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심의 양가적인 특징을 활용한 훈련이 필요했던 달마시안!
아르바이트를 찾아야 했다.
생활비를 벌어야
하는 것도 있지만,
일하면서 만나는
동료들과 대화하면서
어학 실력을 늘리고 싶었다.
지하철에 비치된
아르바이트 구인 잡지를 보고
일자리를 구했다.
아카사카에 있는
세븐 일레븐이었다.
그런데 하루만 나가고
그다음 날엔
나가지 않았다.
개념 없이
안 나간 것도 있지만
왜 오지 않냐고
연락도 오지 않았다.
그런 일이
비일비재했던 것 같다.
나가보니
내가 원하는 목적을
달성할 수 있었던 곳이
아니었다.
왜냐하면
동료들이
다 중국인 아니면
한국인이었다.
거기서는 그냥 돈만 버는
외국인 노동자가
될 것만 같았다.
나는 돈이 필요했지만
돈만 원했던 것은 아니었다.
배울 것이 있고
내가 발전할 요소가
보이는 곳에서
돈을 벌고 싶었다.
이것은 지금까지도
내가 일하는 곳을 정할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요소이다.
한편으론
이것은
우선순위에서 밀린
돈이
안 모이는 원인이기도 했다.
다른 아르바이트를
해야 했다.
하우스 메이트였던
언니들 중 한 명이
유학원에서 소개해준
일자리를 나에게
연결시켜주었다.
하네다 공항 화물센터에서
하는 일이었다.
하네다 공항은
내가 살고 있었던
동네로부터 편도로
1시간 반 걸리는 곳으로
왕복 3시간을
투자해야 했다.
거리가 멀었던 만큼
교통비도 많이 들었는데
하루에 1300엔,
즉 13,000원을 써야 했다.
큰 비용을
지불하면서 까지
내가 그곳으로
일하러 간 이유는
같이 일하는 사람들이
모두 일본인이기
때문이었다.
그들로부터
내가 모르는
생활 일본어를
배울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그곳을
일터로 정하고
하루하루를
정말 열심히 살았다.
아침에 일어나
두 번 먹을
도시락을 싼다.
오전엔 학교로 가서
수업을 듣고,
공부 좀 하다가
공항으로 먼 여정을 떠난다.
4시쯤 도착해서
도시락을 먹고
5시부터 10시까지
하네다 공항으로
들어오는
화물을 나른다.
퇴근 후엔
전차에서 녹초가 된
일본인들과 다 함께
친구가 된다.
매일매일
도쿄 중심부에 놓인
한국의 2호선 같은
JR 야마노테선을 탔으니
각양각색의 사람들과
마주할 수 있었다.
퇴근길 전차가
더 복잡했기 때문일까?
아니면
전차에서
어린 여성 블루칼라는
일을 하고 나서야
노동의 가치를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인 것일까?
출근길보다도
퇴근길의 기억이
더 강렬하게 남아있다.
시나가와(品川) 역에서
매일 사 먹던 블루베리 크림빵은
잊지 못할 추억이 되었고
시부야(渋谷) 역을
지나가는 많은 젊은이들의 역동성은
내 노동의 상징이 되었다.
그렇게 나는
노동을 통한 삶의 즐거움을
깨닫게 된다.
그것도 그럴 것이
진짜 열정을 발휘해서
일했기 때문일 것이다.
나에게 주어진 업무는
항공화물이 서류와 동일하게
하네다로 도착했는지를 확인하고
그것을 회사별, 지역별로 분류해서
다시 컨테이너에 넣는 작업이었다.
그 프로세스를 크게
세 가지로 나눌 수가 있는데
첫째는
화물 트럭에 있는
짐을 물류센터 컨베이어 벨트로
옮기는 것이다.
두 번째 일은
컨테이너 벨트에 올라가 있는
짐들의 수량과 종류를
체크하는 것이었고,
세 번째는
확인된 화물들을 분류해서
각각 다른 컨테이너에
넣는 것이었다.
즉, 첫 번째와 세 번째 일은
육체적인 힘을 써야 하는
고된 일이었고,
두 번째 일은 서류와 펜만 들고
편하게 할 수 있는 일이었다.
그래서
힘들이지 않고
뺀질 대면서
돈만 벌고 싶다면
충분히 종이와 펜만 들고
왔다 갔다 하면 됐다.
거기에 있는
어떤 누구도
나에게 무거운 짐을
들어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은 없었다.
하지만
나는 종이와 펜을
들지 않았다.
가벼운 짐보다도
더 무거운 화물을 들었다.
누가 그렇게 하라고
시키지도 않았지만
나는 스스로
그런 선택을 했다.
그 이유는
동료들의 눈에
'뺀질거리고 일도 못하는 한국인'이라고
비춰지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내가 유일한
한국인이었기 때문에
내가 하는 모든 행동들이
한국인의 특징으로
일반화될 것이 분명했다.
그래서 한 순간도
쉬엄쉬엄 일 하지 않았고,
이왕이면 더 무겁고
더 큰 화물을 들으면서
최선을 다했다.
그러다 보니
내 힘으로는
다소 벅찬 화물을
선택해서 드는
경우가 많았다.
힘이 부칠 때는
다리로 짐을 지탱해가면서
어떻게든 끝까지
컨테이너에
그것을 갖다 놓았다.
그러다 어느 순간
내 다리를 보니
‘달마시안’이
되어 있는 것이었다.
허벅지에서부터
발목까지 어찌나
멍이 그렇게 가득한지,
열심히 일하고 있는
내가 기특하면서도
나 스스로가 나를
혹사시키고 있다는 생각에
씁쓸하기도 했다.
다리를 보면
‘달마시안’이 떠오를 정도로
멍이 한 가득이니
온몸이 안 쑤실래야
안 쑤실 수가 없었다.
그렇게 몇 달 동안
체력이 저하된 상태로
힘들게 일을 지속하다 보니
일을 통해서
내가 얻으려고 했던 것을
까맣게 잊고 있음을
깨달았다.
동료들과 대화하면서
어학실력을 향상시키고 싶은
마음에 그 먼 곳까지 가서
육체노동을 했던 것인데
어느새 배움과 노동이
주객전도가 되어
노동이 주가 되고 있었던 것이다.
힘이 들다 보니
정말 아무 말도
하고 싶지 않았다.
일본어고 뭐고
말은커녕
생각조차 하기 싫은
상태까지 온 것이다.
그야말로
내가 걱정하던
‘돈을 벌기 위해서
일만 하는 외국인 노동자 신세’
가 되어 있는 것이었다.
'생각 없는 달마시안'
이 되고 싶진 않았다.
그래서
그 일을 그만두고
지친 몸을 회복하면서
학업에 좀 더 열중했다.
그때 당시만 해도
하네다 공항에서의 일을
'육체적으로 힘들고,
고되기 때문에 내가 원하는
배움을 주지 못하는 일'
이라고 규정지었다.
하지만
문제는 그 일 자체에
있었던 것이 아니라
욕심은
언제나
발전할 수 있는 환경으로
나를 인도하지만,
가차 없이
나를 채찍질하며
학대하기도 한다.
학대당한 나는
어느 것도 잘할 수가 없다.
결국엔 그 환경의 위치와
나의 위치에 대한
괴리감을 느끼고
좌절할 뿐이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그 좌절이 심해지면,
내가 욕심만 부리지 않았다면
발전의 토대로
충분히 활용할 수 있는
애꿎은 환경을 탓하게 된다.
충성심이 강하고
독립적인 특성을 가지고 있는
'달마시안'은
예민한 면도 있어서
주변 환경 변화에 쉽게 영향을 받는
견종이라고 한다.
그래서 애초에
그 변화에 민감하지 않도록
독립성을 키워주는 훈련을
해야 한다고 한다.
그런 측면에서
내가 ‘하네다 공항의 달마시안'이
되었던 경험은
나에게 훈련이 아니었나 싶다.
’ 발전할 수 있는 환경에서
내가 원하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욕심의 양가적인 특징”을
잘 활용해야 한다는 것‘
을 깨닫게 한 훈련 말이다.
'목표를 바라보는 눈에는 욕심을 넣고,
그 목표를 실행하고 있는
나의 능력에는 욕심을 버리자!'
내 능력에 대한
욕심을 버리고
나의 부족함을 인정한
나야말로
욕심내던 그 목표에
자연스럽게
동화되어 있을 것이다.
당신이
원하는 목표에
자연스럽게 동화되는
그날을 맞이하기를
진심으로
응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