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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자연 Oct 03. 2016

크루즈에서 내가 만난 사람들

그렇게 우린 서로의 기쁨이 되었다



손님이 왕인 거 몰라?!



프런트 데스크에서 근무할 때 이런 사건이 있었다.


한 게스트가 데스크로 찾아와서 룸에 먼지가 많고 지저분하다며 발코니 룸으로 업그레이드를 요구했다. 얼른 하우스키핑 매니저에게 연락해 룸 확인을 부탁했다. 하지만 확인 결과 먼지는커녕 룸은 하자 없이 깨끗하기만 했다. (사실 매일 쓸고 닦는 게스트룸에 먼지가 있을 수가 없다) 정중히 설명하는 나에게 게스트는 도저히 말이 안 통하니 매니저를 불러오라고 언성을 높이기 시작했다. 불려 나온 매니저는 룸에는 아무 하자가 없으며 현재 만실이라 남는 발코니 룸은 하나도 없다고 다시 한번 설명했다. 아니 내가 지저분하다면 지저분한 거지 뭘 따지고 드냐며 크루즈 환불을 해달라고 소리를 지르는 게스트에게 매니저는 시큐어리티를 부르기 전에 언성을 낮추시라고 정중히 말했다. 게스트는 심지어 보란 듯이 데스크를 주먹으로 두들기며 고함을 질렀다.


"I can do whatever I want! Guest is a KING!" (난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있어. 손님이 왕인 거 몰라?)


이미 데스크에서 다른 업무를 보던 게스트들과 줄에 서있는 모든 사람들이 나와 매니저를 안쓰럽다는 듯이 조용히 바라보고 있는 상황이었다. 이때 우리 매니저가 단호하게 받아친 말을 잊지 못한다.


"Then act like one" (그러면 왕처럼 행동하셔야죠)



사실 이런 일은 어쩌다가 한 번 있는 에피소드이다. 난 오히려 우리 매니저 말마따나 진짜 '왕다운 게스트'들을 더 많이 만났다. 내가 만난 따뜻하고 사랑스러운 사람들의 이야기를 소개해보려고 한다.







시드니 할머니 할아버지와의 인연



칵테일 해피아워로 붐비는 다이아몬드 라운지의 오후. 마치 알프스의 소녀 하이디처럼 꽃무늬 원피스를 예쁘게도 차려입으신 숱이 많은 하얀 단발머리의 할머니와 뭐가 좋은지 계속 싱글벙글 웃고 계시는 할아버지 커플이 눈에 들어왔다. 왠지 가서 말을 걸고 친해지고 싶었다. 얼른 테이블에 다가가 내 소개를 하고 크루즈 재밌게 즐기고 계신지 여쭈어보았다. 할머니는 나보고 가까이 앉으라고 하시더니 너는 어디 나라에서 왔니, 형제는 몇이니, 집에는 언제 돌아가니 등의 질문공세를 던지셨다. 대화 끝에 우리 가족이 곧 크루즈를 타러 시드니에 온다는 이야기까지 하게 되었다. 그러자 이분들이 반색을 하시며 가족이 시드니에 온다면 호텔 예약하지 말고 당신 집에 머물라는 것이었다. 처음 만난 나에게 이렇게 마음을 열어주시는 것만으로도 고마운데 덜컥 2박 3일 초대까지 받게 되니 몸 둘 바를 몰랐다. 우리의 인연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시드니에 배가 들어올 때마다 나를 만나러 늘 찾아와준 캐시할머니와 데니스할아버지.


한 달 후 캐시와 데니스는 우리 가족을 위해 공항에까지 마중 나와 극진한 대접을 해주었고, 함께 잊지 못할 추억을 만들었다. 여독으로 몸살이 난 동생을 옆에서 정성껏 간호해준 데니스 할아버지는 우리를 손녀로 공식 인정해주시고 일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늘 소식을 전해온다. 아무리 생각해도 80이 다 되어가시는 노인분들이 어쩜 그렇게 무한 체력으로 우리 가족을 데리고 시드니 구석구석을 2박 3일 내내 구경시켜 주셨는지 감사할 따름이다. 전직이 간호사였던 캐시 할머니는 어찌나 걸음이 빠르신지 나와 우리 엄마가 쫓아다니며 헥헥거릴 정도였다. 중국과 일본을 제외한 해외여행이 처음인 엄마와 영어에 서툰 아빠였지만 따뜻한 소통의 공간에서 모두 하나가 되어 함께 바비큐를 굽고 즐거운 이야기로 가득 찼던 저녁을 잊지 못할 것이다. 부디 시드니에서 다시 만날 날까지 오래오래 건강하셨으면 좋겠다.










우리 남편의 전쟁 트라우마를 치유해주어서 고마워요




버트 할아버지와 린 할머니를 처음 만난 건 지난 1월이었다. 할아버지는 라운지에 들어서자마자 내 이름표를 찬찬히 살펴보시더니 한국인이냐고 재차 물어보셨다. 난 그때서야 할아버지의 모자에 훈장처럼 적힌 KOREAN WAR VETERAN (한국전쟁 베테랑)을 읽을 수 있었다. 유엔참전용사였던 할아버지는 한국에서 전쟁고아들을 보면 마음이 얼마나 아팠는지 모른다며 자꾸 내 손을 보듬으셨다.


버트 할아버지와 린 할머니는 일주일 내내 매일 아침 열 시에 어김없이 라운지를 방문하셨다. 일부러 핸드폰을 가져가 서울의 최근 사진도 보여드리고 눈 덮인 한국의 겨울 모습도 보여드렸다. 할아버지는 시시콜콜한 모든 것을 물어보셨고 때로는 물어본 것을 또 물어보셨다. 그때마다 난 최선을 다해 미주알고주알 다 대답해드렸다.


크루즈가 끝나기 전날 린 할머니가 혼자 라운지에 오셨다. 할머니는 두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하셔서는 버트 할아버지가 전쟁 후 트라우마가 심해서 사람들도 잘 안 만나고 전쟁에 대해 말하는 것도 꺼리시며 평생을 살아오셨다고 했다. 폭탄 때문에 귀도 한쪽 잘 안 들리시고 성격도 우울해지셔서 할머니가 고생이 많았다고 하셨다. 그런데 이렇게 나를 만나 전쟁에 대해서도 이야기하는 걸 보니 그저 신통방통할 뿐이라고 하시는 거다. 난 그저 말씀을 들어드린 것 밖에 없는데 내 두 손을 잡으시고 자꾸 고맙다 고맙다 하시니 그저 황송할 뿐이었다.


그로부터 두 달 후, 조용한 바다 위의 아침. 라운지 문이 열리더니 버트 할아버지와 린 할머니가 두 팔을 벌리고 눈이 동그래진 나를 향해 달려오셨다. 그동안 얼마나 보고 싶었는지 모른다고 하시며 꼭 안아주셨는데, 나를 만나기 위해 연락도 없이 몰래 크루즈를 예약하신 것이었다. 버트 할아버지는 이번엔 만반의 준비를 해왔다고 하시며 누런 종이봉투를 여셨다.



김대중 대통령으로부터 받은 6.25전쟁 50주년 기념 감사서한
버트할아버지가 직접 찍으신 전쟁당시 부산의 모습




사진의 가장 오른쪽 아래에 있는 고아 소년을 잊을 수가 없다며 할아버지는 그 사진을 몇 번이고 쓰다듬으셨다. 그때 주머니에 있는 걸 다 털어주고도 더 주지 못한 걸 지금까지도 후회한다고 하셨다. 지금은 한국이 많이 발전했다고하니 좋은 음식 먹으면서 잘 살고 있는지, 결혼해서 나 같은 딸도 있는지 궁금하다고 하시며 자꾸만 사진을 들여다보셨다.


역시 매일 아침 열 시에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라운지를 방문하셔서 나와 커피타임을 가졌고, 할아버지는 그때마다 다른 색의 모자를 쓰고 오셔서 나와 매일 한 장씩 사진을 찍으셨다. 그리고 몇 주 후, 한국의 우리 집 주소로 누런 봉투 하나가 배달되었다. 나와 매일 찍은 그 사진들이 한 장씩 모두 일곱 장 가지런히 들어있었다. 할머니 몸이 안 좋으셔서 먼 한국까지 와볼 수 없는 게 너무나 아쉽다고 하신 버트 할아버지. 떨리는 손으로 한국의 우리 집 주소를 또박또박 적으셔서 설레는 마음으로 보내셨을 생각을 하니 마음이 먹먹했다. 내가 정말 린 할머니 말대로 버트 할아버지의 트라우마를 조금이나마 낫게 해드린 건지는 잘 모르겠다. 그렇지만 나와 함께 찍은 사진들을 냉장고에 붙여놓고 사람들까지 초대해 자랑을 한다고 하시니 많이 좋아지신 것만은 틀림없는 것 같다.






사람들을 만난다는 것은 이렇게 가슴 따뜻해지고 때로는 먹먹해지는 일인 것 같다. 크루즈에서 컨시어지가 어떤 직업이냐고 묻는다면 난 사람들을 알아가는 일을 한다고 말한다. 내가 어떻게 감히 캐시 할머니와 데니스 할아버지의 사랑에 보답하고, 버트 할아버지를 치유해드렸다 말할 수 있을까. 그렇지만 우리가 서로의 작은 기쁨이 된 것만은 분명하다.


나는 행복한 크루즈 승무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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