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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쓰하노이 Jan 14. 2023

베트남에는 사실 미스터 응우옌이 없다

알면 알수록 재밌는 베트남 이름 체계



최근 한국 네티즌들 사이에서 '응우옌'이라는 단어가

베트남 사람들, 크게는 동남아 사람들을 비하하는 단어로서 사용되고 있다고 한다.

세계 어디든 다른 나라 사람을 비하하는 몰지각한 사람들은 있기 마련인데

대부분의 인종 차별적 단어가 역사나 문화 등에서 비롯하여 우리식으로 발음이 변형된 데 반해

(이를테면 '짱개'나 '쪽발이'같은./예시일 뿐 비하의 의도는 전혀 없습니다.)

이 '응우옌'이라는 단어는 가장 대표적인 베트남 성씨(姓氏, Family name)를 뜻하는

실제 베트남어라는 점에서, 베트남 사람들이 들을 때

어이없음에 실소가 터져 나올지도 모르겠다.

마치 누군가 한국인을 조롱한답시고 '킴(Kim)'을 사용하는 것과 같다고나 할까.



그런데 여기에 많은 사람들이 모르는 재미있는 사실 하나가 있다.




베트남에는 사실 미스터 응우옌이 없다.

 



아니 이게 무슨 소리냐고?

불과 조금 앞에서 응우옌이 대표적 성씨라고 파란색으로 하이라이트까지 하지 않았냐고?


응우옌이 베트남의 가장 많은 성씨는 맞다. 하지만,




응우옌씨를 응우옌으로 부르는 베트남 사람들은 없다.




이건 또 무슨 말이냐고?

지금부터 알아두면 두고두고 유용한 아주 흥미로운 베트남 이름 체계에 대해 설명하고자 한다.






중간이름이 있는 베트남 이름


우선 베트남의 이름 구조에 대해 간략하게 설명하자면

우리나라가 성(Family name)과 이름(First name) 두 음절로 이름이 구성되는 것에 반해

베트남어는 성과 이름 사이에 '자(字)'라는 중간이름(Middle name)이 하나 더 있다.


우리와 같이 성은 가족의 뿌리를, 이름은 개인의 고유한 명칭을 뜻하지만

중간의 자는 형제자매끼리 동일한 중간 이름을 사용함으로써

부모/자식세대 사이에 항렬적 구분을 준다는 점에서 이색적이라고 볼 수 있다.

중간이름의 경우 여성의 경우 Thị(티), 남성의 경우 Văn(반), Đức(득), Công(꽁) 등을 많이 쓰는 편이다.


예를 들어 모임 참가자 리스트 중에 성과 중간이름이 동일한 사람들이 있고

그들의 중간이름이 Văn(반)이라면

그들이 형제임을 미리 추측할 수 있는 것이다.




인구의 40%인 응우옌 성씨


우리나라와 같이 베트남 또한 과거 귀족계층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성씨가 없었다.

프랑스 식민지배 당시, 프랑스는 인구 조사를 위해

성이 없는 사람들에게 베트남의 마지막 왕조인 응우옌 왕조의 성씨를 갖게 해 주었고

이로써 약 40%라는 대규모 인구의 응우옌씨가 생기게 되었다.

(쩐과 레를 비롯한 다른 성씨들 또한 대부분 과거 왕조의 성씨에서 비롯되었다.)


우리 또한 일련의 역사적 사건들을 통해 '김이박최'씨가 인구 절반을 차지하게 되었으므로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우리가 베트남에 응우옌씨가 많다고 놀랄 것은 아니다.



전체 약 90%를 차지하는 베트남 사람들의 대표 14개 성씨와 각 구성비

1. 응우옌(Nguyễn, 38.4%)
2. 쩐(Trần, 11%)
3. 레(Lê, 9.5%)
4. 팜(Phạm, 7.1%)
5. 후인/호앙(Huỳnh/Hoàng, 5.1%)
6. 판(Phan, 4.5%)
7. 부/보(Vũ/Võ, 3.9%)
8. 당(Đặng, 2.1%)
9. 부이(Bùi, 2%)
10. 도(Đỗ, 1.4%)
11. 호(Hồ, 1.3%)
12. 응오(Ngô, 1.3%)
13. 즈엉(Dương, 1%)
14. 리(Lý, 0.5%)


'김이박최'가 절반을 차지하는 한국 성씨별 인구 구성비

1. 김(21.5%)
2. 이(14.7%)
3. 박(8.4%)
4. 최(4.7%)
5. 정(4.3%)
6. 강(2.4%)
7. 조(2.1%)
8. 윤(2.1%)
9. 장(2.0%)
10. 임(1.7%)
11. 한(1.6%)
12. 오(1.5%)
13. 서(1.5%)
14. 신(1.5%)



응우옌을 응우옌씨라 부르지 못하는 이유



우리나라가 '김이박최'씨를 제외하고도

십만 명 이상의 성씨가 50여 개 이상 다양하게 존재하는 반면

베트남의 경우 대표 14개 성씨가 전체 90%를 차지할 정도로

성씨의 다양성이 크지 않다.

소수민족을 제외할 경우 대표 14개 성씨가 베트남 성씨의 전부라고 봐도 무방할 듯하다.


이로 인해 베트남은 독특한 호칭 문화가 생기게 된다.




공식적인 석상에서도 성이 아닌 이름으로 호칭하게 된 것이다.



성씨의 한계로 성으로 개인을 구분하는 것이 불가능해졌고

베트남 사람들은 성도 중간이름도 아닌 오로지 고유의 이름으로만 호칭을 하기 시작했다.


만약 당신이 베트남에서 '미스터 응우옌(Mr. Nguyễn)'이라고 부른다면

단번에 자신이 외국인임을 드러내는 것은 물론

베트남 사람들은 누구를 부르는 건지 헷갈려할 것이다.



응우옌씨는 있지만 응우옌씨라 부를 수는 없다.



(베트남판 홍길동이 틀림없다!)


심지어 응우옌 쑤억 푹(Nguyễn Xuân Phúc) 베트남 국가주석을 공식상에서 부를 때에도

응우옌 주석이 아닌 푹 주석(Chủ tịch Phúc)으로 호칭한다.


이를테면 회사에서도

진 회장님이 아닌 양철 회장님으로 불러야 하는 것이다.


한국인의 정서로는 매우 낯간지럽고 자칫하면 예의 없다고 생각될 수 있지만

달리 생각하면 이 얼마나 합리적이고 친근한 호칭인가.


우리도 김 씨가 40%를 육박했다면 이런 호칭제가 나오지 않았을까?

어쩌면 성씨의 구성비가 아무리 높아져도

한국의 정서상 이름만 부르는 것은 절대 공식화되지는 않을지도 모르겠다.


여하튼, 돌아가서 이러한 호칭제에도 예외는 있다.   




베트남 사람들의 국부, '호찌민'은 예외



바로 베트남의 국부, 호찌민(Hồ Chí Minh) 주석이다.

모든 종류의 화폐에 그의 초상화를 넣었을 정도로

베트남 사람들의 그에 대한 존경심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크다.


그에게만큼은 극진한 존경심을 담아

'호 아저씨(Bác Hồ)'라는 성과 호칭을 붙인 애칭이 붙여지게 되었다.


(마치 우리에게 '호씨는 당신뿐이에요'랄까..)



[호찌민의 초상화로 디자인된 베트남 화폐(좌)와 하노이에 위치한 그의 묘소(우)]







아는 만큼 보이고, 들리고, 이해할 수 있다.



우리가 응우옌이라고 비하해서도 안되지만

어쩌면 베트남 사람들은 그 단어에 대해 누구도 자신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누군가에게 이름을 불림으로써 그리고 기억됨으로써

존재의 의미가 생겨나고 관계가 형성되듯

호칭을 제대로 이해함으로써 이 이름이 저 이름 같은 베트남 사람들을 보다 잘 캐치하고

그들에게도 존재감 있는 친구가 될 수 있을 것이다.


혹시 베트남 사람들이 당신을 '미스터 킴'이라고 부른다면

앞으로는 '미스터 00'라 불러달라고 하는 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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