꼭 알아야 하는 베트남의 '띵깜' 문화
"미즈○○, 오늘 혹시 출근했나요?"
"......"
"팀장님, 법무팀 매니저 그만뒀나요?
계약서 관련해서 물어볼 게 있어서
연락했는데 계속 답이 없어서요."
"아.. 그 친구,
최근에 유산을 해서 지금 휴직 중이에요.
다시 복직 안 할지도 몰라요."
"아 제가 그것도 모르고 실수했네요.
혹시 대행하는 직원 연락처를 알 수 있을까요?"
평소 같았으면 칼답을 하는 베트남 현지 직원인데
아무래도 느낌이 이상해
다른 팀 한국인 팀장님께 여쭤보니
그런 개인사정이 있었단다.
아무리 다른 팀이고
말 안 통하는 외국인이라지만
내가 무심해도 너무 무심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친구는 날 뭐라고 생각할까?'
그래서 메시지 회수를 하려고 했는데
일정 시간이 지나 회수도 되지 않아
이내 머쓱하게,
또 한 번 메시지를 보냈다.
"미즈○○,
물어볼 게 있었는데 해결이 됐어요.
별 거 아니니 신경 안 써도 돼요"
두어 시간이 지난 뒤
그 친구에게서 답장이 왔다.
지금 문서작업을 하기는 어려운 상황인데
문서를 요하지 않는 법률적 질문에 대해서는
답변을 해 줄 수가 있다는 것이었다.
나는 그래도 마음이 좋지 않아
해결이 되었다, 괜찮다 하고는 이내
법무팀 다른 직원에게 연락을 취해
자문을 구했다.
한 시간쯤 지나자
다시 그녀가 연락이 왔다.
다른 법무팀 직원에게 주었던 파일에
자신의 코멘트를 달아
내가 원하던 정확한 답변을 주었다.
"이 조항을 이렇게 수정하면
리스크는 없을 걸로 보여요."
"진짜 고마워요!"
"제가 이렇게라도 도울 수 있어 기쁘네요"
베트남의 인맥관리 문화, '띵깜'
법무팀 베트남인 매니저가
개인적인 사정이 있는 상황에서도
나를 도와준 건,
물론 그녀의 개인적인 성품과
프로페셔날한 태도도 크지만
내가 작년에 있었던 그녀의 결혼식을 찾아가는 등
'띵깜(tình cảm, 정감의 베트남어, 한국의 '정(情)'과 비슷한 개념)'의
관계를 형성해 온 부분도 크다고 본다.
대학원에서 베트남의 기업 경영에 관해 배울 때
가장 중요한 요소로 '꽌시(关系, guānxi, 관계)'를 드는데
흥미로운 점은, 이를 베트남어로 번역하지 않고
마치 고유명사와 같이 기업문화의 요소로 인용한다는 점이다.
그만큼 '꽌시'라는 단어 자체가
아시아의 '관계(Relationship)' 문화의 대명사로
글로벌하게 자리매김한 것도 이유일테지만
그래도 한국은 이를 '인맥'이라고 부르는 것처럼
베트남에서는 무슨 단어로 통용되는지 궁금해졌다.
베트남에는 중국의 꽌시와 같은 문화를
뜻하는 단어는 없나요?"
조직문화를 담당하는 교수님께 직접 이를 물었더니
이 '띵깜'이라는 단어를 말씀해 주셨다.
물론 베트남에도 '꽌헤(quan hệ)'라는
'관계'를 의미하는 단어가 있지만
우리도 '관계'라는 단어보다는
'인맥'을 더 자주 쓰는 것처럼
베트남에서도 '띵깜'이라는 단어가
개인 간의 관계문화를 대표하는 용어로 쓰이고 있다.
중국에서는
개인 간의 꽌시를 강화하는 것이
비즈니스의 필수조건이며
해외기업들이 중국에 진출할 때에도
이를 간과하면 실패한다는 것은
이제 엄연한 상식이 되었다.
사실 한국에서도
공정거래법이나 기업 윤리 등으로
많이 투명해졌다고는 하나
여전히 학연, 지연 등을 바탕으로 한
'인맥관리'는 비즈니스의 중요한 요소로 여겨지고 있다.
사회주의 국가인 베트남에서는
보수성향이 강한 하노이에서는 더욱 특히,
이 '띵깜'을 형성하지 않고서는
기업이 살아남기가 쉽지 않다.
최근 많은 글로벌 기업들이 진출하며
이러한 문화도 조금씩 달라지고는 있다 하나
각종 당국의 허가와 승인을 받기 위해서는
여전히 이 '띵깜' 관리가 필수적이다.
우리나라가 경조사 챙기기, 골프라운딩,
식사와 같은 형태로 이루어진다면
베트남 또한 경조사, 선물, 식사 등으로 형성이 되는데
특히 경조사는 결혼기념일까지 챙길 정도이며
선물 또한 그 의미가 상대를 존중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어
우리나라에서보다 그 의미가 더 깊다고 볼 수 있다.
(나쁜 의미가 아니라) '가라오케'를 함께 가고 술을 함께 마시며
'못하이바(một hai ba, 하나둘셋 또는 원샷을 뜻하는 베트남어)'를
외치면서 띵깜을 형성하기도 한다.
그때는 틀리고 지금은 맞다
한국에 있을 때
중국에서 오랜 주재원 생활을 하고 돌아온 팀장님께서
파트너사와 협상을 할 때
항상 시간의 99%를 다른 이야기를 하시고
헤어질 때쯤 미팅의 목적을 말씀하시는 것을 보고
마음이 조급해졌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만날 파트너사는 많고
두괄식으로 요점을 말하고 그 얘기를 풀어나가기에도
1분 1초가 부족한 상황에
'왜 그러실까' 생각했던 적이 많았다.
베트남에 오고 나니
이제야 그때의 팀장님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때는 틀리다고 생각했는데
어찌 보면 한국에서도
파트너사에 따라 그런 방법의 협상이
효과적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맥이고 꽌시고 띵깜이고
단어와 수단과 과정의 차이는 있어도
'진실한 마음'을 바탕으로 해야
마음을 움직이고 빛을 발한다는 것은 만국 공통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