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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자연 Apr 18. 2020

너의 세계와 나의 세상이 만나면

우리가 결혼이라고 부르는 것

내가 한국에, 그리고 알피가 멕시코에 있을 때 우리 사이에는 14시간이라는 시차가 존재했다. 내가 잠드는 밤 11시면, 아침 9시의 알피는 하루를 시작할 준비를 하고, 알피가 하루를 끝마칠 때쯤이면 난 낮의 일상을 살아가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우리 둘 중에 하나는 항상 깨어있는 그런 효율적인 시스템이었다고 할 수 있겠다. 당시의 우리가 암묵적으로 지키는 룰은 자고 일어나서, 그리고 자기 직전에 꼭 메시지를 보내는 거였는데, 마치 하루의 바통을 넘겨주고 넘겨받는 기분이었다. 그래서인지 우리의 하루는 성실하게, 또 끊임없이 이어지는 것만 같았다. 


그를 만나러 한국에서 멕시코까지 날아가는 동안 시차는 조금씩 줄어든다. 열네 시간, 여섯 시간, 세 시간, 한 시간, 삼십 분, 오 분. 공항의 수많은 이국의 얼굴들 가운데 나의 멕시코인을 한눈에 찾아 반가운 포옹을 하는 순간 우리의 세계는 마침내 땡 하고 겹쳐진다. 합쳐진 우리의 시간은 두텁고 깊다. 그러나 몇 달 후 나는 또 나의 시간을 가방에 챙겨 그의 세계에서 어렵사리 떨어져 나오곤 했다. 


우리는 3년 넘게 이런 연애를 반복해왔다. 함께 있을 때는 짙은 농도의 시간을 보냈고, 떨어져 있을 때는 겹쳐지지 않는 시간을 우리만의 단어들로 이어왔다. 한 사람의 노력만으로는 결코 되지 않는 일이었다. 우리는 성실하게 애틋했다. 서로 당기는 힘이 동등했던 우린 늘 등을 따뜻하게 맞대고 각자의 위치에서 각자에게 할당된 시간을 살아가는 느낌이었다. 그건 조용하지만 힘이 센 감정이었고, 그래서인지 떨어져 있어도 외롭지 않았다.


결혼을 하고 같이 사니 가장 크게 느껴지는 건 우리의 시간이 마침내 완전히 겹쳐졌다는 사실이다. 14시간의 시차가 있을 때는 하루를 두 배로 길게 살아가는 느낌이라 이득이었다면, 함께 있는 지금은 하루를 두 배의 농도로 살고 있으니 더할 나위 없다. 천하무적이 된 기분이다. 시간을 합치길 참 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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