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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자연 Dec 29. 2015

나는 크루즈 승무원입니다

바다, 크루즈, 사람. 무지개빛 여행




한국나이 스물 여섯,

만 스물 넷.

봄을 기다리며. 앞으로 이어질 푸른 여름을 기대하며.

바닷빛 내 인생 힘내라!

(2012년 3월 21일, 합격통지를 받고 출국준비에 한창이던 어느 날)








휴가를 오면 친구들이나 주변 지인들이 꼭 물어보는 것들이 몇 가지 있다.

그 중에 가장 많이 받는 질문은 단연

"배 멀미 안해?" 이다.


남이섬으로 가는 페리를 타본 경험만 있어도 궁금해할 수 있다. 어떻게 둥둥 떠다니는 배 위에서 먹고 자고 6개월이 넘는 시간을 보낼까. 하지만 부스럭거리는 소리에도 벌떡 일어날 정도로 예민한 사람이 아니라면 문제없다. (물론 허리케인 시즌에는 이야기가 조금 달라지지만)


"응, 배가 커서 평소에는 배가 움직이는것도 잘 못느낄 때가 많아" 라고 대답하면 이제 그 다음 질문은,

"그럼 정말 타이타닉만큼 그렇게 큰 배야?"로 넘어간다.




타이타닉호와 요즘 크루즈 배의 사이즈 비교. 어마어마하다. (출처-google)




2012년 4월 14일, 처음 승선하던 날.

뉴올리언즈에서 만난 보이저호는 어마무시하게 컸다.

길이는 311m, 말하자면 에펠탑을 눕혀놓은 길이보다 10m 길고, 높이로 말할 것 같으면 자그마치 63m이니까 약 22층 아파트 높이인 셈이다. 이 13만 8천톤의 거대한 쇳덩어리가 물에 뜬다는 사실이 비행기가 공중에 뜨는 것 보다 더 신기할 정도였다.




6개월의 여정이 시작되었다




4월 14일 미국 뉴올리언즈에서 출발한 보이저호.

바하마-아조레스섬(포르투갈)-스페인-이집트-두바이-인도-말레이시아-싱가폴-태국-베트남-홍콩을 거쳐 마침내 6월 중순 중국 상하이에 도착하는 여정이었다. 세계여행의 꿈을 이렇게 빨리 이루었구나 하는 기쁨도 잠시, 크루즈 신입사원이었던 나는 배워나가야 할 게 많았는데 그게 참 산넘어 산이었다.  


1. 영어

프론트데스크에서 가장 어려웠던건 의사소통이었다. 난 분명히 영문학도 전공했고 미국에서 인턴십도 해봤는데 말하는 건 둘째치고 알아듣는 것 부터가 힘들었다. 크루 게스트 할 것 없이 모두의 영어가 제각각이었다. 영어가 모국어인 사람들은 말이 너무 빨랐다. 반면에 영어가 모국어가 아닌 사람들의 낯선 억양은 내가 지금 영어로 소통하는건지, 러시아어 또는 중국어를 알아듣기 시작하는건지 알 수 없는 혼란을 주었다. 주눅이 든 내 목소리는 점점 작아졌고, 컴플레인을 하러 온 게스트는 내 말을 알아듣기 위해 몸을 카운터 너머로 한껏 기울이다가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매니저와 이야기하게 해달라고 하기 일쑤였다.


2. 프론트데스크

데스크 앞에 길게 늘어선 줄은 아침부터 시작해 밤 10시가 넘어서까지 끊길 줄을 몰랐다. 여러 나라를 거치는 크루즈인 만큼 게스트들의 국적도 다양했는데 그래서 참 갖가지 질문도 많고 컴플레인도 많았다. 현금 계산이나 신용카드 등록, 환전같은 업무는 누워서 떡먹기였다. 문제는 컴플레인이었다. 어떤 독일 아주머니는 미국에 올때 공항에서 짐을 잃어버려서 갈아입을 옷이 없었다. 열 다섯명이 넘는 대가족과 여행중이신 이스라엘 아저씨는 룸들이 떨어져있다고 모두가 같은 층을 쓰고 싶다고 하셨는데 룸이 없다고 하자 다짜고자 주먹으로 데스크를 두들기며 소리를 지르셨다. 어떤 영국 할아버지는 배에 음악이 부족하다고 주장하며 '라이브음악이 훌륭한' 다른 배들에 대해서 30분동안 설명하셨고, 채식주의자라고 자신을 소개한 미국 언니는 레스토랑에 먹을 것이 하나도 없으니 방을 업그레이드해달라고 요구했다. 어떤 게스트는 방의 창문이 너무 작다고 했고, 어떤 게스트는 깜박 잊고 중국비자를 준비해오지 않았으며, 어떤 게스트는 너무 춥고 어떤 게스트는 너무 더웠다. 프론트에서 일한지 단 2주 후 나의 영어실력은 괄목상대했다. 그럴 수 밖에 없었다.


3. 배 생활법

길치인 나에게 길이 311미터의 배는 망망대해나 다름없었다. 일단 매점에 가서 물 한 병이라도 사오려고 방에서 나오면 빙빙 돌다가 길을 잃어버렸고, 할 일을 마치고 방으로 돌아가려면 한참을 헤매야 했다. 그리고 배에서만 쓰는 용어들이 있었다. 선두를 기준으로 왼쪽 오른쪽이라고 하지 않고 Port side, Starboard side라는 표현을 썼다. 배에서는 안전이 가장 중요하기 때문에 거의 주 마다 한 번씩 비상대비 안전훈련(Drill)이 있었다. 생전 처음 들어보는 영어 단어들이 난무했다. 처음 일주일은 하루도 빠짐없이 트레이닝이 잡혀 있었고, 늘 길을 잃어버리는 나는 10분 일찍 도착하는 습관을 길렀다. 트레이닝과 스케줄때문에 놓칠 수 밖에 없었던 이국적인 나라들과 도시들도 있었다. 처음에는 그게 얼마나 아쉽고 분하던지.





사랑받는 기분은 정말 최고다




이랬던 내가 내년이면 5년 차 크루즈승무원이 될 수 있었던 이유는 중독성 강한 여행의 맛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것 뿐만은 아니다. 나의 크루즈다이어리에는 해마다 이런 말들이 곳곳에 써있다.

"사랑받는 기분은 정말 최고다"


길을 잃어버렸을 땐 내가 가는 곳까지 데려다 주던 이름모를 크루들이 있었고, 게스트말을 못알아듣고 다시 물어볼까 어쩔까 쩔쩔매고 있을땐 자기 일을 제쳐두고 도와주던 동료들과, 한 달동안 대단한 인내심을 가지고 나를 트레이닝해준 루마니아 여자 카르멘이 있었다. 나의 작은 성장을 알아봐주고 폭풍 격려를 해준 마음씨좋은 매니저들, 처음으로 생일을 배에서 맞이하게 되었을때 괜히 민망한 마음에 얼른 일 끝내고 방으로 가려고 했던 나를 둘러싸고 생일 케이크에 초를 꽂아 노래를 불러준 팀이 있었다. 몇 명 되지 않는 한국인 언니오빠들과의 유대감도 끈끈했다. 어쩌다 한 번 한국어로 웃고 떠들며 다 함께 둘러앉아 마시는 맥주맛이라니.


제작년부터 VIP 라운지를 관리하는 컨시어지로 자리를 옮기고 부터는 게스트들과의 좋은 인연도 많이 맺었다. 지금도 시드니 할머니 할아버지, 텍사스 이모, 멜번 조카들, 플로리다 엄마아빠, L.A 산타할아버지가 매주 연락을 해온다. 이런 작고 따뜻한 인연들이 나의 5개월의 여정을 알차게 만들고, 또 다시 돌아갈 수 있는 원동력이 되어준다.








모든게 감사한 연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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