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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자연 Nov 14. 2016

그런데.. 이름이 뭐더라?

컨시어지의 평생 미션. 게스트의 이름과 얼굴 기억하기




“굿모닝 제이”





내 이름은 홍자연.


이름 그대로 자연스럽게 살라고 아빠가 지어주셨다. 난 내 이름이 참 좋다. 그래서 외국생활을 5년 넘게 하면서도 그 흔한 영어 이름 하나를 안 만들었다. 딱히 나에게 어울리면서 마음에 드는 이름을 찾지 못한 이유다. 하지만 나도 Jorge를 조지가 아닌 호르헤로 발음하려고 노력하고, 온갖 스펠링이 난무한 러시아 이름을 어설프게나마 비슷하게 발음하려고 갖은 애를 쓰는데 나도 내 이름 그대로 불려야 공평하지 않냐는 약간의 고집스러움도 한몫했다.


그러나 외국인이 발음하기에 내 이름이 어렵다는 건 나도 인정한다. 영어로 “Jayeon”이라고 표기하는데 일단 외국인들 눈에 가장 먼저 들어오는 건 제이 “Jay”인 거다. 그러니 모두 나를 “제이언” “제이용” 이라고 부르는데 결국 나도 얼마 지나지 않아 웬만한 제이로 시작되는 이름에는 무조건 반응을 하게 되었다. 나중에는 적응이 되어 누가 이름을 어떻게 발음하냐고 물어보면 “제이연”이라고 가르쳐주고는 흠칫할 때가 많다. 


프런트 데스크에서 근무하다가 VIP라운지를 관리하는 컨시어지가 되고 나니 내 이름으로 불리는 일이 훨씬 많아졌다. 컨시어지가 되어 달라진 점 중에 가장 맘에 드는 부분이다. 같은 게스트를 일주일 내내 만나다 보니 서로 이름을 부르는 사이가 되는 것이다. 모두가 내 이름을 불러준다는 게 참 좋다. 비록 그 이름이라는 게 "제이" 비스름하게 들리는 온갖 음절이라 할지라도. 문을 열고 들어오며 “굿모닝 제이”하고 말해주는 게스트들 덕분에 기분 좋게 하루를 시작한다.








문제는 나도 게스트들의 이름을 기억하고 불러야 한다는 것이었다. 




외국 게스트들은 이름을 부르는 것도 좋아하지만 불리는 것도 좋아한다는 사실을 잊으면 안 된다. 특히 VIP 게스트를 상대하면서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도 꼬박꼬박 이름을 부르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격식을 갖춰 'Good morning Mr.Brown'하고 인사하지만 곧 “Just call me Will. (그냥 윌이라고 불러도 돼)”하는 유쾌한 대답이 돌아온다. 이제 통성명도 했고, 이름으로 불러도 된다고까지 했으니 이젠 그 게스트를 만나면 반갑게 “Hi Will!” 하면 되는 거다. 문제는 지금부터 시작된다. 그 이후에 두 세명의 게스트를 더 만나고 나면 내가 아까 만난 사람이 윌인지, 빌인지 토마스인지 헷갈리는 것이다. 게다가 가만히 생각해보니 그 게스트는 윌처럼 생기지도 않았다. 오히려 조나단에 더 가깝게 생겼다. 이 혼란스러움을 한국식으로 비유하자면 유재석처럼 생긴 게스트에게 “김구라 님 안녕하세요”하는 격이다. 그것도 게스트를 만나자마자 척척 말이다. 


나를 더 혼란스럽게 하는 건 외국 게스트들은 어떻게 꾸미냐에 따라 완전 다른 사람이 된다는 사실이었다. 예를 들어 첫날의 경우 보딩 데이(Boarding day, 승선일)기 때문에 대부분의 게스트는 선드레스나 청바지 같은 편한 복장으로 라운지에 온다. 나는 첫날 가능하면 모든 게스트와 인사를 하고 내 소개를 하기 위해 테이블마다 돌아다니면서 게스트를 만난다. 이름소개에 그치지 않고 어디서 왔느냐부터 시작해서 온갖 질문에 대답을 하다 보면 이야기꽃을 피우다가 친해져서 그럼 내일 봐~ 하는 사이가 된다. 문제는 그 내일이다. 아침에 눈도 뜨지 않은 채로 모닝커피를 찾는 미국 게스트들은 그 일어난 차림 그대로 라운지에 올 때가 많다. 그러면 분명히 어제 만난 게스트라도 부스스한 헤어스타일에 시꺼먼 선글라스를 끼고 들어오면 알아볼 재간이 없다. 그럼 난 처음 만난 게스트인 줄 알고 내 소개를 또 한다. 그럼 게스트는 웃으며 말한다.


 “나야, 어제 만났잖아. 미안. 내가 못 알아보게 하고 오긴 했지”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바로 그날 저녁. 즉 둘째 날 이브닝은 포멀 나잇(Formal night)이라고 해서 모두가 턱시도와 드레스를 차려입고 저녁을 먹고 각종 액티비티를 즐긴다. 라운지도 덩달아 바빠지고 할리우드 스타들처럼 멋지게 차려입은 게스트들이 하나 둘 들어온다. 큰일이다. 모두가 완벽하게 변장을 한 것만 같다. 내가 알던 윌도, 캐럴도 보이지 않는다. 그때 한 게스트가 내 어깨를 툭 치며 말한다. “헤이 제이, 아침부터 지금까지 계속 일하는 건 아니겠지? 좀 쉬었어?” 목소리로 넘겨짚어보아 윌이 분명하다. 그런데 통 큰 청바지를 입고 야구모자를 썼던 어제의 컨츄리 스타일 윌은 온데간데없고 내 앞에 서있는 건 머리를 말끔히 빗어 넘긴 휴 잭맨이다. 나의 혼란스러움을 아는지 모르는지 윌은 묻는다. 



“그나저나 내 와이프 봤니?” 











이름을 다 외우면 떠나는 그들,
나에겐 너무나 짧은 일주일



그렇게 난 매일 게스트를 기억하기 위해 머릿속으로 치열한 전쟁을 한다. 사나흘 정도가 지나면 게스트 얼굴도 눈에 익고 자주 오는 게스트와는 만나면 허그를 할 정도로 친해진다. 조나단같이 생겼던 윌도 점점 윌처럼 보이기 시작한다. 그렇게 마지막 며칠을 게스트들과 정이 들어 즐겁게 보내고 나면 일주일 크루즈가 끝난다. 


"Bye Will, Bye Carol" 


며칠이나마 정이 들어 아쉬운 것도 있겠지만 겨우 이름과 얼굴을 익혀놨는데 떠난다는 사실이 아쉽다. 내일 이들이 모두 떠나면 삼 천명의 새로운 게스트들이 승선할 것이다. 그럼 난 다시 새로운 윌과 새로운 캐럴을 만나야겠지. 이렇게 난 같은 듯 다른 일주일을 또 맞이한다.


그나마 유럽 사람들과 미국인들이 섞여있는 인터내셔널 크루즈의 경우에는 게스트들의 이름과 얼굴을 기억하기가 수월하다. 사람들마다 특징이 분명해서일 거다. 하지만 고정적인 텍사스 시즌, 플로리다 시즌은 늘 같은 코스를 돌아서 일 자체가 수월한 대신 게스트의 이름과 얼굴을 기억하는 일에는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모두가 비슷한 나이에 비슷한 말투와 억양을 구사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부모님들이 특정 나이대가 되면 색색깔의 등산복을 선호하시듯이 미국 어르신들의 스타일도 비슷비슷하다. 그러니 내가 게스트의 이름을 바로 부르며 인사하거나 만나서 반갑다고 악수를 청하는 대신 가끔 그저 무조건 반가워하며 날씨 이야기부터 꺼내는 것도 아주 약은 것만은 아닐 것이다. 






그래도 서로의 이름을 부른다는 건 참 좋다. 가끔 그냥 '제이'라고 불러도 된다고 하는데도 굳이 내 한국 이름을 제대로 발음해 달라고 수첩에까지 써가며 연습하는 게스트들도 있다. 뿐만 아니라 더듬더듬 안녕하세요, 감사합니다를 연습해서 만날 때마다 꼭 말해주는 게스트들도 많이 만났다. 그래서 난 더 열심히 그들의 이름을 기억해서 꼭 불러주려고 노력한다. 


서비스라는 게 꼭 거창한 것만은 아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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