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zón을 넣은 도미요리 | Pescado En Tikin Xik
"멕시코 음식에는 Sazón(사손)이라는 게 있어."
아침 일찍 집 앞 수산시장에 함께 장을 보러 가며 알피가 말했다.
"그게 뭐야?"
"음식을 만들면서 넣는 감정 같은 거야. 너 예전에 멕시코에 놀러 왔을 때 내가 세비체 만들어준 거 기억나?"
"그럼, 기억나지. 그때 세 종류나 만들어줬잖아."
"그때 그냥 레시피대로 만들었던 게 아니야. 네가 가보지 못한 칸쿤을 세비체를 통해서 느끼게 해주고 싶었거든. 내가 경험했던 그곳의 색이랑 질감, 분위기, 냄새 그런 모든 것을 너에게 전달하고 싶었어. 난 그날 세비체에 Sazón을 듬뿍 넣어서 요리한 거야"
어쩐지 그 날의 세비체는 알록달록했고 청량한 하늘 맛이 났었다. 그리고 후에 우리가 함께 칸쿤에 갔을 때 나는 그 세비체를 떠올렸다. Sazón(사손)을 한국어로 뭐라고 번역하면 좋을까. 정성? 손 맛? 기운? 꼭 들어맞는 단어가 떠오르지 않는다. 대신 낮에 찾아오기로 한 오랜 친구 Y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럼 오늘 만드는 요리에 좀 특별한 Sazón을 넣어줄 수 있을까?"
내가 말했다.
"어떤?"
"나는 Y가 좋은 사람을 만나서 다시 사랑할 수 있게 됐으면 좋겠거든. 그리고 지금 아프고 힘든 것도 서서히 괜찮아졌으면 좋겠어. 그러니까 오늘은 Sazón을 좀 가득 담아주라"
나의 친구 Y의 5월은 다사다난했다. 소중한 사람을 하늘로 떠나보내고 울다가 웃다가 시무룩해지고 괜찮은 듯하다가 힘들어하곤 했다. 과음도 잦았다. 요즘은 힘을 내서 다시 사람들도 만나고 씩씩하게 지내고 있는 그녀가 연차를 내고 수원에 온다고 했을 때 알피는 서슴없이 점심을 만들어주겠다고 했다.
"알았어. 마법의 가루를 좀 넣어볼게"
해산물을 즐겨먹는 Y를 위해 우리는 'Pescado En Tikin Xik'을 만들기로 했다. 스페인어로 Pescado(페스카도)는 생선이고, Tikin Xik(티킨씩)은 말린 고추를 의미한다. 어딘가 동남아 요리 이름처럼 들리기도 하는 '티킨씩'은 유카탄 반도의 대표적인 생선요리이다.
"레드 스내퍼를 사야 하는데"
생선 이름, 고기 부위 같은 명칭에 취약한 나는 주저 없이 네이버에 레드 스내퍼를 친다. 홍돔! 홍돔은 뭐지. 핸드폰의 이미지를 크게 확대해서 수산시장에 매대에 뉘인 수많은 생선의 얼굴과 대조해본다.
"저깄다!"
붉으스름한 생선이 눈에 들어왔다.
"도미 한 마리 드릴까?"
가게 주인이 커다란 도미 한 마리를 순식간에 쓱쓱 손질해서 봉지에 담아 건넨다.
집에 와서 알피는 뚝딱뚝딱 양념을 만들기 시작했다. 다이애나 할머니의 레시피에 있는 Achiote(아씨오떼) 씨는 없었지만 다행히 멕시코에서 알피의 누나가 가져다준 페이스트가 있었다. 아씨오떼 페이스트와 오레가노와 마늘과 후추, 소금, 식초, 마지막으로 오렌지 하나를 즙으로 만들어 섞고, 올리브 오일도 첨가한다. (올스파이스도 넣어야 했는데 없었다. 아직 바다 건너오는 중) 그리고 블랜더에 갈면 선명한 주황색의 양념이 완성된다. 색깔만 보면 굉장히 매워 보이는데 사실 그렇진 않다.
알피는 시장에서 사 온 도미를 양념에 재우면서 말한다.
"얼른 가서 친구랑 커피 한 잔 하면서 놀다 와. 점심 맛있게 해 놓을게"
그날의 점심에는 Sazón 이 가득했다. 작은 밥상의 한가운데를 커다란 도미가 차지했다. 하얗고 담백한 도미의 속살과 붉은 티킨씩 양념의 조합은 '원래 생선은 이렇게 해 먹는 거 아니었어?' 하는 생각까지 들 정도였다. 맵지도 짜지도 않아서 자꾸 손이 갔다. 게다가 알피는 내가 제일 좋아하는 살사와, 처음 보는 콩 요리까지 만들었다. 정말 마술을 부린 것 같기도 했다.
"너 고수 먹어?"
Y는 고개를 저었다.
다이애나 할머니는 다큐멘터리 <Nothing Fancy>에서 말씀하셨다.
"고수(Silantro, 실란트로)를 안 먹는다고? 그런 사람은 초대하지 마"
평소에 고수를 먹든 안 먹든 Pico de Gallo 살사에는 거부할 수 없는 매력이 있다. 잘게 썰은 토마토의 빨간색, 양파의 흰색, 고수의 초록색이 한데 어우러져 멕시코의 국기를 연상시키는데 바삭한 나쵸칩에 얹어서 먹으면 그만이다. 고수를 안 먹는다던 Y는 이미 무아지경이었다.
"고수 안 먹는다며"
"몰라. 다 맛있어"
우린 Y에게 이 날 레시피의 가장 특별한 재료였던 Sazón에 대해 말하지 않았다. 다만 Y가 한 번도 가보지 못한 멕시코를 입안 가득 느낄 수 있기를, 이 음식이 그녀에게 따뜻한 위로가 되고 힘이 되길, 좋은 인연을 만나 사랑할 수 있게 되길 바랬을 뿐이다. 우리는 함께 마룬파이브의 메모리즈를 들었다. Y가 노래가 좋다며 가사가 무슨 뜻인지 물어보았는데 왠지 제대로 설명했다가는 Y가 울 것만 같아서 대충 얼버무렸다.
Toast to the ones here today
오늘 이 자리에 있는 사람들을 위해서 건배
Toast to the ones that we lost on the way
우리가 잃어버린 사람들을 위해서도 건배
'Cause the drinks bring back all the memories
왜냐면 술은 모든 추억을 떠오르게 해 주니까
And the memories bring back, memories bring back you
그리고 그 추억들이 너를 다시 불러오니까
좋은 날이었다.
요리할 때 가장 행복한 멕시코 남자와 맛있게 먹고 글 쓰는 게 세상 가장 즐거운 한국 여자가 함께 삽니다. 영화 <줄리 앤 줄리아>에서 영감을 얻어 다이애나 할머니의 멕시코 가정식 레시피를 매일 하나씩 만들어 감탄하며 먹고 기록합니다.
Recipes from Diana Kennedy X Alfie cooks & Jay writ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