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패터슨>
케레타로 다운타운을 걷다가 주변에 있는 스페인 양식의 성당들과 달리 현대적으로 보이는 한 건물이 눈에 들어왔다. “여긴 뭐 하는 곳이야?” 물으니 늘 까불거리는 산티아고가 대답했다. 별 거 아니라는 듯이.
“아, 여기? 공짜 영화 보여주는데야”
알고 보니 독립영화나 예술영화, 다큐멘터리 등을 무료 또는 저렴한 가격으로 상영하는 극장이었다. 그러고 보니 지난 번 문학축제 때 이 곳에서 세계 작가들의 강연회가 열렸던 것이 생각났다. 1층 로비에서는 작가들의 책이나 기념품 등을 팔았고, 널찍하게 탁 트인 중앙 계단을 올라가면 양 쪽으로 상영관 두 개가 각각 자리하고 있었다. 전면에는 커다란 스크린뿐만이 아니라 넓은 무대도 갖추고 있어서 여러 용도로 사용할 수 있는 꽤 괜찮은 장소였다.
그곳에서 얼마 전 <패터슨>이라는 예술영화 한 편을 봤다. 지인의 초대를 받아 어떤 영화인지도 모르는 채로 간신히 상영 시간에 맞추어 도착했다. 세 자리가 나란히 비는 곳을 목을 길게 빼고 열심히 찾아야 할 정도로 꽤 많은 사람들이 앉아있었다. 자리에 앉자마자 조명이 어두워졌다.
"이거 미국 영화 맞지? 저번처럼 스페인어 더빙은 아니겠지?"
"글쎄, 영어로 나와야 할 텐데"
어둠 속에서 속닥거리는 사이 영화가 시작되었다. 다행히 스페인어는 자막으로 나왔다.
시 쓰는 버스기사 <패터슨>
영화의 주인공인 ‘패터슨’은 버스 기사이다. 그는 자신과 이름이 같은 뉴저지의 ‘패터슨’ 지역을 매일 운행한다. 영화는 패터슨의 일주일을 요일 순서대로 보여주는데 그의 매일의 일상은 비슷비슷하다. 아침 여섯 시 십 분쯤 알람 없이 눈을 떠 시계를 확인하는 것으로 하루가 시작된다. 옆에서 곤히 자고 있는 여자 친구에게 키스를 하고 어제 먹었던 시리얼을 먹고 일터로 나간다. 버스기사인 패터슨은 늘 같은 루트를 돌며 같은 곳에서 우회전을 하고 정해진 정류장에서 승객을 태운다. 하루의 업무가 끝나면 그는 같은 길을 걸어 집으로 향한다. 저녁을 먹은 후 그는 반려견 '마빈'과 함께 동네 산책을 나가 늘 같은 곳에서 맥주 한 잔을 마시고 집에 들어와 잠을 청한다.
여기서 패터슨의 일상을 특별하게 만들어주는 것이 하나 있다. 바로 그가 틈틈이 시를 쓴다는 사실이다. 그는 매일 시간을 쪼개 그만의 공책에 비밀스럽게 시를 쓴다. 그가 쓰는 단어들은 그의 하루만큼이나 일상적이고 소박하다. 화려한 미사여구는 없다. "이런 것도 시가 된다고?" 반문할 정도이다. 다만 그런 사소한 단어들이 모여 문장을 만들고, 행을 이루고, 연이 되고, 한 편의 시가 된다.
마치 사소하고 시시한 하루가 쌓여 계절이 되고, 계절이 쌓여 인생이 되듯이.
(김애란, 바깥은 여름)
인생이 한 편의 시라면
<패터슨>은 삶 전체를 한 편의 ‘시’로 볼 수 있는 새로운 시각을 선물해 준 고마운 영화다. 영화에서 월화수목금토일, 그리고 다시 월요일로 이어지는 일상이라는 반복 속에 마치 변주처럼 등장하는 인물들과 작은 사건들은 우리를 피식 웃게 하거나 가끔 낄낄대게 만든다. <패터슨>은 비록 어제와 크게 다를 것 없는 하루를 시작할지라도, 늘 반복되는 일상을 살아내는 것 같아도 괜찮다고 말해주는 것 같다. 바로 그게 인생이고, 시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삶 속에서 만나는 사람들, 조금씩 다르게 벌어지는 작고 사소한 일들은 근사한 운율이 되어준다.
그리하여 난 오랜만에 멋진 고민을 하게 되었다.
어떻게 하면 나의 시를 더욱 알차고 따뜻한 단어들로 채워 넣을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더 다채롭고 빛나는 이야기로 삶의 운율을 이어갈 수 있을까.
마음을 톡- 하고 건드리는 시 같은 삶을 살고 싶다. 흥행률이 어땠는지는 잘 몰라도 이런 영화 만드는 감독 하나쯤은 있다는 게 감사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