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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쓰하노이 Feb 04. 2023

외출 안 시켜주면 반차 쓸게요

한국만큼 합리적이고 자유로운 성향의 베트남 MZ세대




점심을 먹으러 나가려는데

미즈짱이 황급히 내 팔을 붙잡았다.




팀장님, 급하게 말씀드려서 죄송한데
오늘까지 처리해야 할
개인적으로 급한(urgent personal) 일이 있어서요.
점심 먹고 나서 1시간 정도만 외출해도 될까요?
안되면 반차 쓸게요.





한 번도 이렇게 부탁을 한 적이 없는 그녀였기에

'개인적으로 급한 일'이 무엇인지 아무것도 묻지 않고

다녀오라고 하였다.


그런데 점심을 먹으면서 그녀의 요청을 다시 떠올리다

뭔가가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외출 아니면 반차




그녀의 요청사항에 

상사의 '반려(Rejection)'를 대비한 옵션은 없었다.

(이를테면 오늘이 아니면 다음 날 가겠다든지 하는)


그리고 사실 그녀의 밝히지 못하는 

'점심시간을 이용해서 다녀올 수 없는'

급한 용무가 무엇인지 몹시 궁금해졌다.

 

평소 아기가 아플 때도 꿋꿋이 정시 출퇴근을 하던 그녀였기에

혹시 다른 회사의 면접을 보러 가는 건 아닌지도 내심 걱정되었다.



문득 

나의 신입사원 시절이 떠올랐다.



[라떼 얘기 죄송]




사회생활이 처음이던 나는

연차를 스스로 쓰겠다고 말을 잘하지도 못했고

현장에 있을 때는 1달 동안 하루도 쉬지 않고 매일 출근을 한 적도 있었다.

상사가 쉬어라고 말을 하면 그때 조심스레 그럼 언제 쉬겠다 얘기를 했다.

지금 생각하면 다 의미 없는 것이지만

그때는 모든 게 다 어려웠다. 

하루 쉬는 걸로 내 인생에 큰 일이라도 나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러던 어느 날

몸에 평소와 다른 통증을 느끼고 찾아간 병원에서

조직검사를 하거나 더 큰 병원을 찾아가라는 얘기를 들은 나는

어린 나이에 엄청난 겁에 질리게 된다.


해당 분야에서 그래도 명의(醫)라고 하는 대학교수님을 수소문했는데

특진이 월요일이나 금요일 밖에 없었다. 


다음 날 나는 상사에게 

몸이 좋지 않아 큰 병원에서 조직검사를 받아야 하는데

해당 교수님 진료 가능한 요일이 월요일 아니면 금요일 밖에 없다고 한다,

하루 연차를 내고 가야 할 것 같은데 언제가 덜 불편하시겠느냐, 여쭤보았다.


평소 한 번도 먼저 연차를 쓰겠다 말한 적 없었기에

당연히 요일을 지정해서 말씀해 주실 줄 알았는데

돌아오는 대답은 나를 쿵 내려앉게 했다.




지금 바쁜 시기인데 꼭 쉬어야겠니?




하지만 나는 내 뜻대로 하루를 연차 내고

병원 진료를 받았고 다행히 이상 없음의 소견을 받았다.

그때 나는 앞으로 내가 팀장이 되면

어차피 보내줘야 할 상황에서 쿨하게(?) 보내주리라 다짐을 했다. 




 

생각이 꼬리를 물고 옛 추억까지 떠오르니

직원의 말 한마디에 이게 맞나라는 생각이 들었던 나 자신이 부끄러워졌다.

나도 어느새 꼰대가 된 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비록 미즈짱이 내게 급하게 요청하긴 했지만

반차와 연차는 근로자의 엄연한 노동권인 것이다.

내가 반려하고 말고 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요즘 한국에서

자신의 의견을 눈치 보지 않고 당당하게 말하는 MZ세대를 향한

기성세대의 태도는 양가적(兩價的) 것처럼 보인다.



개념 없다고 혀를 차기도 하지만

'MZ에게 선호되는' 트렌드가 마치 정답인양 맹목적으로 따르기도 한다.




그들의 행동이 거슬린다면
그들의 행동이 자신의 권리에 대한 주장인 건지
아니면 '라떼'와 달라서 느끼는 억울함인 건지 
가만히 생각해 보자.
그럼 좀 더 그들을 이해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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