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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자연 Mar 27. 2022

단골 정육점이 생겼다

이 글은 월간에세이 2021년 4월호에 게재되었습니다



“사람이 왜 저렇게 많아?”


날씨가 많이 춥지 않아서 공원을 한 바퀴 돌고 집에 돌아가는 길이었다. 남편이 도로 건너편을 가리켰다. 분명히 시력은 내가 더 좋은 것 같은데 남편의 눈썰미만큼은 따라갈 수 없다. 길가에 웅크려 앉은 고양이, 갈대밭에 숨은 참새 떼들을 누구보다도 빨리 포착해내는 재주가 있다. 이번엔 뭘 찾아냈나 고개를 빼고 보니 어떤 가게 앞에 사람들이 줄을 일렬로 길게 서있었다. 언뜻 보이는 따뜻한 분홍색 불빛으로 보아 새로 생긴 작은 정육점 가게였다. 유난히 말끔하게 반짝이는 새 간판이 눈에 띄었다. 


한동안 대형마트에서 고기를 사 먹었는데 이렇게 인기 많은 정육점이 집 앞에 생겼으니 희소식이 아닐 수 없었다. 대형마트에서 고기를 사는 건 아무래도 간편하지만 재미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특히 요리책을 뒤지며 온갖 요리를 다 해보는 남편은 고기도 여러 부위가 조금씩 필요할 때가 많았는데 '돼지고기 앞다리살 400그램이랑 라드용 비계 조금이랑.. 돼지 볼살 부분도 조금 필요한데..?' 하는 식이었다. 대형마트에서는 받아주지 않는 주문이었기에 시장에 있는 정육점을 찾아갔다가 주인장이 대놓고 비꼬는 태도를 취해 소심해져 버린 이후로 고기는 그냥 마트에서 사 먹고 있었다. 


새로 생긴 정육점, 정확히는 고기 도매집 근처를 여러 번 지나다니며 우린 두 가지 점에 놀랐는데 첫째는 그 앞에 아주 추운 날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사람들이 줄을 길게 서있다는 사실이었으며, 둘째, 그 작은 가게에서 뿜어져 나오는 엄청난 에너지였다. 청년들 넷이 활기 넘치게 일하고 있었는데 적게는 20대 중반에서 많아봐야 30대 초반쯤으로 보였다. 집 주변에 이런 인기 만점의 정육점이라니! 그리고 자신들의 일을 무척이나 사랑하는 것 같아 보이는 근사한 청년들이라니! 이들이라면 우리의 조금은 답답하고 요상한 주문도 잘 받아줄 것만 같았다. 


평일 오전 바로 옆 과일가게에서 아보카도와 토마토를 한가득 사고 정육점에 들렀다. 날이 추우니 미트볼 수프를 만들 생각이었다. 이른 시간이라 그런지 손님이 없었다. 젊은 청년 둘은 가게 안쪽에서 분주히 고기를 해체하고 있었고 나머지 두 명이 손님을 맞이했다. "어서 오세요. 뭐 드릴까요" 우렁찬 목소리로 청년이 물었고 남편이 서툰 한국어로 대답했다. "돼지고기 400그램이랑 소고기 300그램 갈아주세요" 그는 흔쾌히 알겠다고 하며 가게 안의 다른 동료들에게 큰소리로 외쳤다. "우리 가게가 이제 벌써 글로벌해져 갑니다 형님들! 외국인도 우리 가게 오는 걸 보니 우리식 개그가 먹히나 봐요!" 모두가 웃으며 한 마디씩 했다. 기분 좋은 마음으로 그들의 가게를 둘러보았다. 특별해 보이는 건 딱히 없었다. 단지 그 싱그럽고 활짝 핀 얼굴들 넷 만으로 충분히 반짝였다. 


새해, 단골 정육점이 생겼다. 


(20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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