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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쓰하노이 Feb 26. 2023

사인을 하려거든 이 색으로 쓰세요

우리와 다른 베트남의 서명 문화



"여기에 사인 부탁드리겠습니다."

"이거 검정색이네? 파란색으로 해야 하는 거 아냐?"

"네?"



신규 파트너사와의 

MOU(Memorandum of Understanding: 본 계약 체결 전 합의내용을 확인하는 문서) 체결을 위해 

결재문서를 검정색 펜과 함께 올리자 상사가 내게 되물었다.



파란색 볼펜이요?




그제야 기존의 공식 문서를 다시 확인해 보았고

법인장의 서명은 한 치의 오차 없이 100% 파란색으로 되어 있는 것을 보고

무언가 한국과 다름을 인지했다.




수기계약이 보편화된 베트남


한국은 부동산 계약 시에는 여전히 수기(手記)계약을 선호하지만

은행 및 관공서, 타 업체와의 계약 체결이 빈번한 회사에서는

대부분의 공문서 작성 시 대부분 전자계약을 체결하는 편이다.


백화점의 몇 백, 몇 천 개가 되는 테넌트와의

몇 십장에 가까운 기본 입점 거래계약서 또한 

당연히 전자계약으로 주고받고

전자계약서 상 언제 서명한 것이 정확히 기록에 남기 때문에

계약 개시일 이후 상호 서명이 된 것은 

공정거래법상 그 효력이 인정되지 않기도 한다.


하지만 베트남은 아직 '전자계약시스템'이라는 것이 없기 때문에

모든 문서를 100% 수기로 계약하고 있고

이에 따른 서명 문화도 우리와 조금 다르다.



서구의 영향, 도장보다 사인이 발달한 베트남


과거 프랑스의 식민지 기간을 통해

베트남은 일상의 많은 부분에 있어 서양의 영향을 많이 받았는데

특히 '서명문화'가 그 대표적인 예다.


사인보다는 도장으로 공식 문서를 체결하는 것이 전통이었던

한국과 일본에서는 

사인을 해야 한다면 과거 '붓글씨/서예'의 영향으로

검정색으로 하는 것이 보편화되었다면


서양에서는 과거부터

도장보다는 사인으로 공식문서에 서명하는 것이

일반적인 방법이었기에

사인을 할 때 좀 더 공신력을 확보하기 위해

위조가 어렵고 시간이 지나도 안료(顔料)의 특성상 

색이 날아가도 검정색보다 오래 보존이 가능한

파란색 잉크를 절대적으로 사용했다고 한다.


당시 귀족을 상징하는 '푸른색'*이 

서명에까지 영향을 미쳤다는 설(說)도 있긴 하다.

(*귀족의 하얀 피부에 비치는 푸른 정맥에 빗대

상류층을 대표하는 색으로 고착화)


독일과 같은 서양 일부 국가에서는

여전히 공식 문서에 파란색을 사용하는 경향이 뚜렷하며

우리나라도 은행에서 종이에 사인 시,

뒷장의 은행 보관용 종이는 파란색임을 비추어 볼 때

사인에서 파란색이 갖는 의미는 검정색만큼

크다고 판단된다.


하지만 베트남에서는 사실,

여전히 전자계약이 보편화되지 않았기 때문에

베트남에서의 파란색 서명의 이면에는

복사를 통한 위조를 막기 위한 목적이 가장 크다고 볼 수 있다.


사실 국제적으로 공식서명은

검정색 또는 푸른색(파란색, 초록색) 모두 인정이 된다.

(물론 빨간색 등은 관습상 터부시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베트남은 

문서에 관한 공식서명 규정을 별도로 두고 있는데


1. 사인은 서명자의 이름 정자(正字) 윗부분에 쓸 것
2. 붉은 도장은 사인의 왼쪽에 사인의 1/2 또는 2/3를 겹치도록 찍을 것
(우리가 서명 오른쪽에 도장을 찍는 것과는 반대다.)
3. 사인은 파란색으로 할 것


위의 사항이 그것으로

결론적으로는 베트남에서 중요 문서에 사인을 해야 한다면

'무적권' 파란색으로 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이러한 문화로 인해 대학원에서 시험을 칠 때도

검정색보다는 파란색으로 쓰는 친구들이 훨씬 많았다.




[계약서 서명 시 이렇게 도장은 사인의 왼쪽, 사인은 파란색으로 한다]



파란색으로 사인한다고 해서 무조건 해외파는 아니다.


가끔 보면 국내에서 사인을 해야 할 경우,

회사원들 사이에서도 

검정색 사인파와 파란색 사인파, 둘로 나뉘는 것을 볼 수 있다.


신입사원 때는 팀장님이 항상 초록색으로 사인을 하는 것을 보며

그저 '개취(개인적인 취향)'로 선호하는 것인 줄만 알았다.


하지만 대개 최종 전결(專決)권자가 아닌 

중간 직책자(팀장, 본부장 등)의 경우

남아있는 결재권자보다 튀지 않기 위해

대부분 무난한 검정색으로 사인하는 것이 대부분이며

자신이 최종 전결권자라 하더라도

색깔 있는 펜보다는 그 무게감(?)을 나타내기 위해

검정색으로 사인하는 것이 다수다.


그보다는 적은 수지만

신입사원 때의 나의 팀장님과 같이 

색깔 있는 펜으로 서명하는 것을 고집하는 사람도 많은데

이는 해외업무를 오래 수행하였거나

앞서 언급된 바와 같은 맥락에서 공신력을 더욱 강조하기 위해

습관적으로 사용하는 경향이 있는 것이다.


한국에서는 무엇으로 쓰든 모두 맞는 것이기 때문에

혹시 부하직원이 자신에게 파란색 볼펜을 주거나

혹은 상사가 사인할 때 파란색 볼펜으로 한다 해도

그 이면에는 문서에 대한 각자의 존중을 담고 있음을

이해하시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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