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의 크리스마스 풍경
어제 나는 산타클로스를 만났다.
그것도 하노이 시내 한복판에서
그것도 아주 럭키하게
"에~ 팀장님 저것 좀 봐요, 루돌프가 왔어요!"
(함께 일하는 베트남 직원 미즈짱은 놀라면 항상 에~라는 탄성을 지른다)
외부 미팅이 있어 그랩(Grab, 베트남에서 가장 많이 쓰는 승차 공유서비스)을 불렀는데
말로만 듣던 루돌프 차가 왔다.
요즘 한국에서는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본인 차에
루돌프 사슴뿔과 코를 붙이는 게 유행이라던데
내가 이걸 베트남에서 보게 될 줄이야!
주위 사람들 이목이 집중되기 시작하자
미즈짱과 나는 황급히 차에 올랐다.
빨간 모자도 아니고
초록 모자(아마 그랩 회사의 메인컬러인 그린색을 반영한 듯하다.)를 쓴 기사님이
부끄러운 목소리로 중얼중얼하시더니
주섬주섬 보조석에서 뭔가를 꺼내서
뒷좌석에 탄 우리에게 넘겨주셨다.
"에~ 팀장님, 이거 크리스마스 선물이래요!"
"응?"
미즈짱이 기사님과 몇 차례 얘기를 더 주고받더니
상기된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그랩 회사에서 하노이 시내 딱 20대만 이렇게 차를 꾸며주었는데
저희가 이 차를 탄 거래요!"
미즈짱의 그랩 어플에는 베트남어로
행운의 차에 탑승하게 된 행운의 고객이 된 걸 축하드리며
소정의 크리스마스 선물로 화장품 샘플을 준다는 알람이 와 있었다.
사실 선물 그 자체로만 보면 엄청나게 대단한 것은 아니었지만
우리가 탄 차에 집중되는 사람들의 시선을 즐기며
마치 연예인이 된 듯, 진짜 로또에 마냥 당첨된 사람들처럼
미즈짱과 나는 어제 오후 내내 진심으로 행복했다.
정말 최소비용으로 기가 막히게 마케팅한 거 아닌가?
크리스마스 따위 그저 일요일 정도로 생각하고
(잠시 눈물 좀 닦고..)
아무 생각이 없었는데
갑자기 심장이 바운스 하며 크리스마스 분위기가 확 와닿았다.
(기사님께 기념으로 사진 촬영 요청했는데
수줍음이 많으신 줄 알았는데 이렇게 멋지게 촬영에도 응해주셨다. 기사님 씬깜언!)
베트남의 겨울을 맞이하기 전까지는
일종의 편견 같은 게 있었다.
베트남에서는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느낄 수 없을 거라는 거였다.
그럴 만도 한 게
우선 베트남의 크리스마스는 공휴일이 아니다.
그리고 우리나라에서는 곳곳에 빨간 십자가를 지닌 교회를 볼 수 있는 반면
베트남에서는 단 한 번도 그런 상징물을 띈 교회를 본 적이 없다.
또 동남아 특성상 날씨가 덥기 때문에 화이트 크리스마스와는 거리가 멀고
연인끼리 추위 속에서 꼭 붙어 다니는 그런 로맨틱 크리스마스는
당최 상상이 되질 않았다.
하지만 베트남의 크리스마스는
한국의 그것만큼이나 특별하고 설렘이 있다.
프랑스 식민지 시대를 거치면서
서양의 파티문화에 익숙해진 베트남 사람들은
연말이면 늘 파티를 기대한다.
주로 부어라 마셔라 하는 우리의 송년회와는 다르게
회사동료나 친구들끼리 정말 시상식의 연예인들이 입을 법한 파티복을 입고
한껏 기분 내서 연말 파티를 연다.
특히 크리스마스는 그런 파티 분위기를 한층 더 돋워 준다.
아기가 있는 미즈짱에 따르면
베트남의 어린이집에서도 선생님이 선물을 준비해달라고 학부모를 독촉해서
여간 준비할 게 적지 않다고 한다.
관광의 중심인 호안끼엠에는 크리스마스 일주일 전부터
각종 대형트리들이 즐비하게 구성되고 있다.
대형 크리스마스 장식물이 조성된
하노이 롯데센터에는
하노이의 모든 셀럽들이 다 모인 듯
사진을 찍으려고 모인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다.
하노이에서 핫플의 유무는
풍선 아저씨들이 등장여부에 달려있다는데
하노이 롯데센터에도 주말이면 자전거에 풍선을 달고 오거나
나무에 풍선을 매달고 있는 아저씨들을 볼 수 있었다.
예상을 빗나간
설렘 가득한 하노이의 크리스마스 분위기 속에서
나는 비록
크리스마스이브에 대학원 과제 발표,
크리스마스 당일에 이번 학기 마지막 시험을 앞두고 있지만
산타클로스에게서 얻은 기운으로 남은 이틀도 잘 보내보려고 한다.
여하튼
이 글을 읽으시는 모든 독자분들에게도
크리스마스의 설렘과 행복이 가득하길
"메리 크리스마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