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uachinango a la Veracruzana
7월이에요. 창 너머로 벚나무들이 진한 초록의 에너지를 뿜어내고 있어요. 불과 몇 달 전에 새하얀 벚꽃을 가득 달고 서있었던 바로 그 나무들인데 마치 언제 그랬냐는 것처럼 시치미를 떼고 있네요.
벚꽃이 피기 시작할 때쯤 작은 인문학 모임을 시작했어요. 알피가 어학당을 다니면서 여러 친구들을 사귀었는데 그중 B가 있었어요. 그녀는 차(tea)로 유명한 인도 아쌈 출신이에요. B의 남편은 한국에서 일하면서 산지 11년이 넘어서 한국인이나 다름없어요. 어느 날 B 부부를 집에 초대해서 같이 LA갈비를 구워 먹다가 저희는 유쾌한 이 부부가 너무나 마음에 든 나머지 ''우리 매주 북클럽(같은 것)을 열자!''하고 즉석에서 모임을 결성했어요. 두터운 재킷을 입고 만났던 첫 모임인데 벚나무 잎들이 초록으로 변한 지금까지 잘 이어오고 있어요. 멤버도 늘었고요. 인문학의 여러 범주를 넘나들며 자유롭게 이야기하는 시간도 좋지만 무엇보다도 각자의 나라에 대해 이야기하고 듣는 즐거움이 커요. 커다란 원형 테이블에 둘러앉아서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서로가 미지의 대륙으로 느껴지거든요.
얼마 전에는 B 부부와 새로운 멤버 H, 알피와 저 이렇게 다섯이서 작은 홈파티를 했어요. 이 날의 메인 요리는 알피가 맡았어요. 알피는 단번에 메뉴를 정했어요.
"Huachinango a la Veracruzana를 만들 거야"
"그게 뭐야?"
"저번에 우리 도미요리 해먹었잖아. 이번엔 조금 색다른 레시피야. 베라크루즈주의 대표적인 음식이거든. 나 이거 꼭 요리해보고 싶었어."
그래서 도미를 사러 조금 느지막이 수산시장에 갔어요. 알피를 알아본 주인이 물었어요.
"이번엔 뭘 또 맛있는 걸 해 드시게?"
다섯 명이 먹어야 하니 가장 큰 놈으로 골랐어요. 이번엔 머리를 자르지 않고 내장만 손질해달라고 부탁했지요. 비닐봉지에 든 생선의 무게가 꽤 묵직한 느낌이에요.
"케이퍼랑 말린 자두도 사야 하는데 가게 문 다 닫았다. 어쩌지? 홈플러스에 가봐야 하나..."
"안돼. H가 기다린단 말이야"
그 날 실기시험이 끝났다는 H는 바이올린을 어깨에 메고 생선 요리에 어울리는 화이트 와인 한 병과 함께 전철역에서 기다리고 있었어요. H는 제가 어렸을 때부터 알아온 친한 동생이에요. 서로의 어린 시절의 얼굴을 기억한다는 건 웃기면서도 따뜻한 일이라 우리는 곧잘 옛날이야기를 하곤 해요.
다 같이 B의 집으로 향했어요. 매일 알피랑 둘이 놀다가 친구들과 함께 홈파티를 하는 건 꽤 오랜만이라 신이 났죠. B의 집은 너무나도 한국스러운데 이 곳 저곳 깨알같이 존재감을 드러내는 인도 장식품과 그림들, 찬장 가득한 향신료, 책장에 꽂힌 간디의 자서전 같은 것들이 호기심을 자아내요. 알피는 벌써 프라이팬을 달구고 있어요. B는 자신의 주방에서 요리하는 알피를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면서 알피가 말하기도 전에 필요한 것을 착착 준비해줘요. 겁 많고 느린데 적용력까지 떨어지는 저와는 너무 다른 훌륭한 조수예요. 가여운 알피. 그동안 얼마나 답답했을까요.
두 사람이 주방에서 분주한동안 아까 사 온 도미는 레몬즙과 소금을 입은 채로 조용히 대기 중이에요. 커다란 도미의 얼굴과 이빨을 신기한 듯 구경하다가 도울 게 없나 어슬렁거리던 저희들에게도 할 일이 주어졌어요. 칼집을 내서 살짝 데친 토마토의 껍질을 벗겨내는 거예요. 그런 다음에 토마토의 씨 부분을 다 도려냈어요. 다이애나 할머니의 레시피에는 딱히 그렇게 쓰여있진 않았지만 토마토 씨 부분이 여기저기 섞이면 보기에 별로라고 알피는 과육 부분만 쓰는 걸 택했어요.
아참, 이번에는 다섯 명이 함께 먹을 음식이라 할머니의 레시피대로 하면 되니 편하네요. 둘이서 먹을 때는 늘 레시피를 반 또는 삼분의 일로 줄여야 했거든요. 양파와 마늘을 기름에 볶다가 아까 썰어둔 토마토를 넣은 뒤에 소금, 월계수 잎, 오레가노, 올리브, 할라피뇨 주스를 함께 넣고 계속 조리해요. 아쉽게도 케이퍼는 넣지 못했지만 놀랍게도 B가 말린 자두를 한 봉지 갖고 있었어요. 알피는 B네 집에 말린 자두가 있을 거라는 기대를 안 했기 때문에 이렇게 물었거든요.
"혹시 건포도 같은 거 있어?"
"우리 건포도는 싫어해서 안 먹고 대신 말린 자두는 있는데 괜찮아?"
"말린 자두가 있다고? 예스!!!"
프라이팬 가득한 소스가 완성이 되었다 싶으면 오븐 판에 도미를 올리고 그 위에 소스를 얹어요. 이때 소스에 올리브 오일을 3 테이블스푼 정도 추가해요. 이제 165도에 맞춘 오븐에 도미를 집어넣고 맛있게 익길 기다리는 거예요. 기다리는 동안 B가 튀겨온 닭을 맥주와 함께 먹으며 이따가 다 같이 볼 영화를 고르기 시작했어요. 다섯 명 모두 영화를 좋아하는 편이라 그 누구도 보지 않은 영화를 찾는 게 쉽지 않았어요. 결국 정하지 못한 채로 수다를 떨다가 20분이 지나 도미를 조심스럽게 뒤집어 다시 오븐에 집어넣고 다시 영화 고르기에 몰입했어요.
그날의 베라크루즈의 전통 생선요리 Huachinango a la Veracruzana는 멕시코 남자뿐만이 아니라 인도인 둘, 한국인 둘까지 아주 만족한 저녁식사가 되었어요. B의 남편 P는 "내가 요즘 먹고 싶었던 게 바로 이런 거야!"하고 외쳤고 나머지는 먹느라 정신이 없었어요. 아쉬운 게 있었다면 토마토 씨 부분을 빼버렸더니 소스가 살짝 모자란 느낌이었다는 것과 그날 본 영화 <Children of man>이 매우 별로였다는 것이었어요. 특히 음악에 민감한 H는 맥락없는 배경음악이 아무때나 나온다고 했는데 정말 그랬어요. 다행히 B가 준비한 홈메이드 커스터드가 적당히 달고 맛있어서 분위기는 다운되지 않았어요.
와인과 수다, 그리고 도미. 더 바랄 게 없는 토요일 밤이었어요.
요리할 때 가장 행복한 멕시코 남자와 맛있게 먹고 글 쓰는 게 세상 가장 즐거운 한국 여자가 함께 삽니다. 영화 <줄리 앤 줄리아>에서 영감을 얻어 다이애나 할머니의 멕시코 가정식 레시피를 매일 하나씩 만들어 감탄하며 먹고 기록합니다.
Recipes from Diana Kennedy X Alfie cooks & Jay writes
Instagram @jogum_strang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