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하의 술판

깊은 빡침에 잠 못 이루는 날들

by 미쓰양푼이

2019년 12월 13일 금요일.


일이 없는 금요일은

헬스장에 가는 날이다.


사실해야 할 일들이

꽤 쌓여 있어서 갈까 말까

갈팡질팡했었다.

언제나 생각한 대로

행동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런데

삼겹살에 짬뽕 라면이

급 먹고 싶었다.


운동을 다녀오지 않은 상태로

그 음식들을 먹기엔

내 몸에게 너무 미안했다.


살찌는 음식들을

죄책감 없이

맛있게 먹기 위해

헬스장에 가야만 했다.


헬스장에 가면

가장 먼저 러닝머신에

올라간다.


지루한 러닝머신 위에서

운동을 지속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은

그 앞에 달려 있는

텔레비전이다.


집에서 TV 시청을 할 때에

철저히 내 취향대로만

골라 보게 되지만,

헬스장 텔레비전에서는

그 순간에 방영되고 있는

프로그램 밖에 볼 수 없기 때문에,

내 관심 밖의 여러 가지 사실들을

접할 수 있어서

쏠쏠한 재미가 있다.


채널을 이리저리 돌리다

갑자기 한 뉴스 프로그램이

내 관심을 확 사로잡았다.


12월 12일에

전 재산이 29만 원이어서

추징금을 내지 않고 버티시는

우리 전두환 각하님께서

강남 한복판 고급 음식점에서

1인당 20만 원짜리 호화 만찬을

즐겼다는 소식이었다.


12월 12일이라면

각하께서 주도한

군사반란에 대한

죄를 반성하고 근신해야 하는

날임에도 불구하고,


그 당시 반란의 주역들과 함께

쿠데타 성공 40주년을

기념하는 듯

술판을 벌이셨다.


알츠하이머 진단을 받으셔서

5.18 관련 법정 출석도 거부했던 분이



그렇게 과음을 하셔도 되는지

의문이 들 정도로

각하의 건강하신 모습이

텔레비전 화면에 포착됐다.



사실 전두환 각하의

후안무치 행각들은

‘역사는 반복된다’라는

진리를 증명하기라도 하듯이,

수도 없이 되풀이되고 있었기 때문에

놀랍지도 않았다.


언제나 각하께서는

선민의식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는 것처럼

행동하시는데,

우리가 그것을 한 두 해

본 것이 아니지 않은가?


매번 비슷한 레퍼토리로

뉴스에 등장하는

전두환 씨의 이야기는

이제 흥미롭지도 않다.


하지만


내 눈을 사로잡은 것은

전두환 씨가 아니었다.


술에 취해 내려오는 그를 향해

“오늘이 12월 12일
군사 쿠데타 당일인데요.
근신하고 자중하셔야 될 날에...
이렇게 축하 기념회를....”


라고

당당하게 이야기하던

정의당 임한솔 부대표였다.


각하의 측근께서 입을 틀어 막으셔서 그는 끝까지 하고 싶은 말을 이어가지 못했다.

그 사람이

어떤 정당 소속이든 상관없이

일단 계급장을 다 떼고,

한 명의 국민으로서

잘못된 것을 잘못됐다고

당당히 비판할 수 있는

강직함이 내 마음을

움직인 것이다.


왜냐하면

나는 전두환 씨의 잘못을

그 사람이 없는 곳에서는

신랄하게 논할 수는 있어도,


막상 멍석을 깔고 각하 앞에서

이야기하라고 한다면

임한솔 씨처럼

당당하게 말할 수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의 용기가 부러웠다.


어쩌면

그가 집요하게

전두환 씨를 따라다니는 것은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것과 같이

의미 없는 것 일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평생을 잘못 살아온

노인네가 개과천선하기에는

남은 인생이 너무나도

짧기 때문일 것이다.


임한솔 씨가 원하는

전두환 씨의 반성을

볼 일은 없어도

그의 올곧은 태도는

우리에게 희망이었다.


‘아닌 것을 아니다’

라고

말할 수 있는

‘용기’

와 더불어,


‘생각하는 대로 행동하는 지행합일’

의 태도 말이다.


아마 그동안

그는 전두환 씨가 만들어 온


대한민국 역사를 되짚어보면서


깊은 빡침에

잠 못 이루는 날들이

많았을 것 같다.


하지만

그 날 만큼은

두 발 뻗고 편히

잠들을 수 있지 않았나 싶다.


강단 있는 행동으로

단전에서부터 올라오는

마음의 울림을

그 누구도 아닌

스스로에게

여과 없이 보여줬기

때문일 것이다.





마지막으로

이 글은 정치인 임한솔 씨에 대한 정치적 지지글도

정의당에 대한 지지글도 아님을 밝힙니다.


또한 이 글은 2019년에 쓴 것으로

현재 달라진 것들이

있다는 점도 있다는 것도

참고해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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