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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돌아보아도 항상 그 자리에서 지켜보고 있는 엄마

by 미쓰하노이



비행기 탈 때 다시 연락할게



엄마와 포옹을 하고 손을 흔든 뒤

입국심사를 하려고 들어가다

다시 한번 뒤를 돌아보았는데

엄마는 복지부동의 자세로 계속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특유의 그 짠하다는 표정과 함께.


아무 생각이 없었는데

갑자기 눈물이 쏟아져 황급히 고개를 돌렸다.




나는 무슨 팔자를 타고났길래
이렇게 어렵게 살고 있나




이내 아무것도 아니야,

괜히 나를 드라마 비련의 여주인공 만들지 말자, 하고

마음을 추슬렀지만

베트남에 와서도

종종 부모님 생각에 눈물이 났다.



뒤돌아보면

난 참 이기적이고 못된 딸이었고

지금도 그러하다.

늘 부모님보다 내 꿈이 먼저였다.


부모님은 나를 서포트할 여력이 되지 않았기 때문에

등록금이 싼 대학에 들어가

교사를 하거나 공무원이 되어

평범하게 가정을 이루어 살기를 바랐다.

(사실 그 과정은 결코 평범하지 않은 일이다.)


내가 무엇이 되고 싶다고 했을 때도

쉽지 않은 길이며

너는 할 수 없을 것이라 하였다.


부모님이 나의 꿈과 열정에

물을 부을수록 그에 비례해

나의 탈출 욕구와 반항심 또한

극으로 치솟았다.


원하는 대학에 떨어지고

삭발을 하고 들어가 재수를 하겠다 했을 때

아빠는 내게

'네 인생만 중요하냐'라고 하셨지만

결국 할아버지에게서 받은 유산을 정리하여

나의 재수를 서포트해 주었다.


대학에 들어가서도

독립하겠다는 나를 극구 반대하였지만

결국 내 뜻대로 독립하게 되었다.



회사에 취직하고

이제는 결혼하여 남들처럼 살기를 바랐지만

다시 외국에 나가 살겠다는 내게

부모님은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결국 나는 내 뜻대로 할 것이라는 것을

이제는 알기 때문이리라.

그 대신

'네가 무슨 결정을 하든

언제나 널 응원하고 사랑해'라는 말씀을 해 주셨다.


그제야 나는

부모님이 날 믿어주는 것 같아 눈물이 났다.


가끔씩

그렇게 부모님 속을 썩이며

달려온 삶의 결과가

이것인지,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그리고 19살의 나와

지금의 내가 처한 상황이

크게 변하지 않은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항상 뒤에서 지켜보는 부모님을

나 또한 언제나 지켜드리기 위해

앞으로도 꿈을 그리며 살아갈 것이다.



모든 아들딸들,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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