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래스카에는 특별한 것이 있다
매주 화요일, 우리는 알래스카의 트레이시암 (Tracy Arm Fijord)의 협곡을 지나 거대한 빙하를 보러 간다. 18세기 초 금광업자들이 지나다녔다는 해상로를 2018년의 우리는 호화 여객선에서 모닝커피를 마시며 감상하고 있다. 어떤 아침은 담요를 둘러야 할 정도로 찬 공기에 코끝이 시리고, 그다음 주 아침은 얇은 가디건이면 충분할 정도로 따뜻하다. 오죽하면 15분마다 한 번씩 바뀐다는 이 곳 알래스카의 여름 날씨는 도무지 종잡을 수 없다.
알래스카의 여름 햇살을 마주하고 있자니 이마가 제법 따끈해져 노곤해지지만 눈 덮인 산과 빙하를 스치고 불어오는 바람은 여전히 청량하다. 알래스카의 바람에는 뭔가 특별한 것이 있다. 일상의 묵은 먼지를 훅 날려 보내주는 느낌이랄까. 나는 알래스카 바다 한가운데에서 크게 심호흡을 한다. 마음 구석구석의 게으른 보푸라기들이 말끔하게 정리되는 것 같다.
언제부터인가 나는 매주 화요일마다 방문하는 이 빙하와 협곡의 어떤 기운이 나에게 영감을 주는 게 틀림없다고 믿게 되었다. 빙하 주변에 머무는 한두 시간 정도는 와이파이도, 심지어 내 업무용 컴퓨터도 먹통이 된다. 모든 시그널이 차단된 이 곳에서는 사방이 고요하다. 만년설을 담요처럼 덮고 잠들어 있는 것 같은 거대한 산을 큰 소리 내어 깨우면 안 될 것 같은 경외감마저 느껴지는 이 곳. 그 앞을 소리 없이 떠다니는 유빙들. 크루즈선의 미세한 진동마저 이 곳에서는 폐를 끼치는 것처럼 느껴질 정도이다. 이 앞에서는 수다수러운 사람들도 말이 없어진다. 그래서인지 나는 산의 이야기를 더 잘 들을 수 있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하늘, 빙하의 속삭임까지도 들리는 것 같다. 그리고 이 작지만 벅찬 감상을 어딘가에다 적어두지 않고는 배기지 못할 지경까지 이른다.
떠다니는 유빙들 위에서는 물개가족이 휴식을 취하다가 거대한 여객선이 다가오는 것을 보고는 하나씩 차례차례 얼음물 속으로 미끄러져 들어간다. 사실 거액의 휴가비를 써서 알래스카에 온 승객들에게 물개 정도는 성에 차지 않는다. 그들은 고래를 찾기 위해 추운 갑판에 선 채로 망원경에서 눈을 떼지 못한다. 이런 애타는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서비스 정신이라고는 그다지 없는 고래들은 어쩌다 멀리서 꼬리만 살짝 보여주며 등에서 피식 물줄기만 뿜어내고 사라질 뿐 가까이 와주지 않는다. 곰도 마찬가지이다. “자 지금부터 지나가는 곳은 알래스카 갈색곰의 서식지입니다”하는 선장의 안내방송이 들리자 거대한 배가 한쪽으로 기우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모든 사람들이 창문에 붙어선다. 그러나 4천 명의 승객들이 어슬렁거리는 곰 한 마리를 학수고대하고 있다는 사실에 갈색곰들은 별로 관심이 없다. 모두 꼭꼭 숨어 한 마리도 눈에 띄지 않는다. 목마른 곰 하나가 물이라도 마시러 나오기를 기다리지만 별 소득이 없다.
(그러니 알래스카 크루즈를 탄다면 기항지 투어를 꼭 신청하는 것을 권한다)
말갛게 핏줄이 보이는 아기의 여린 피부처럼, 산의 형상이 물 위로 아른아른 비친다. 거대한 바위산. 알래스카의 협곡을 이루는 이들은 자칫 황량하게 느껴진다. 그러나 조금씩 벌어진 바위의 틈새란 틈새를 초록의 생명들이 빼곡하게 메꾸고 있는 것을 본다. 매끈한 표면에서는 자라지 않는 나무들이 험난한 바위 사이의 틈바구니 안에서 뿌리를 내린다. 그러니 바위산의 흠은 흠이 아닌 것이 되었다. 새 살이 돋는 기적이며 치유의 현장이다.
아, 정말이지 알래스카는 특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