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달 휴가의 끝
두 달 간의 휴가도 어느덧 끝이 났다.
잠깐,
두 달? 휴가가 두 달이라고요?
사실 이거야말로 크루즈에서 일하며 누릴 수 있는 특별함 중 하나이다. 나의 경우 5개월 컨트렉이 끝나면 기본 6주에서 길면 두 달 정도의 휴가를 받는다. 이렇게 몰아서 쉰다는 건 바꿔 말하면 평소에는 데이오프가 없다는 걸 의미한다. 사실 아무리 일이 즐거워도 집 떠나 휴일 한 번 없이 5개월을 일한다는 게 쉬운 건 아니다. 가끔은 나도 일반 직장인처럼 꿀주말을 기약하며 목요일 밤부터 행복해진다는 그런 것도 좀 느껴보고 싶을 정도로 체력적, 정신적인 소모가 크다.
그래서 두 달의 휴가는 나에게 너무너무 특별하다. 오랜만에 가족들과 한 상에 둘러앉아 먹는 밥, 친구들과의 수다, 밤에 냉장고를 뒤져서 먹는 야식, 이런 소소한 것들이 가장 귀해지는 두 달이다. 그래서 늘 휴가 한 달 전부터 온갖 계획을 세우곤 한다. 가고 싶은 곳, 하고 싶은 것, 먹고 싶은 건 어쩜 그리 많은지. 아무튼 휴가가 길다는 건 참 좋다. 여유 있게 여행도 다녀올 수 있고, 새로운 언어에 도전도 해보고, 뭐니 뭐니 해도 침대에 누워서 귤 까먹으며 밀린 영화와 책을 보는 재미, 남들 일하는 시간에 뮤지컬이나 전시를 보러 다니는 맛도 참 쏠쏠하다.
그러다 보면 두 달이 후딱 가고 어느덧 또 5개월의 여정을 준비할 시간이 온다.
저 출근하러 출국해요
이번이 여섯 번째 휴가였으니, 일곱 번째 출국인 셈이다.
사랑하는 가족들을 뒤로 하고 떠날 땐 설렘보다 아쉬움이 크다.
게다가 이번에는 마이애미에서 조인이라 열일곱 시간 직항을 받았다.
먼저 가 있는 친구에게 열일곱 시간 비행이 웬 말이냐며 징징댔더니
"Just consider that 17 hours are coming to you"
(17시간을 보내는 게 아니라 17시간을 얻는 거라고 생각하면 편해)
라는 대답을 받았다.
아.. 내가 받아야 하는 17시간이라면 LTE로 다운로드하듯이 파바박 받을 수는 없는 건가요.
아무튼 그러니까 난 출근하려면 일단 출국부터 하는 거다.
여러 나라 여러 도시에서 다른 색깔 다른 풍경으로 특별한 사람들과 채워나갈 나의 5개월.
처음으로 일을 시작했을 때 나를 가장 사로잡았던 것은 매일 아침 다른 세상에서 눈을 뜬다는 사실이었다. 신대륙을 발견하는 콜럼버스가 된 느낌이랄까, 하울의 움직이는 성에 방 한 칸을 얻은 기분이랄까. 오늘 바다 위에서 열심히 일했으니까 내일 점심으로는 멕시코에 있는 단골 식당에서 신선한 과카몰리와 피냐콜라다를 즐기고, 그다음날은 온두라스의 해변에 누워 시원한 코코넛 주스를 배 위에 올려두고 잠시 낮잠을 즐기는 상상이, 그런 것들이 일상이 될 수 있다면.
그래서 5개월 동안의 풀가동이 벅참보다는 설렘일 수 있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