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도 약자에게는 강하고 강자에게는 약한 찌질한 사람입니까?
Ⅰ
런던 관광을 하기 위해
버스 정류장으로
향하던 중이었다.
런던의 상징인
빨간 버스가
저 멀리서 오고 있었다.
내가 타려고 하는
번호의 버스였다.
그 번호를 확인하는 순간
나는 달리기 시작한다.
그런데 그 모습이
반대편에서
총을 들고 걸어오는
꼬맹이들 무리에게
포착됐다.
빨간 버스를 타기 위해
전속력으로 달려오는
빨간 치마 동양 누나에게
그들은 총을 겨눈다.
장전을 하고
방아쇠를 당기자
그 안에 들어 있던
물들이 발사된다.
차라리 비비탄이었으면
좋았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물총은
너무 굴욕적이었다.
버스를 향해
전속력으로
달리고 있는 상황인데
멈춰서 저들에게
반격할까 순간
고민도 해봤지만,
괜히 다가갔다가
더 큰 물세례를 받고
옷이 흠뻑
젖을 것만 같았다.
그래서
그냥 물총을 맞았는지도
몰랐다는 듯이
버스에 올라탔다.
옷을 확인해보니
티도 안 나게
물을 맞았다.
하지만
옷이 젖지 않은 것이
문제가 아니었다.
물총을 맞은 사실보다
더 굴욕적이었던 것은
그들을 향한 나의 태도였다.
이곳이 한국이었다면
버스고 뭐고
뛰던 것을 멈추고
그쪽으로 가서
꼬맹이들을 야단쳤을 텐데,
오히려 나는
영국 꼬맹이들에게
제압당해버린 것이다.
마치
대영제국이 19세기
세계 패권을 잡고
지배하던 식민지 국민이
되어 버린 것만 같았다.
‘해가 지지 않는 나라’에서
‘나라는 태양’이
지고 있었다.
21세기 영국 꼬맹이들이
재탄생시킨
‘팍스 브리태니카’ 체제 하에서
내가 내 나라에서
부리던 성질은
온 데 간 데 없었다.
‘팍스 브리태니카’
말 그대로 영국이
만들어낸 평화로운 상태였다.
‘누울 자리도
봐 가면서
발을 뻗는다’
라는 말처럼
이길 수 있는 상대에게는
성질을 피워대면서,
이길 수 없는 상대에게는
아무 말도 못 하는 찌질한 내가
런던에 있었다.
Ⅱ
얼마 전
신촌역 지하철 플랫폼에서
있었던 일이다.
어떤 아줌마가
고래고래
소리를 지른다.
한 두 번 소리가 날 땐
그러려니 하고
신경을 안 쓰고 있었는데
아줌마의 악의 기운은
잠잠해질 줄 모른다.
악에 받친 그 소리를
집중해서 들어 보니
"내 엉덩이 왜 만지는데?"
라는 말이었다.
나는
소리가 나는 곳으로
가보았다.
한 아저씨가
아무 말도 못 하고
그 앞에 서 있다.
아줌마가 똑같은
말을 반복하는 와중에
한 아저씨가 합세한다.
갑자기
그 변태 아저씨에게
'귀싸대기'를
날린다.
처음에는
두꺼운 패딩 재킷으로 무장한
아줌마 엉덩이를 만져봤자
엉덩이처럼 느껴지지도
않았을 것 같아서
'그냥 스쳤을 수도 있었을 텐데..
괜히 오바하는거 아니야?'
라는 생각으로
소리를 질러대는
아줌마를 시끄럽다는 듯이
쳐다봤었다.
하지만
'귀싸대기 아저씨'의 강력한
한 방을 맞고도
아무 말 없이 땅을 쳐다보는
'변태 아저씨'의 태도를 보고
진짜 이상한 의도를
갖고 만졌구나 싶었다.
'귀싸대기 아저씨'도
나와 같은 생각이 들었는지,
갑자기 아줌마처럼
흥분하기 시작한다.
'변태 아저씨'가 아무런
반격을 하지 않자,
확실히
제압할 수 있겠다는 판단 하에
'귀싸대기 3단 콤보'를
다시 날리신다.
그걸 맞고도
가만히 있으니
이제 주먹을 휘두르신다.
얼마나 세게 맞았는지
'변태 아저씨'는
다리가 풀려
주저앉아 버린다.
열차가 도착하고
아줌마는 변태 아저씨에게
"이거 타지마! 다음 열차 타!"
라고 또 다시 악기(惡氣)를
있는 대로 발산한다.
열차 탈 힘도 없이
주저앉아 있는
처량한 아저씨만
신촌역 플랫폼에 있을 뿐이다.
그렇게
'이 구역의 미친놈은 나야'를
뽐내는 것만 같았던
마무리가 되었다.
아무 반격도 못할 정도로
자신이 잘못한 것을 아는
'변태 아저씨'가
애초에
왜 그런 일을
했나 싶었다.
아마도
아줌마가
만만해 보였을 것이다.
하지만
아줌마는 용감했다.
게다가
아줌마에겐
자신을 도와줄
'귀싸대기 아저씨'도
옆에 있었다.
은
에 의해
한 방에 제압되었다.
처음부터
'누울 자리를 제대로 보지 못하고
발을 뻗은 변태 아저씨'
를 향해
나는
혀끝을
찰뿐이다.
당신은 약자에게는 강하고 강자에게는 약한 찌질한 사람입니까?
아니면 약자에게는 자비롭고 강자에게는 강해질 수 있는 용감한 사람입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