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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쓰하노이 Dec 18. 2022

원(One) 메뉴 천국 베트남 로컬 식당

베트남 로컬 푸드 스트리트에서의 첫 식사





"미즈 짱, 시간 애매한데 점심 같이 먹고 들어갈까? 혹시 먹고 싶은 거 있어?"

"분짜요! 이 앞에 분짜 집 있는 거 봤어요!"

"그래!"






베트남 직원 친구와 함께 외근을 나갔다가

점심시간을 훌쩍 넘겨 미팅이 끝나는 바람에 같이 식사를 하게 되었다.



베트남에서는 도시락 문화가 발달되어 있어

점심시간에 현지 직원들은 

싸온 도시락을 각자 자리 혹은 휴게실에서 먹곤 하는데

혹시 오늘도 도시락을 싸 왔으면 외식이 부담스럽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조심스레 물어봤는데 흔쾌히 같이 먹는데 동의(?)해 주어 기뻤다.



그리고 혹시 몰라 메뉴 후보군과 식당을 생각하고 있었는데

너무나도 명확히 먹고 싶은 것과 식당을 제안해줘서 고마웠다.







그러나 나는 그때까지 알지 못했다.



오늘이 내 베트남 생활 첫 로컬 푸드 도전이 될 줄..



도전해 봐야지 하면서도 한 번도 도전하지 않았던..

(아니 도전할 수 없었던..)

길거리 식당에서의 첫 식사를 예상치 못한 순간에 맞이하게 되었다.



미즈 짱이 말했던 식당은

늘 배경화면처럼 지나치며 보던

목욕탕 의자가 세팅되어 있는

찐 로컬 푸드 스트리트 식당 중 하나였다.


도로와 한 발자국 정도 거리에 있어

손 내밀면 밥 먹다가 오토바이 라이더들과 하이파이브할 수 있을 것 같은

그런 오픈스페이스였다.



'아 이게 바로 궁극의 힙함이다'



식당에서 처음 경험하는 목욕탕 의자는

키가 작은 나도 무척이나 불편했고

수저통 하나 마늘고추 종지 하나 놓여 있는 식탁은

내게 극한의 힙(Hip)함과 빈티지를 느끼게 해 주어

마음 깊은 곳에서 감동이 흘러넘쳤지만

현지인들 사이에서 최대한 자연스럽게 보이려고 애썼다.




"여기 혹시 다른 메뉴도 있어?"

"여기는 분짜 집이라 분짜만 있어요, 혹시 다른 메뉴도 트라이해보실래요?

여기 앞 집에 반미(베트남 로컬 음식의 한 종류) 집도 있어요"

"여기서 분짜 먹고 저기 가자고?"

"아니요, 저기서 음식 사 와서 여기서 먹을 수 있어요."

"같은 집이야?"

"다른 집인데 그래도 돼요!"



미즈 짱이 가리킨 곳에는 간판에 '반미'라고 크게 쓰여 있었다.

그러고 보니 반미 집 옆 집은 또 같은 디자인 간판에

'퍼가(닭고기 쌀국수)'라고 적혀 있는 게 아닌가?



그제야 나는 배경화면처럼 지나치던 

로컬 푸드 식당들이 제대로 인식되며 

한 가지 깨달음을 얻었다.



음식점에 이름(상호)은 없다.

파는 메뉴만 간판에 쓰여 있을 뿐이다.

그리고 대개 단일 메뉴만 판다.

원샷원킬이다.




다시 말해 한 길거리에도

'분짜'라고만 적힌 식당만 여러 개고 

서로를 구분할 수 있는 것은 주소밖에 없는 것이다.



힙지로 저리 가라 할 시크함에

갑자기 어지러워졌다.




5분이 걸리지 않아 나온 분짜는

하노이 롯데백화점의 쌀 국숫집에서 먹은 분짜에 비해

고기완자도 2~3배로 많았고 같이 주는 면도 2배는 되는 듯했다.

맛 또한 백화점의 그것보다 훨씬 맛있었다.



먹는 동안은 오토바이 소리도 매연도

까맣게 잊혔다.



너무나도 배부르게 먹고 계산을 하려고 보니

2인분에 30,000동(한화 약 1,700원).

백화점 쌀 국숫집의 분짜 1인분이 부가세 포함 85,320동인 것을 감안할 때

약 20% 수준의 가격밖에 되지 않았다.


그제야 나는 베트남 스트리트 식당의 매력을 알 것 같았다.



한국인의 눈으로 봤을 때

위생이 조금(?, 아니 많이) 아쉽지만..

엄청나게 싼 가격에 이렇게 훌륭한 식사를 할 수 있다니 

내가 11개월 동안 경험한 베트남은

1%도 채 안되었던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가 먹은 분짜 2인분, 총 30,000동(한화 약 1,700원)]



곰곰이 생각해보면 이건 베트남만의 특징이 아니다


어렸을 때 엄마와 시장에 갔을 때

그때도 시장 한가운데 이름 없는 순대집에서

(심지어 간판이 달린 가게도 아닌 시장 한복판에서!)

목욕탕 의자에 앉아 엄마와 오순도순 순대 한 접시를 나눠 먹은 기억이 났다.


지금은 재래시장이 많이 단장되면서

각 가게별로 정갈한 간판과 이름도 붙여지게 된 걸 볼 수 있는데


그래, 이 힙함은 역시 한국이 원조라는 생각이 들었다.



[각종 먹을거리들로 가득한 서울의 광장시장]







"오늘은 제가 살게요!"


식사를 다하고 서로 계산한다고 아웅 거리다가

결국 베트남 친구가 오늘은 베트남 스트리트 음식을 경험한 

의미 있는(?) 날이라며 본인이 계산을 했다.


"아줌마, 잔돈 있으세요?"

"잔돈 없는데 이 쪽으로 계좌 이체해줘."


식당 아주머니가 가리킨 곳에는

전봇대에 대문짝만 하게 계좌번호가 걸려있었다.

 

코로나를 거치면서 베트남에서도 현금을 거의 사용하지 않고

잘로(Zalo, 베트남의 국민 메신저, 베트남판 카카오톡) 등을 통한

QR코드 결제, 계좌이체가 대부분 이루어지는 것은 알았지만

대부분 큰 음식점이나 젊은 고객들이 주로 사용하는 줄로만 알았는데

이렇게나 거의 전 국민에게 대중화가 되어 있는 줄은 몰랐다.




전통과 현대가 공존하는 도시, 하노이의 매력에

다시 한번 머리가 어지러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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