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홍자연 Aug 04. 2016

크루즈 승무원은 어디에서 자나요?

크루생활 엿보기 1 : Crew Cabin






7:00 am


발코니를 통해 들어오는 아침 햇빛에 기분좋게 눈을 뜬다. 마침 똑똑- 노크 소리가 난다. 가운을 걸쳐입고 룸서비스를 받는다. 어제 미리 주문한 아침식사와 커피가 나란히 놓여있다. 커텐을 열자 아침햇살이 방 안 가득 쏟아진다. 발코니 밖으로 한없이 펼쳐진 잔잔한 바다를 마주하고 앉아 가장 좋아하는 책을 읽으며 모닝 커피를 즐긴다.




게스트 룸에서의 하루. 반짝반짝 잔잔했던 바다.




'크루즈 여행'을 꿈꾸는 당신에게 펼쳐질 바다 위의 아침은 이렇다.

하지만 당신이 '크루즈 승무원'을 꿈꾼다면 크게 심호흡을 하고 아래를 읽도록.







띠리리리 띠리리리



알람이 울린다. 믿고 싶지 않다. 10분만, 아니 7분만 더 자고 싶다. 그렇지만 알람이 또 울리면 어제 늦게까지 일한 룸메이트가 깰 수도 있으니 지금 일어나야 한다... (3분 후) 아 그런데 지금이 몇시지? 낮잠을 잔건지 아침에 일어난건지 사방이 캄캄하니 알 수가 있나. 부스스 일어나 시계를 보니 아침이 맞다. 씻어야지. 조심조심 사다리를 타고 침대에서 내려온다. 운동 신경이 없는 나는 그 조그만 사다리에서 내려오는 것도 일이다. 앞을 보고 내려오자니 사다리를 잡을 수 없어서 다칠 것 같고, 뒤로 돌아서 내려오자니 안보여서 불안하고. 여튼 몇 번 발바닥에 쥐가 난 이후로 사다리 밑에 늘 의자를 둔다. 덕분에 안전하게 착지! 세상 모르게 자고 있는 룸메를 위해 전등은 켜지 않은 상태로 움직인다. 조그만 방이라 두 어 번 정도 더듬거리면 어둠 속에서도 욕실 문 손잡이를 찾을 수 있으니까. 찾았다 손잡이! 화장실 불을 켠다. 악 눈부셔!




                       방이 작긴 하다. 정리라고는 모르고 살았던 내가 자발적 미니멀리스트가 된 계기.





나의 하루는 이렇게 시작된다


방을 쉐어해야 한다고 하면 다들 놀란다. 그렇지만 천 명 이상의 크루와 3500여명의 게스트들이 생활하는 곳에서 아무리 배가 큰들 크루들의 개인공간은 한정적일 수 밖에 없다. 어깨에 계급장을 줄줄이 단 매니저 정도가 되어야 보다 넓은 공간이 있는 싱글룸을 받을 수 있다. 그렇지 않다면 일단 2인 1실이 기본이다. 창문도 없다! 이층 침대이기 때문에 먼저 온 사람이 좀 더 편리한 아랫층을 사용한다. 편하게 발 뻗고 앉을 소파도 없는 작은 방에서 일층 침대를 차지하는건 6개월 크루즈 생활에 있어서 나름 '첫 단추를 잘 끼우는 것'과 같다. 그래서 그놈의 일층침대가 뭐라고 룸메이트를 만나면 얘 휴가가 언제인지가 제일 궁금하다. 다들 겪어봐서 알기 때문에 간단한 인사가 끝나면 "나 금방 집에 가니까 곧 1층으로 옮길 수 있을거야"하고 쿨하게 말해주기도 한다. 사실 아담사이즈의 나에게는 일층이나 이층이나 그게 그거지만, 내 몸집보다 세 배는 큰 외국인 친구가 그 조그만 사다리를 밟고 올라가 침대에 비집고 들어가는 상상을 하면 안쓰럽다.


하지만 모든 것은 생각하기 나름이고 받아들이기 나름! 룸메와 스케줄이 반대일때는 나만의 조용한 시간을 즐길 수 있어서 좋았고, 룸메와 스케줄이 같을 땐 서로 깨워주고 조잘조잘 떠들다가 후다닥 준비해서 나가는 시간도 다 추억이 되었다. 조그만 방에 친구들을 초대해서 침대 위와 바닥에 겹겹이 앉아 보던 공포영화, 나와 사이즈가 같은 룸메이트와 옷장정리를 하며 서로의 옷을 입어보고 깔깔대던 시간. 서로 아플 때 곁에서 간호해주고 집에 안 좋은 일이 생겼을 때 자신의 전화카드를 선뜻 내주며 위로해주던 그런 따듯한 추억이 모이고 모여 집떠나 있는 시간이 그다지 외롭지만은 않다. 또 창문이 없어서 불을 끄면 그야말로 어두컴컴 암실이 되는데 그래서 그런지 잠도 잘 오고 방해받지 않고 푹 잘 수 있어서 좋기도 하다.






혼자여서 좋고, 함께라서 좋다



나만의 공간은 꼭 내 방이 아니라도 좋다. 배 구석구석 곳곳이 다 내 아지트이니까.

때로는 아침 일찍 데크로 올라가 혼자 일출을 보며 마시는 고즈넉한 커피타임도 좋고, 하루의 끝에 친구들과 삼삼오오 모여앉아 맥주 한 잔 하며 바라보는 노을은 늘 아름답다. 또 크루들의 휴식공간 벡덱(Back deck)은 밤이 되면 시끌시끌 신나는 파티장소로 변하곤 한다.


우리의 바다 위 도시는 이렇다. 혼자이지만 혼자가 아닌.








너무 오랜만에 글을 씁니다.

사실 글은 조금씩 쓰고 있지만 '발행' 버튼을 누르는데까지는 시간과 용기가 필요하네요.

지난 연말, 크루즈 승무원에 대한 글을 브런치에 올린 후 댓글로도, 개인적으로도 많은 질문을 받았습니다. 아직은 '이색직업'이라고 불릴 만큼 조금은 생소한 직업이다보니 대부분이 "크루즈 승무원이 되려면"으로 시작하는 질문이었던 것 같습니다. 조금 시간이 걸리더라도 꾸준히 차근차근 연재할 계획이니, 바다 건너 온 브런치 맛있게 드셔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


크루즈나 크루즈 승무원에 대해서 궁금한 것이 있으신 분은 댓글달아주시면 최대한 다뤄보도록 하겠습니다.

다들 더운 여름 건강유의하세요 !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