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ineapple vinegar - 멕시칸 파인애플 식초
금요일에 주문한 다이애나 할머니의 요리책 두 권은 아직 오리무중이에요. 해외배송으로 주문을 하려던 찰나에 놀랍게도 누군가가 이 요리책을 두 권 다 중고로 파는 것을 발견했어요. 상태는 최상급인데 가격은 반 값이고 훨씬 빨리 도착할 테니 선택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죠. 그런데 월요일인 오늘까지 판매자에게 아무 연락이 없어서 조바심이 나기 시작하네요. 사실 판매자 분도 누군가 그 책을 주문할 거라고는 기대하지 않았겠죠. 어쩌면 5년 전에 중고서점에 책을 올려두고는 찾는 사람이 없으니 까맣게 잊어버렸는지도 몰라요.
그러나 요즘이 어떤 세상인가요. 다행히 아마존에서 전자책으로 구매가 가능했어요. 알피는 그걸로 충분하지 않겠냐고 했지만 제가 또 누구인가요. 옷은 안 사 입어도 갖고 싶은 책은 사야 하는 홍자연이라고요. 그리고 언젠가 다이애나 할머니의 사인을 받기 위해서는 진짜 책이 있어야 하니까요. 오늘까지도 출고가 안되면 취소해버리고 해외배송으로 다시 주문할까 봐요.
아무튼 전자책만으로도 만족스러운 알피는 레시피를 탐구하기 시작했어요. 그러더니 엊그제 장을 보러 가자는 거예요. 전 입맛을 다시며 신나게 따라나섰어요. 파인애플을 사야 한다길래 집 앞 농수산물 시장으로 향했죠. 과일 가게 아주머니께서는 단내를 맡고 몰려든 작은 날벌레들을 훌훌 쫓아내고 잎 부분을 자른 파인애플을 건네주셨어요. 묵직한 파인애플을 가방에 들쳐 매고 신나게 외쳤어요.
"자 이제 또 뭐 사야 해?"
알피는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어요.
"그게 다야"
알피가 만들기로 한 건 파인애플 식초였어요. 달랑 식초? 전 실망했죠. 오랜만에 멕시코 음식을 먹을 생각에 들떠 있었는데 식초라니요. 그래도 앞으로의 요리를 만들 때 필요하니까 미리 만들어두어야 한다는 알피의 말에 동의했어요. (그러나 그날 저녁 하루 종일 재미없다고 툴툴거렸지요)
먼저 파인애플을 솔로 꼼꼼히 잘 씻어요. 껍질채 써야 하니 베이킹파우더를 이용해서 깨끗하게 씻어야 해요. 그런 다음에는 파인애플을 도마에 세워두고 껍질째로 아주 두껍지 않게 쓱쓱 써는 거예요. 파인애플의 생김새는 보면 볼수록 웃겨요. 사과나 배, 망고 같은 다른 과일들이 세잔의 정물화 느낌이라면 파인애플은 피카소 같다고나 할까요. 삐죽삐죽하고 거칠거칠한 껍질 안에 밤처럼 딱딱한 열매가 들어있는 게 아니라 단내가 폭발하는 부드러운 노란 속이 있는 것도 반전이고요. 아무튼 웃긴 친구예요.
다음으로는 유리 용기 안에 물 1.5리터와 함께 흑설탕 4 테이블스푼을 잘 녹여요. 그리고 썰어놓은 파인애플 껍질들을 과육이 붙어있는 상대로 용기 안에 같이 넣으면 완성이에요. 참, 식초가 만들어지면서 가스가 발생하기 때문에 일반 용기의 경우 뚜껑을 닫고 보관했다가는 폭발해버릴 수 있어요. 공기가 통하는 천을 이용해서 고무줄로 묶어 보관하는 것도 방법이고, 아니면 안쪽 공기가 자동으로 배출되고 바깥공기를 차단하는 발효용 식품 전용 용기를 사용하는 것도 좋아요. 만들어둔지 아직 48시간이 안되었는데 벌써 뽀글뽀글 공기방울이 하나씩 올라오기 시작하네요.
따뜻하고 밝은 곳에 3일 정도 두면 발효가 시작된대요. 3주 정도 더 지나면 용액이 산성으로 변하는데 그쯤이면 전체적으로 짙은 호박색을 띄게 돼요. 그러다 보면 하얀색 젤리 같은 물체가 생겨나는데 징그럽다고 놀래지 말고 그게 약간 단단해질 때까지 (3주 정도 더) 기다렸다가 체에 밭쳐서 거르면 그게 바로 파인애플 식초라고 해요. 알피가 그러는데 어렸을 때 누나가 거의 다 만들어놓은 파인애플 식초에서 생겨난 그 하얀색 물체를 보고 청소하시던 아주머니께서 상한 건 줄 알고 다 갖다 버리신 적이 있대요. 아까워라. 아무튼 앞으로 6주가 더 지나야 이 파인애플 식초를 맛볼 수 있는 거네요. 다이애나 할머니가 레시피의 끝에 이렇게 썼어요.
"Yes, you need patience, but it is worth it." (인내심이 많이 필요할 것이지만 충분히 그럴 가치가 있다)
알았어요. 기다려볼게요.
참. 남은 파인애플은 오늘 아침으로 맛있게 먹었어요.
요리할 때 가장 행복한 멕시코 남자와 맛있게 먹고 글 쓰는 게 세상 가장 즐거운 한국 여자가 함께 삽니다. 영화 <줄리 앤 줄리아>에서 영감을 얻어 다이애나 할머니의 멕시코 가정식 레시피를 매일 하나씩 만들어 감탄하며 먹고 기록합니다.
Recipes from Diana Kennedy X Alfie cooks & Jay writ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