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래스카가 덥다는 건 반칙이야!
처음으로 승선 가방을 싸면서 고민이 많았어요.
'이 정도 옷 두께면 괜찮으려나?'
'경량 구스다운 점퍼 하나 정도는 있어야겠지?'
'그래도 여름이라 따뜻하다는데 너무 유난스럽게 챙겼나?'
매번 얇은 여름옷만 챙기니 가방에 여유공간도 낙낙했는데 처음으로 스웨터와 두꺼운 후드티, 점퍼까지 챙겨 넣으려니 29인치 가방이 어느새 꽉 차더라고요. 지난 5년간 늘 여름을 찾아 떠나는 여정이었지만 이번 여름은 좀 달라요. 전 알래스카로 떠나려 하고 있거든요.
먼저 가있는 친구들에게 물어봤어요. 도대체 옷을 어떻게 챙겨가야 하냐고요. “아직은 점퍼가 필요하나 한여름에는 반팔을 입어도 될 정도”라고 해요. 물론 그래 봤자 한국의 푹푹 찌는 여름 같진 않겠지요. 그래도 “알래스카도 여름엔 더워”라고 말하는 건 마치 “있잖아, 사실 아이스크림이라는 게 때로는 뜨겁기도 해”라는 주장처럼 모순적으로 들리잖아요?
“알래스카는 추움의 대명사 아니었어? 알래스카의 여름이 덥다는 건 반칙, 아니 배신이야!”라고 해도 이해해요. 알래스카의 여름이 상상이 되지 않더라도 괜찮아요. 야자나무 밑에서 딱 붙는 스피도를 입은 해변의 산타를 만났을 때의 충격보단 덜할 테니까요.
게다가 알래스카에는 크고 무시무시한 모기가 많으니 조심하라는 경고도 받았어요. 전 다시 혼란스러워졌지요. 추운 곳에서 모기가.. 사나? 우리는 다시 ‘알래스카의 여름은 의외로 덥다’라는 명제로 돌아가요. 실제로 인터넷을 뒤적거려본 결과 알래스카의 악명 높은 모기에 대한 여러 포스팅을 확인할 수 있었어요. 다행히도 크루즈가 취항하는 곳에서는 웬만해서는 모기를 만나보기 힘들다는 크루즈 여행 전문가의 말에 안심했지요.
그래. 바다 한가운데 모기가 있을 리는 없지.
알래스카에 가는 건 처음이에요.
정확히 말하자면 제가 승선할 곳은 시애틀이고요. 4천 명에 가까운 승객과 천 명의 크루들을 태운 익스플로러호는 시애틀에서 출발하여 알래스카의 주노(Juneau), 스캐그웨이(Skagway), 캐나다의 빅토리아(Victoria)를 거쳐 다시 시애틀로 돌아오는 일주일짜리 크루즈를 9월까지 무한 반복하게 될 거예요. 그러니 저는 매주 금요일에는 시애틀에, 그 이외 대부분의 나날들은 알래스카이거나 알래스카에 가는 길, 또는 돌아오는 길 어딘가에 있게 되겠지요.
알래스카의 여름을 브런치 독자 여러분들과 나눠보고 싶어요. 매주 조금씩 알래스카의 매력을 알아가는 중이라 알짜배기 여행 팁 같은 정보는 좀 부족할 수도 있겠어요. 시원한 알래스카에서 불어온 한 편의 소소한 편지 같은 글이 한국의 찐하게 더운 열기를 조금이나마 식혀주길 바라는 마음이에요.
P.S. 막상 알래스카에 와보니 보통의 날들이 덥거나 그렇진 않아요. 햇살은 따뜻한데 불어오는 바람이 서늘하고, 해가 숨어버리는 날은 추워서 오들오들 떤답니다. 그래도 어제 Skagway는 우리나라 초여름 날씨더라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