적인 위상 따위에

크게

관심이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이야기는

내 인생의 터닝 포인트가 되었다.


중학교 때는

'TV 시청을 좋아하니 방송국 PD가 되고 싶다.'

'논리 정연하게 말싸움을 잘하니까

변호사가 되고 싶다.'

'사회정의를 구현하기 위해

검사가 되고 싶다.'

등등

사회에서 인정받는

직업을 갖고 싶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고1이 되니

사회 발전에 도움이 되는

일이 하고 싶었다.


안 그래도

진로에 대해

고민하고 있었는데,

때 마침

그 다큐멘터리를

보게 된 것이다.


내가 할 일은

저기에 있겠구나 싶었다.


승부욕이 강한 나는

그들에게 항상 당하는 것 같은

한국의 국제적 지위에

분통해했고,

일본보다는 더 나은 나라를

만들고 싶었다.


'지피지기면 백전백승'

그들을 이기려면

그들을 먼저 배워야 했다.


그래서 전공을

일어일문으로 선택했다.


원대한 포부를 안고

진학을 했지만,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는

그때 꾸었던 꿈의 근처도

가지 못했다.


왜냐하면

내가 생각하는 수준으로

'일본보다 더 나은 한국을 만든다는 것'

나 혼자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그리고

일본보다 더 나은

한국을 판단할 기준도

애매모호했다.


이미 커질 대로 커져서

바람을 한 번만 더 넣으면

바로 터져버릴 것 같은

풍선과 같은 꿈을 꾸고 있었으니

실현될 리 만무했다.


20세기에서 21세기로 전환되는

‘시대의 변곡점’ 위에 서보기도 하고,

3차에서 4차 혁명으로 시대가

변하는 것을 바라보기도 하면서

나의 생각들을 고쳐나간다.


어렸을 때는

나 혼자 뭐든

다 할 수 있을 것만 같았는데,


무언가를 배워나갈수록,

더 넓은 세상을 경험할수록,


나라는 존재는

'지구 상의 티끌과 다름없다.'는

것을 느낀다.


내가 이루고 싶었던 목표는

내 깜냥으로 달성할 수 있는

수준의 것이 아니었다.


나는 학력이 극도로 저하되었다고

사회 전체가 걱정해주던

'이해찬 3세대'이자,


6차 교육과정을 마지막으로 경험한

보잘것없는 한 학생일 뿐이었다.


그 크기가 감지되는 순간

'사회인으로서의 겸손'이라는 것을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그러면서 점점

'사회‘와 ’ 개인‘이 분리되어

보이기 시작했다.


일제 강점기의 일본은

한국을 식민지로 삼아

우리 민족을 괴롭혔다.


역사적으로 일본은

한국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겼다.


그렇기 때문에

한국인들은 일반적으로

일본이란 나라를 싫어한다.


하지만

일제강점기의 주체는

정확히 일본 군부였지,

일본 국민이 아니었다.


일본 제국주의 노선은

그 당시의 일본 국민들에게도

고통을 선사했다고 한다.


그동안

‘무조건 일본은 잘못됐어.’ 라며

빠져있던 일반화의 오류에서

벗어나야만 했다.


행위의 주체를

정확히 구별해야만 한다.


신주쿠역 근처를

지나가다 보면

서울역에서 볼 수 있는

거지들을 많이 볼 수 있다.


아무리

우리보다 잘 사는

일본이라 할지라도

거지는 있기 마련이었다.


일본에 가니

"나라는 잘 사는지 모르겠지만
국민들은 그렇지 않아."

라고

말하는 일본인도

만날 수 있었다.


2019년 올해 일본 정부가

한국과의 반도체 무역을 규제 한 덕분에,

서울 여행에 온

내 일본인 친구는

자신이 일본 사람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지나가는 사람들이 뭐라고 할까 봐

눈치를 보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 한국과 일본이

무역 전쟁을 하고 있다고 해서

지나가는 일본인에게

시비를 거는 사람이

없을 것이란 것쯤은

우리 모두가

잘 알고 있는 사실이다.


시대가 확실히 많이 변했다.


일어일문을 전공으로

선택할 당시만 해도


'일본보다 잘 사는 한국을 만들자'


라는 목표로

사회 발전에 기여하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하지만

그 생각은 180도로 바뀌었다.


사회의 전체 발전보다도

더 중요한 것이 있었다.


나의 행복과

내 옆에 있는 사람의 행복.


즉, 개인의 행복이다.


국가 발전이 가장 최우선시되며,


개인의 희생을 강요하던

1970년대 새마을 운동은

벌써 50년 전 이야기이다.


1965년 한일 청구권 협정을 통해

박정희 정권은 경제 발전을 위해

일본에게서 경제적 원조를 받았다.


그 돈은 식민지 지배에 대한

배상적 성격을 공식적으로

드러내진 않았지만,


한일협정 제2 조에서

'양국과 그 국민의 재산, 권리 및 이익과 청구권에 관한 문제가 완전히 그리고 최종적으로 해결된 것을 확인한다'

라는 내용이 합의되어,


암묵적으로

전쟁 피해 배상 문제까지도

해결된 것처럼 되어 버렸다.


하지만

그 돈은 철저히

우리나라 경제 발전에만 사용되었고,

전쟁 피해자들에게는

이 돈이 한 푼도 전달되지 않았다.


힘들어하는 국민들은

다시 힘없는 나라를 위해

희생되어야 했다.


이런 상황에서

무조건 일본만 싫다고

말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왜냐하면

일제 강점기엔

이완용과 같은

매국노들의 역할도

한몫했기 때문이다.


'몇몇의 희생이 있을지라도
사회 전체가 발전하면
당연히 그 사회를 구성하는
개인의 행복은 따라오기 마련이다.'


라는 구시대적인 발상과

맥락을 같이하며

전공을 선택했다.


하지만

다행히 내 전공은


'시대가 변했고,
그 변한 시대에
발맞춰
달리 생각을 해야 한다.'


는 것을 가르쳐 주었다.


사실 내 전공지식이

현재 내 밥벌이에

직접적으로

도움이 되고 있진 않지만,


전공 공부를 하는 과정 속에서

고등교육의 진정한 의미를

찾을 수 있었다.


예전과 다르게


대학 졸업장의 의미가

퇴색되어 가고 있는

요즘 시대에


아직도 갚고 있는

학자금 대출의 빚의 의미를


그래도

찾을 수 있어서

다행이다.



당신은 당신이 속한 집단 안에서 본인을 찾습니까?

아니면 본인을 중심으로 그 집단을 바라봅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