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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자연 Sep 11. 2016

도대체 영어를 얼마나 잘 해야 하나요?

크루즈 승무원의 기본 자질, 영어!  





크루즈 승무원이 되려면
영어를 얼마나 잘 해야 하나요?


주변에서 심심찮게 물어오는 질문이다. 나의 대답은 "잘하면 잘할수록 좋아요"이지만 영어를 '잘'한다는 것의 기준은 무엇일까? 오렌지를 '오렌지'가 아닌 '어륀지'라고 발음해야, 바나나를 '바나나'가 아닌 '버내나'라고 발음해야 "나 영어 좀 해"할 수 있는 걸까?


막상 크루즈에서 영어가 모국어인 친구들은 그리 많지 않다. 나의 크루즈 첫날은 그야말로 멘붕이었다. 필리핀 오퍼레이터의 또록또록 굴러가는 듯한 억양, 유럽 사람들 특유의 아버지가방에들어가신다와 맞먹는 질질 끄는 억양, 얘가 지금 나한테 명령을 하나 하는 오해가 들게 하는 크로아티아 사람들의 짧은 말투, 웃겨서 도무지 대화에 집중이 안되게 하는 인도 억양, 스페인어반 영어반의 남미 억양. 알아듣기 불가능한 러시아 억양 등등. 여행을 해봐도 마찬가지이다. 특히 유럽 사람들의 영어에 대한 스트레스는 한국보다 더하다고 한다.


영어를 잘 하기 위해서는 일단 두려움을 버려야 한다. 해외에 나갔을 때 한국인의 특징은 본인이 아는 범위 안에서 얼마든지 소통할 수 있는데도 창피해하며 뒤로 빼고, 옆사람에게 미룬다는 것이다. 겸손도 미덕이지만 지나친 겸손은 배울 수 있는 기회를 날린다. 상대방이 영어가 모국어가 아닌 사람이라면 너나 나나 도긴개긴이지 하는 마음으로 편하게 이야기하고, 미국인이나 영국인과 대화할 땐 자기네 나라 말인데 내가 뭐라고 하든 알아서 알아듣겠지 하는 마음으로 부딪히면 된다. 영어공부, 아니 언어 공부에는 끝이 없다. 한국사람이라고 해서 모두가 아나운서 같은 표준어를 구사하는 게 아니듯이, 미국 사람이라고 해서 모두가 문법에 맞는 표현을 쓰는 것도 아니며, 특히 발음이 소위 원어민처럼 유창해야만 남들 앞에서 자랑스럽게 말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건 우리만의 편견이다. 물론 이왕 하는 영어 “교포이신가 봐요”하는 소리 들을 정도로 잘 해서 나쁠 건 없지만, 단지 발음 교정만을 위해 큰돈과 많은 시간을 무리해서 들일 것 까지는 없다는 거다. 정말 극단적으로 말해서 토익 만 점 맞는 토종 한국인 서울대생이 아무리 노력해서 영어 발음을 향상하여봐야 샌프란시스코 광장의 토종 노숙자 아저씨보다 더 원어민 같을 수는 없다. 그러면 한국어 억양이 구수하게 들어간 영어라고 해서 그 퀄리티가 낮아지는 걸까?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의 스피치를 들어보면 술술 잘 말씀하시지만 발음이나 억양이 버터 바른 것처럼 매끄럽지만은 않다. 그러나 그분의 매너와 논리 표현, 자신감이 뒷받침된 스피치는 내가 보기엔 전혀 손색이 없는 좋은 영어의 본보기이다. 언어를 문학이나 예술로서 공부하려는 사람이 아닌 이상, 언어 그 자체를 정복 대상이 아닌 소통의 수단으로 대해보자고 조심스레 말해본다. 막연히 영어를 잘 하고 싶다, 라는 생각을 하기 전에 나는 영어를 왜 배워야 하는지를 먼저 고민해 보자. 그리고 자신감을 가지자!







100이면 100,
모두에게 추천하는 미드 받아쓰기




영어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으니, 내 귀를 트이게 하고 입을 열어준 고마운 딕테이션 법을 소개하려고 한다. 바로 미드(미국 드라마) 받아쓰기이다. 나의 경우 프렌즈를 적극 이용했다. 처음으로 접한 미드였고 일상용어가 많은 점과 여러 주인공들의 다양한 말투가 귀를 여는데 도움이 많이 되었다. 난 워낙에 프렌즈 팬이라 그동안 보았던 에피소드 중 백 번쯤 봐도 안 지겹겠다 싶은 에피소드 세네 개를 골라서 아침저녁으로 두 시간씩 받아쓰기를 했다. 딕테이션을 하기로 마음먹었다면 자신이 정말 좋아하는 미드를 고르는 것을 권한다. 그렇지만 지나치게 액션 위주이거나 전문용어가 많이 나오는 시리즈는 피하는 것이 좋다.


처음 미드 받아쓰기를 시작하면 내가 혹시 난청이 있나 하는 멘붕이 온다. 먼저 사람이 1분 동안 이렇게 많이 말하는구나 하고 깨닫게 될 것이다. 그 1분짜리 대화를 받아쓰는데 30분 이상이 걸리는 건 당연한 과정이다. 그렇지만 도저히 5분 이상 진도가 안 나가더라도 적어도 한 시간 동안은 집중과 인내의 받아쓰기를 해야 한다. 한 문장씩 듣고 일시정지를 누른 다음 들은 문장을 (또는 나름대로 들었다고 생각한 것)을 받아 적는다. 사실 한 문장도 한 번에 안 써질 때가 많다. 이때 "아 나는 안 되나 봐" 하고 포기하면 절대 안 된다. 이 고비를 넘겨야 한다. 토 나올 것 같고 혈압이 올라도 끈질기게 받아써야 한다. 그렇게 하다 보면 어느새 하루하루 달라짐을 느끼게 된다. 처음 5분짜리 대화를 받아쓰는데 한 시간 반이 걸렸다면 이틀 후엔 한 시간 십분, 다음 날엔 한 시간, 일주일 후엔 30분으로 점점 줄어든다. 집중하여 끈질기게 듣는 게 중요하지만 다섯 번을 돌려 들어도 들리지 않는 단어는 그냥 공백으로 두고 건너뛰어야 정신건강에 좋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빨간펜을 들고 영어자막과 틀린 부분을 맞춰보는 것이다. 처음 일주일은 정말 공책이 피를 줄줄 흘리는 것 마냥 빨간펜 자국 천지였다. 그냥 채점하듯이 틀린 것만 체크하지 말고 반드시 이 부분이 왜 안 들렸는지를 분석해봐야 한다. 보통은 단어 자체가 처음 들어보는 모르는 단어였거나, 아니면 연음이라 안 들렸던 것일 가능성이 많다. 예를 들면 "I have got to go"라고 교과서에서 배웠는데 코트니콕스는 "I gotta go"라고 말했기 때문이다. 이렇게 틀린 이유를 체크하며 귀 쫑긋하고 계속 연습하다 보면 어느새 연음이 모두 들리기 시작하며 나중엔 또박또박 들리기까지 한다. 귀가 예민해지는 단계이다. 이쯤 되면 토익 리스닝 정도는 슬로모션이다. 실제로 딕테이션을 집중적으로 실천한 지 이삼 주 후에 토익 리스닝 만점을 받을 수 있었다. 귀가 열리면 입도 곧 열린다. 내가 이 딕테이션을 한 달 정도 꾸준히 했을 때쯤 외국인 친구가 내 영어가 어느 날 확 늘었다며 신기해했다.


우리는 두 살짜리 아기에게 단어시험을 보고 문장 구조를 가르치지 않는다. 아기는 태어나서부터 입을 열 때까지 엄마 아빠가 하는 말을 끊임없이 듣는다. 그러다가 어느 날 “엄마” 하고 말하는 것이다. 아이가 오늘 ‘엄마’라는 말을 처음으로 했다고 해서 신나게 공책을 가져와 아이에게 ‘엄마’를 어떻게 쓰는지 가르치는 부모는 세상에 없다. 그런데 특히나 한국말과는 뿌리부터가 완전히 다른 영어를 처음 배우면서 왜 원어민조차도 잘 쓰지 않는 어려운 단어들을 외우고, 수학 공식을 외우듯이 문법을 파는지는, 왜 그렇게 가르쳐야 하는지는 미스터리이다.


실생활에서 영어를 즐길 수 있는 나름의 방법을 찾는 게 중요하다. 나의 경우 일주일에 한 번씩 만났던 외국인 친구와, 미드의 도움을 참 많이 받았다. 내용 파악을 위해 딱 한 번은 자막을 켜놓고 보았고 그 이후에는 자막을 없애고 무한 반복해서 보았다. 특히 섹스 앤 더 시티의 주인공 캐리의 말투와 억양을 좋아해서 따라 하려고 노력했다. 섹스 앤 더 시티는 극 중 칼럼니스트인 캐리의 독백이 나오는 부분이 많아서 도움이 되었다. 닮고 싶은 말투의 배우가 있다면 일부러라도 찾아보면서 유심히 듣다 보면 귀도 빨리 열리고, 나름대로 재미있게 어학을 하는 방법이 될 수 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내가 배우고자 하는 언어에 대한 관심과 동기인 것 같다. 좋아하는 사람에 대한 모든 것, 과거의 비밀까지 모두 다 궁금한 것처럼 그만큼의 관심. 그리고 더 알아가고 싶은 마음.







꾸준히,
근육을 만들듯이.




이렇게 나름대로 대학시절 내내 영어를 공부했는데도 막상 미국 인턴십에 가고, 크루즈를 처음 탔을 때는 영어 때문에 고생을 했다. 그렇지만 어느 정도 환경에 적응이 되고 나니 스피킹에 속도가 붙으면서 그동안 영어공부를 위해 탄탄하게 쌓아왔던 노력과 시간이 빛을 발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꼭 크루즈 승무원이 꿈이 아니더라도, 영어를 잘 하고 싶은 모든 사람들에게 권한다. 물론 운동신경이 특별히 발달한 사람이 따로 있듯이 언어 학습능력이 남들보다 탁월한 사람도 분명히 있다. 하지만 근본적으로 언어는 기술이 아닌 시간과 노력이며, 누구나 꾸준히 시간을 투자하고 노력하면 된다. 남들이 좋다는 학원, 방법론에 너무 치우치지 말고 먼저 목표의식을 분명히 하고 영어를 감각적으로 즐기면서 익히다 보면 어느새 꿈도 영어로 꾸고 잠꼬대도 영어로 하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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