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llo en salsa de cacahuate
<Essensial cuisines of Mexico> 책에서 다이애나 할머니는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No meal in Mexico is completed without the corn tortilla to accompany it."
(멕시코의 모든 식사의 완성은 옥수수로 만든 또띠아와 함께 할때이다)
한국인의 집에 쌀이 떨어지지 않게 채워두듯이 멕시코에서는 또띠아가 그래요. 멕시코에 있을 때 매주 시장에서 얼굴과 손에 주름이 자글자글한 할머니가 파시는 손바닥만한 또띠아를 dos dozena(24장)만큼 사던 기억이 나요. 푸른색 옥수수에서 만들어져서 푸른빛이 도는 또띠아, 일반 노란 또띠아 열두 장을 반반씩 사서 돌아오면 일주일이 넉넉해지는 기분이었어요.
아쉽게도 한국에서는 제대로 된 또띠아를 찾기가 힘들어요. 대형 마트에서 흔히 파는 것들은 대부분 밀가루이고 온라인 쇼핑몰에 냉동 옥수수또띠아가 있긴 한데 단연 핸드메이드 또띠아와는 비교가 되지 않겠죠. 만약 우리가 다이애나 할머니의 레시피를 냉동또띠아를 사용해서 요리한다면 질색을 한 할머니가 수원까지 쫓아오실 것 같은 기분이에요. 그래서 조만간 말린 옥수수를 구해서 또띠아를 직접 만들어볼 생각이에요.
일요일 저녁, 제가 어학원 수업을 하는 동안 알피는 요리책을 뒤적거리며 또띠아를 사용하지 않고도 당장 만들어 먹을만한 레시피를 찾고 있었어요. 그리고 수업이 끝나는 시간에 맞추어서 알피가 지하철역으로 마중 나왔어요. 수많은 사람들의 비슷비슷한 얼굴 사이로 알피의 외국인 얼굴을 찾아내는 건 참 쉬워요.
우리가 요즘 과일이랑 채소를 사기 시작한 작은 가게가 있어요. 처음에 알피가 혼자 다녀왔는데 주인아주머니가 불친절했다고 하는 거예요. 그래서 다음에는 같이 갔죠. 진짜 좀 퉁명스럽고 어딘가 말이 짧긴 했는데 뭔가 특이한 느낌이 들어서 잘 들어보니 중국사람이었어요. 그냥 한국말이 어눌한 거였던거지 무례했던건 아니었어요. 우리에게 반말을 하시긴 하지만 그래도 몇 번 봤다고 계산을 마치면 큰 소리로 "쌩큐"를 외치시는 재밌는 아주머니예요.
그날도 그 가게에서 필요한 장을 보고 땅콩을 한 봉지 샀어요. 알피는 땅콩 봉지를 들어올리며 눈을 동그랗게 뜨고 서툰 한국어로 이렇게 말해서 나를 또 웃게 만들었어요.
"땅콩 서비스 드릴까요?"
알피가 좋아하는 드라마 <동백꽃 필 무렵>에서 노규태 씨가 그렇게 '땅콩 서비스'를 외쳐댄 덕분이에요.
그날 저녁 요리는 "Pollo en salsa de cacahuate"였어요. Pollo는 닭이고 cacahuate는 땅콩이에요. 다시 말해 땅콩소스를 얹은 닭 요리 정도가 되겠네요. 레시피에 의하면 Oxaca(와하카) 지역에서 맛있게 먹는 음식 중 하나인가 봐요. 필요한 재료는 다음과 같아요.
닭고기 2kg
소금 1 티스푼
갈아 넣을 통후추
라임즙 4-5 테이블스푼
네 조각낸 양파 한 개
마늘 2 조각
시나몬 스틱 한 개
정향 6알
통후추 6알
생땅콩 1 1/4 컵
토마토 450g
아도보 치뽀뜰레
식물성 기름이나 닭 지방 3 테이블스푼
물 2컵(500ml)
다이애나 할머니의 레시피의 대부분은 거의 다섯 명 정도가 먹을 수 있는 양이기 때문에 우리는 재료를 반으로 줄여서 준비해요. 마침 소금과 후추 간을 해놓은 닭고기가 있었어요. 알피는 라임의 반을 잘라주며 말했어요.
"한국에서 라임 한 개 값이면 멕시코에서는 반 키로는 살 수 있을걸"
귀하고 비싼 라임이니까 한 방울도 남기지 않으려고 있는 힘을 다해서 닭고기 위에 쥐어짰어요. 이제는 소스를 준비할 차례예요. 먼저 기름을 두르지 않은 팬을 달군 뒤에 자르지 않은 통째로의 토마토 세 개, 마늘 한 알, 고추, 4 등분한 양파를 부드러워질 때까지 올려둬요. 참, 정향(cloves)이랑 계피 스틱도 함께 놓고 구워요. 마지막으로는 껍질을 벗긴 땅콩을 팬에 놓고 노릇노릇해질 때까지 굽는 거예요. (땅콩을 까는 건 제 몫이었어요) 이렇게 하면 재료 본연의 향과 기름이 자연스럽게 나온다는데 정말 허옇던 땅콩에 반질반질하게 기름기가 돌기 시작했어요.
팬에서 골고루 달궈진 토마토의 껍질을 벗기는 건 쉬워요. 이제는 땅콩만 빼고 아까 구운 소스 재료들을 모두 블랜더에 넣고 갈다가 땅콩을 조금씩 넣으면서 계속 갈아요. 땅콩을 넣을수록 소스가 점점 걸쭉해지다가 마지막에는 약간 크림처럼 변하더라고요. 이때 치뽀뜰레를 살짝 추가했어요. 너무 많이 넣으면 매워질 수 있으니 조심해야 해요. 치뽀뜰레에 대해서는 말하다 보면 길어지니 다음에 이야기할게요.
이번에는 팬에 기름을 두르고 닭을 요리하기 시작해요. 고기가 '황금색'을 띄면서 익으면 (제가 가장 좋아하는 순간이에요) 그릇에 따로 담아두고, 남은 기름 위에 소스를 부어요. (조심해요!) 소스가 바닥에 들러붙지 않도록 잘 젓다가 물 한 컵을 추가하고 아까 조리해 둔 닭도 함께 넣어요. 다이애나 할머니는 35분에서 40분 정도 기다리라고 했지만 배도 고팠고 닭도 다 익었길래 우리는 20분 만에 불을 끄고 먹기 시작했어요. 냄새만 맡아도 침샘이 폭발하는 것 같아서 참을 수가 없었거든요.
그날 밤 우리는 영화 <달콤 쌉싸름한 초콜릿 Como agua para chocolate>을 보면서 늦은 저녁을 먹었어요. 땅콩과 양파, 토마토, 마늘, 고추, 그리고 정향과 계피 향이 어우러진 소스는 '멕시칸 스타일 커리'라고 이름 붙여도 될 것 같았어요. 어쩌면 흰쌀밥에 얹어서 먹어서 그랬는지도 몰라요. 인도 커리만큼 맛이 강하지는 않으면서 땅콩의 고소함이 입안 가득 느껴지는 부드러운 맛이었어요. 닭고기와도 꽤 잘 어울렸고요.
아참. 다이애나 할머니의 레시피에 밥은 없었어요. 그래도 뭐 어때요. 밥 한 그릇을 뚝딱 비웠는걸요. 할머니께서도 막 지은 한국 쌀밥을 먹어보신다면 분명 레시피에 추가하고 싶어 지실 거예요.
요리할 때 가장 행복한 멕시코 남자와 맛있게 먹고 글 쓰는 게 세상 가장 즐거운 한국 여자가 함께 삽니다. 영화 <줄리 앤 줄리아>에서 영감을 얻어 다이애나 할머니의 멕시코 가정식 레시피를 매일 하나씩 만들어 감탄하며 먹고 기록합니다.
Recipes from Diana Kennedy X Alfie cooks & Jay writ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