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주재원이라는 오랜 꿈

10년이 지나 마주하게 된 기회

by 미쓰하노이



해외근무. 주재원. 이것은 내가 오랫동안 꿈꿔온 미래였다.



'아메리칸 드림' 같은 혈혈단신의 성공스토리들을 듣고 자란 전형적인 M(밀레니얼) 세대로서

나는 아주 어렸을 때부터 해외=성공이라는 인식이 강했고

나 하나도 키우기 버거워 보이는 부모님과 내 방도 없는 단칸방을 전전하며

그저 멀리- 멀리- 나를 속박하는 곳으로부터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을 해 왔다.



이를 위해 졸업 후 취직 준비를 할 때는 외국계 기업이나 해외 취업을 하려고 했지만,

해외 경험이 전무한 일반 문과 학부생으로는 첫 단추를 마음에 들게 꿰기가 쉽지 않았다.

(물론 마음만 먹었으면 어디로든 해외로 나가 소위 말하는 바닥부터 시작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때 나는 그런 생각조차 떠올리지 못했다.)


나는 해외사업을 확장하고 있는 한국 회사에 들어가 해외로 나갈 기회를 잡아야겠다고 마음을 먹고

그에 부합하는 회사에 들어가게 되었다.

당시 해외사업을 가장 크게 확장하고 있던 국내 최고의 백화점에 입사하게 된다.

신입사원 오리엔테이션 때 이 회사에서 이루고 싶은 꿈을 발표하는 시간이 있었는데,

그때 당시까지 여권조차 없었던 나는 임원들과 동기들 앞에서 호기롭게 이렇게 말했다.



"저는 중국 000점에서 우리 회사 최초의 여성 점장이 될 것입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이 말을 하고 불과 1~2년 뒤 회사에서 최초의 여성 점장이 나오게 되어

최초라는 타이틀은 가슴 한편에 묻어두게 되었다.)



어렵게 들어간 회사에서도 역시나 기회는 쉽게 오지 않았다.

해외 유학파나 해외 경험이 많은 동기들은 원치 않음에도 자동으로 해외사업팀과 유관부서로 끌려(?) 갔고

계속해서 일관된 커리어를 쌓아갔다.


'내가 원한다고 해서 회사가 내게 기회를 주는 것이 아니구나.'


그리고 내 희망과는 별개로 영업점을 전전하며 내가 하고 싶은 것과 해야 하는 일들의 간극을

나는 수용할 수밖에 없었다.




동기들이 이미 절반 이상은 그만두었을 때, 정확히 10년 뒤 나에게도 기적 같은 기회가 찾아왔다.

로또를 구매하듯, 꾸준히 지원했던 주재원 모집에 합격이 된 것이다.



인사팀이 아니기에 내가 합격하게 된 이유를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추측하는 사유는 이렇다.


1. 내가 싱글이고 비혼주의자라는 점

(아무래도 부양가족이 있거나 가족계획이 예정된 사람보다는 회사의 입장에서 리스크가 적을 것이다.

그리고 회사에 꾸준히 내가 결혼에 뜻이 없음을 어필해 왔다.)

2. 해외주재원 희망자가 줄어들고 있다는 점

(지난 몇 년간 일부 해외사업 실적 부진이 있었고 코로나 이후로 해외근무에 대한 선호도가 떨어졌다.)

3. 승진 심사 시 가산점을 준다고 하여 획득한 외국어 성적

(오픽 AL)


그러나 이것보다 가장 중요한 사유는

내가 내 인생의 암흑기라고 생각하며 방황했던, 나의 적성과는 전혀 맞지 않다고 생각해 왔던

영업팀과 MD팀에서의 지난 10년 간의 업무경력이

필요한 주재원 인력의 조건에 부합하여 선정이 되지 않았을까 추측한다.

아니면 이 모든 것이 다 부합해서 그랬을 지도.



그래서 나는 코로나가 한창이던 2022년 1월,

베트남 정부의 특별입국허가를 받고

아주 오랫동안 꿈꾸던 여성 주재원의 미래를

드디어 현실로 마주하게 되었다.




KakaoTalk_20221029_162103524.jpg [나의 인생 2막으로 향하는 하노이행 비행기 탑승구 앞에서(feat.여주감성)]







(에필로그)



내가 상상하고 그리던 모습이 일상이 된,

아직은 가슴 벅찬 해외 생활 속에서

나는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원하는 것을 아무것도 해낼 수 없었던

인생의 암흑기라고 생각했던 지난 시간이 있었기에

어쩌면 지금의 내가 있는 게 아닐까


하고 싶은 것은 많지만 정확히 '무엇이, 어떻게 되고 싶다'는 것이 없어

시간을 낭비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남들에 뒤처지는 것은 아닐까 조급해하던 그 시절.


지금, 그 시기를 재평가하자면

'내가 원하는 미래로 이끌어 준 매우 필연적인 시간'이었다.



"오직 명확한 목표와 그에 맞는 플랜대로의 삶이 아니더라도 괜찮다"



원치 않았던 업무와 직무라도 경험의 외연을 확장하다 보면

그 속에서 취사선택할 것이 생기고, 그런 확장의 끝에 기회가 온다는 것을,

나의 과거와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는 분들이 있다면 들려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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