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당당해서 멋있기까지 한 베트남 구직자들
"마지막으로 질문이 있으신가요?"
"사무실에 같이 일하게 되는 팀원은 총 몇 명인가요?
과장은 몇 명이고 대리는 몇 명인가요?
이 프로젝트가 끝나면 저는 어떻게(?) 되는 건가요?"
(아주 잠시만 라떼 얘기를 해보자면)
십여 년 전을 거슬러 내가 면접을 볼 때는
마지막 질문이 있냐는 말에 나는 이렇게 답했다.
"오늘 조간신문에 꿀벌에 관한 기사가 떴더라.
꿀벌은 500g의 꿀을 얻기 위해 6만 번씩이나 꽃을 돌아다닌다고 한다.
나는 그게 꿀벌이 꿀이라는 목표와 꿈에 대한 설렘이 있었기 때문에 그랬다고 생각한다.
나는 이 회사에 대해 그런 설렘과 기대가 있다. 10년을 넘어 20년 30년을 00에서 일하고 싶다. 감사합니다"
(면접 당일 쓴 일기를 그대로 옮겨왔으므로 한치의 거짓도 없음을 강조한다.
여하튼 이 말대로 나는 10년을 넘어 일하고 있.. 잠시 눈물을 좀 닦고)
(라떼는) 면접에서 이렇게 마지막 발언 기회가 주어지면
정말 궁금한 것을 질문하기보다는
어떻게든 플러스 요인을 만들기 위해 간절함을 어필하기 위한 멘트를 했다.
합격만 시켜주면 뭐든 다 하겠다,
그게 일반적인 구직자의 스탠스였다.
지금 대부분의 한국의 구직자들 또한
담백하거나 파이팅 넘치거나
표현 방식의 차이가 있을 뿐
어떻게든 자신을 어필하는데 이 기회를 활용할 것이라 생각한다.
다시 돌아가 얘기하자면,
베트남에서 현재 팀장의 직책으로
함께 일할 현지 직원들을 채용하기 위해 여러 면접을 보노라면
베트남 구직자들의 당당한 애티튜드와 자신감에
가끔 당혹스럽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그런 마인드가 너무 부러워지기도 한다.
내가 보아 온 베트남의 구직자들을 특성을 보면,
1. 면접관과 대등한 눈높이로 인터뷰에 능동적이고 주도적으로 임한다.
(마지막 발언 기회에, 20분간 질문을 쏟아내었던 구직자가 유난히 기억에 남는다.)
'취업'이 중요하기에 마치 '을'의 입장이 되어 면접관들의 비위를 맞춰주려는 한국 구직자들과는 달리
그들은 면접관과 대등한 위치에서 말을 주고받는 데에 거리낌이 없다.
2. 지원 회사와 포지션에 자신의 'Career Path'가 부합할지 적극적으로 탐색한다.
내가 본 구직자들 대부분이
지원한 회사와 포지션에서 자신의 커리어를 더 키워나갈 수 있을지
'인터뷰'라는 방식을 통해 그들 또한 회사를 탐색하고 선택의 기회를 얻고자 했다.
3. 취업 자체보다 연봉 숫자가 매우 중요하다.
구직 자체가 목적이 되어버린 한국과는 달리 베트남 구직자들은
월급 1,000,000동(한화 약 6만 원)에 최종 합격을 거절하기도 한다.
정말이지, 부러워도 너무 부러운 태도다.
그러면 이러한 당당한 애티튜드는 도대체 어떻게 만들어진 걸까?
민족적 특성은 논외로 하고
내가 판단하는 것은
베트남의 높은 경제성장에 기반한 노동법에서 비롯한다고 본다.
올해 전 세계적인 경기 침체 상황 속에서도
3분기 유일하게 13.7%라는 경이로운 경제성장률을 보일 정도로
베트남은 무서운 속도로 성장하고 있는 국가다.
이러한 성장은 중위연령 32세로 대표되는
70%가 넘는 경제활동인구에서 비롯한다.
다시 말하면 젊은 인구의 증가로 인한 노동력 확대와 낮은 인건비로,
글로벌 기업들이 생산기지로 베트남을 선호함에 따라
일자리가 끊임없이 창출되고 있는 것이다.
또한 베트남 노동법에 따르면,
근로계약은 기간의 정함이 없는 무기 근로계약 또는
기간의 정함이 있는 유기 근로계약 둘로 나누어지는데
대부분의 경우 최대 36개월까지 가능한 유기 근로 계약으로 최초 계약이 맺어진다.
이때 최초 계약 종료 시점 한 번만 더 계약 연장을 할 수 있는데
총 2회의 계약(최초 계약+연장 계약)이 종료되면
해당 근로자는 무기 근로직(평생직/종신직)으로 전환된다.
회사의 입장에서 보자면,
연장 계약이 끝날 때
해당 근로자를 무기직으로 전환하거나 해고 등을 통해 계약을 종료시켜야 하는데
대부분의 경우 후자의 방법으로 진행하기 때문에
이로 인한 노동시장에서의 이직이 굉장히 활발한 편이다.
(한국의 정규직/계약직과의 개념과 유사하나
한국의 경우 기간제 계약직 근로자가 기본 2년을 계약기간으로 한다면
베트남의 경우 최초 근로 계약 기간 및 연장 갱신권을 통해
최대 6년까지도 유기 근로계약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큰 차이가 있다.)
베트남의 Job Seeker들은 원하든 원치 않든
이처럼 계약 종료 시점이 다가오면 아주 자연스럽게 이직을 하고
평생에 걸쳐 몇십 번이 넘게 직장을 옮겨 다니기도 하는 것이다.
높은 경제성장률로 구직 자리도 많기 때문에
그들에게 면접의 경험치와 의미는
한국의 구직자들의 그것과 매우 다르지 않을까 추측한다.
그리고 그로 인해 이러한 수평적인 구직 문화가 만들어졌을 지도.
나는 일련의 인터뷰 과정에서
베트남 수도 하노이 한가운데서 마치 뉴욕에 온 듯한 자유로움과 생동감을 느꼈다.
앞으로 내게 또 면접의 기회가 생기고 마지막 발언 기회가 주어진다면
그때는 나도 꿀벌 같은 소리는 잠시 접어두고 이렇게 말해 보고 싶다.
"그래서 연봉은 얼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