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단테 알리오 올리오
대부분의 한국인 가정의 냉동실에는 납작하게 얼려진 다진 마늘이 있을 것이다. 우리 엄마도 마늘을 자근자근 빻아서 비닐에 넣고 납작하게 펴지도록 꾹꾹 눌러 담아 손톱으로 정확하게 15등분을 하여 매번 초콜릿처럼 똑 잘라먹을 수 있도록 보관하곤 했다.
알피가 마늘을 보관하는 방법은 좀 다르다. 일단 마늘을 빻거나 다지는 게 아니라 아주 작은 알갱이가 될 때까지 칼로 잘게 썬다. 곧 마늘이 수북해지면 빈 유리병에 넣은 다음 엑스트라 버진 올리브 오일을 입구까지 꽉 채워 냉장고에 보관한다. 며칠 있다가 열어보면 마늘 알갱이들이 올리브 유안에서 거품을 뽀록 뽀록 내고 있다. 이렇게 만들어 둔 마늘은 우리 집 약방의 감초가 된다. 야채를 볶을 때도, 마늘빵을 구울 때도, 닭고기나 소고기에 미리 양념을 저밀 때도 이 올리브유에 절인 마늘 한 스푼이면 만사 해결이다.
특히 오일 파스타인 알리오 올리오를 만들 때 이 마늘은 진가를 발휘한다. 어렸을 때 반찬이 없으면 구운 김에 간장을 찍어서 밥과 김치와 함께 먹었던 기억이 나는데 우리에게 알리오 올리오는 그런 존재이다. 파스타면과 올리브유, 마늘, 소금, 그리고 크러쉬드 레드페퍼만 있으면 재료 준비는 끝이다. 시간도 없고 재료도 없을 때 후딱 만들 수 있어서 편하지만 따뜻한 빵과 와인까지 곁들이면 꽤 그럴듯한 한 끼 저녁이 되기 때문에 그다지 품을 들이지 않고도 기분을 낼 수 있다.
알피의 파스타는 늘 알덴테이다. 소금을 넣은 끓는 물에 스파게티니를 넣고 타이머를 7분 30초에 맞춘다. 알람이 울리고 30초 정도를 꾸물 거리다 보면 적당한 알덴테의 면이 삶아진다. 여기서 면이 조금이라도 더 익어버리면 알피는 바로 시무룩해진다. 처음에는 뭔가 덜 조리된 듯한 식감을 어색해했던 나도 이제는 면이 너무 부드러우면 혀에 감기는 맛이 탱글 하지 않아 아쉽다.
그 날 저녁 알피가 만든 알덴테의 알리오 올리오, 줄여서 알피올리오는 완벽했다. 마침 한 덩이 남은 치즈와 얼른 먹어 치워야 하는 포도 반 송이, 그리고 집 앞에서 사 온 빵이 있었고, 레드와인도 둘이 약간은 아쉽게 나누어 마실 정도로 남아있었다. 이른 저녁의 노란 햇살이 창을 비집고 들어왔고 블루투스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적당히 경쾌한 피아노 연주 덕분에 더욱 그럴듯한 식탁이 되었다.
살짝 설익은 알덴테의 파스타처럼 완벽히 조리되지 않은 지금의 나날들이 좋다. 씹는 재미가 있달까. 이런 순간을 자주 느낄 수 있는 삶이라면 꽤 괜찮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