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났나요?
다 끝났어요?
마취에 취한 나를 깨우는 간호사 선생님의 소리에
연거푸 '이 모든 게 정말 다 끝났는지를' 재차 확인했다.
나도 내가 난자를 얼리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작년에도 재작년에도 전혀 생각하지 않은 일이었다.
이 모든 것은 불과 몇 개월 만에 이루어졌다.
결단에서 최종 실행까지는 약 2개월이 걸렸다.
마치 소명이라도 받은 듯,
처음 마음을 먹고 나서부터는
그 마음이 금세 변할까 봐
빠르게 저지르고(?) 그 임무(?)를 완수했다.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여전히 결혼에 절박하지 않다.
누군가와 평생을 함께 한다는 것,
더 나아가 그 사람과 나를 반반씩 닮은 새로운 생명체를 키운다는 것은
여전히 두렵고 자신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이 '소명'을 받아들인 이유는,
미래의 나의 선택권을 위해서다.
철저한 비혼주의였던 나는
이국에서의 삶, 불과 몇 년 만에
지독한 고립감과 고독감을 온전히 느끼며
배우자가 아니더라도
'인생의 보호자는 꼭 필요하다'는
원론적인 명제로 가치관이 귀결하게 되었다.
지극히 개인주의자인 내가
과거에는 누군가와 함께 사는 것을 상상하기란 불가능했었지만
이제는 '결혼해도 큰 문제는 없지 않을까'하는 가치관의 변화를 느끼며
'영원한 확신'은 없다는 것을 깨닫고 있다.
그리고 혹시 몇 년 뒤에 출산에 대한 가치관도
바뀌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이런 결심을 하게 된 것이다.
결혼은 언제든 해도 되지만,
출산은 그런 것이 아니니까-
이마저도 지독히 개인적인,
오롯이 나를 위한 선택인 것이다.
채취 전날까지,
온갖 두려움에 포기할까 많이 망설였다.
신체적인 고통보다는
정신적인 두려움과 불안감, 긴장감이 컸다.
배우자 없이 병원을 혼자 왔다 갔다 하며
수술실까지 들어가는 과정이 정신적으로 무척 고독했으며
종교는 없지만
호르몬의 변화를 강제적으로 일으키는 것에 대해
내 몸에 대한 죄책감이 들었다.
내 몸이 온전히 '출산'을 위해 사물화 된 느낌이랄까.
중간에 그만두었을 때 몸에 리스크가 있기 때문에
쉽게 그만두지 못한다는 부담감도
준비과정에서 크게 작용했다.
수술 당일 병원으로 가는 길은
너무나 길고 두려웠지만
그래도 용기 있게 잘 해냈다.
빗댈바는 아니지만,
이 작은 시술도 중간에 무르기가 어려운데
결혼과 출산도
상대에 대한 엄청난 확신이 바탕이 되지 않고서는
하기가 힘들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앞으로 내 생각이 또 어디로 튈지 모르겠다.
분명한 것은,
이번을 계기로 스스로가 한 단계 더 성장했음을 느낀다.
내 결정에 대해
끝까지 책임을 지고 해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