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개월이 지났지만
수민에게는 특별한 업무가 주어지지 않았다.
한국 본사에서는 직책과 직급에 상관없이
명확한 Role(역할)이 주어졌다면
이곳에서는
누구 하나 정확한 그녀의 롤을 설명해 주지 않았다.
바쁜 지사장은 그녀가
그저 팀원들의 업무를 잘 도와주기를 바랐고
업무 분담도 직원들끼리 알아서 진행되기를 바랐다.
그녀는 어정쩡한 그녀의 포지션이 몹시 내키지 않았다.
개인의 성과 중심으로 철저히 평가를 받던 한국과 달리
이곳은 마치 도제식 수련장의 어느 한가운데에 있는 것 같았다.
하지만 누군가의 '가르침'을 기다리기에는
먼저 터를 잡고 지내온 사람들의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기란
그 벽이 몹시도 견고해 보였다.
며칠을 고민하던 그녀는,
그녀가 지금까지 한국에서 해왔던 성과와
이곳에서 할 수 있는 일들을 정리하여
지사장의 집무실을 두드렸다.
수민 씨, 내가 수민 씨를 못 믿는 게 아니야
여긴 베트남이야, 한국이 아니라고
지사장의 말은 그러했다.
이곳은 한국과는 완전히 다른 나라이기에,
이곳의 업무는 한국에서의 업무와는 완전히 다르며
그러하기에 수민에게 어떠한 권한을 주기에는
그 리스크(Risk, 위험부담)가 크기 때문에
기존의 사람들을 먼저 잘 보필하며 그 업무를
최선을 다해 도와주기를 바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업무가 결코 가벼운 것이 아님을 강조했다.
그럼 나는 이곳에서의 시간 동안
어떠한 역량을 키울 수 있을까?
지사장의 말은 틀리지 않았다.
하지만 수민의 생각은 달랐다.
다른 환경이지만, 그 속에서도
수민의 역량이 다른 팀원보다 발휘될 수 있는 부분이 분명 있을 것이다.
수민은 관자놀이를 두어 번 누르다
눈을 반짝였다.
그럼, 나의 존재의 이유를
스스로 증명해 보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