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홀 1달 전] 껍질

껍질을 깨고 나와야 하는 이유

by 셜린

캐나다 워킹홀리데이 가기 1달 전.

"두렵다"와 "설렌다"가 공존하는 상태.

컴포트존에 너무 오래 머문 나머지, 이런 감정이 드는 것조차 감사하다.

나는 지난 근 3년간 반백수였으니까 말이다.



캐나다 워홀? 왜?


전에 타국에서 일도 해봤고, 반백수 기간 동안 나름 프리랜서를 조금씩 하지 않았나 하며 자기 합리화도 해보곤 했지만 그걸로는 안 됐다. 내 성격은 일하지 않으면 곪아가는 본투비워커였고, 사람을 만나지 않은 채 일을 장기적으로 하긴 어려웠다. 그럼 왜 직장을 구하지 않았냐라는 질문을 던질 만한데, 이상하리만큼 국내에서 직장을 구하고 싶지 않았다. 월급 박봉에 인간관계 스트레스라던 디자이너 친구들의 직장 이야기에 나 역시 주연이 되고 싶진 않았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국내에서 일한다는 생각이 나를 전혀 설레게 하지 않았다. 그래서 국내엔 지금까지 이력서 넣은 적이 32년 넘게 단 한 번 밖에 없다. 타국에서 매일같이 야근하며 스트레스받는 환경에서 일해봤기 때문에 또 해외에서 역시 아무 직장이나 다니고 싶진 않았다. 백수 주제에 따질 게 많았던 거다. 그렇게 시간이 훅 가 지금이 왔다. 그 사이, 내가 가고 싶었던 나라, 캐나다가 2024년부터 워킹홀리데이의 나이를 만 35세까지 늘린다는 소식을 들었고, 이건 내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나는 1차 선발에 곧바로 선발되었다.



껍질의 편안함


워킹홀리데이를 준비하면서도 해외 취직의 꿈은 놓지 않았다. 중간중간 연락 온 곳들도 있었지만 하나같이 연락 오다가 결국 수포로 돌아가는 일이 허다했다. 마음이 지칠 때도 있었지만, 나와 비슷한 상황에 있는 롱디 남자친구와 매일 영통하고 공부하는 생활은 꽤나 안락했다. 생산성 있는 하루하루는 보람찼고 그는 나와 항상 함께 으쌰으쌰 해줬다. 남자친구의 응원에 껍질 밖으로 나가려고 노력하면서도, 또 남자친구로 인해 껍질 안이 편안하기도 한 아이러니한 상황이었다. 우리 둘 다 반백수여도 게임만 하고 놀고먹는, 혹은 로또나 당첨되길 바라며 돈 많은 백수가 꿈이야 라고 말하고 다니는 백수이긴 싫었다. 게으름을 장착한 채 당연하게 부자이길 바라는 마인드를 경멸했다 난. 그래서 자기 계발을 꾸준히 했다. 적어도 스스로에게 나 놀지만은 않았다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게끔 꾸준히 디자인 공부나 언어공부도 했다. 하면서 느낀 점은 무언가를 할 때 중요한 건 motivation이 아니라 discipline이라는 것이다. (그 룰을 가르쳐준 남자친구에게 너무 고맙다.)



껍질 속 수분


사실 나는 하고자 하는 일이 있었지만 그게 잘 안 되었다. 열심히 공부를 수년간 해왔지만 그게 트렌드가 되었음에도 나의 실력은 애매한 편이었다. 이 쪽으로 취직은 못 했지만 그래도 열심히 했다는 사실이 주는 안도감은 생각보다 컸다. '할 만큼 해봤다'는 말을 몇 년이 지난 지금은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 늘 죽어라 한 가지 직업만 몇 년간 외쳐대던 내가 정작 이 분야에 자신감은 하나도 없었다. 그래서 들어온 기회도 긴장하고 놓친 적이 많다. 하지만 유튜브에서 우연히 보게 된 정승제 선생님이 말하는 "적성". '내가 이 분야에서 잘한다는 소리를 듣는 사람보다 잘할 수 있을 것 같다'라는 생각이 드는 일이 곧 적성이라던 말씀. 내게도 그런 느낌이 드는 일이 바로 이 백수 기간에 생겼다. 끝없던 공부 그리고 적성이라 불릴만한 일. 그건 내가 컴포트존에서 얻게 된 양분이자 희망이었다.



껍질의 불편함


하지만 팩트는 난 여전히 백수다. 내가 적성을 찾았다고 해서 아직 그걸로 안정적인 돈을 버는 건 아니니 부모님 눈에도 난 그저 몽상가일 것이다. 온라인에서 우연히 보게 된 글 중 그런 글이 있었다. 우울한 백수인 채로 걱정을 한다는 건 적어도 비빌 언덕이라고 있는 거라고. 맞는 말이었다. 그 언덕 위에서 버티던 내게 힘들었던 점이라면 내가 벌었던 돈을 잃지 않는 거였다. 부모님 도움 없이 이전에 타국에서 벌어온 금액으로 다음 타국 정착비로 쓰겠노라 다짐하고 용케 버텨냈다. 30대가 되서까지 부모님 용돈을 받을 순 없었다. 생각 외로 반백수의 기간이 길어지면서 이미 몇 백은 썼지만 그래도 남은 금액을 근 3년간 악착같이 지켜냈다. 나간 만큼 자그마한 프리 프로젝트 일로 채우기를 반복했다. 그래서 처음엔 친구와 만나는 횟수도 많았지만 지금은 그것마저도 자제하게 됐다. 가야 할 목적지와 날짜가 정해진 지금은 이렇게까지 아껴야 그 비싼 밴쿠버 방값을 감당할 수 있을 거 같았다. 근 3년을 되돌아봤을 때 좋은 점이 자기 계발을 많이 했다는 것이라면, 안 좋은 점은.. 부모님께 불효했다는 거다. 하지만 언제까지 이런 삶을 반복할 수는 없었다.



껍질을 깨자


아는 현지인 한 명 없이 타국에 일하러 가는 건 처음이다. 그래서 더 새로운 도전이기도 하다. 남들은 다 결혼하거나 정착해서 벌써 아기를 낳고 하는데, 나는 이미 늦은 데다가 그마저 더 늦어지게 할 새 도전을 하려고 한다. 얼마 전 우연히 채널을 돌리다가 빠니보틀이 유퀴즈에 나온 것을 봤는데 그 말이 기억에 남았다. 잃을 게 없어서 도전했다는 말. 내가 지금 딱 그런 상황 아닐까. 조금 가진 돈 말고는 잃을 게 없다. 해 보지 않은 영역은 위험하고 나를 불편하게 할 만큼 무서웠기에 껍질 속에서 천천히 자라기만 했다. 하지만 더 이상 자랄 공간도 없는 지금 이곳, 이 시기. 이제는 깰 때가 온 것이다. 가진 돈을 잃지 않으려 애쓰는 모습에서부터 알 수 있듯 나는 정해진 틀에서 벗어나는 걸 어려워하는 사람이지만 부딪쳐야 할 땐 어떻게든 해냈던 것 같다. 이번 워킹홀리데이도 합격해 두고서 나갈 날을 못 정했지만 아버지가 갈 거면 빨리 가라며 내 등을 밀어줬다. 그 느낌이 마치 엘리베이터를 혼자 못 타던 어린 나를 엄마가 밀어 두고 강제로 버튼을 눌렸을 때 같았다. 모진 엄마가 미워 엘리베이터 안에서 울던 나는 몇 초 후 도착한 1층에서 어? 안 무섭네?라는 느낌을 처음 배웠던 것이다. 걱정에 앞서 미리 워홀에 가기 전 해야 할 준비들을 거의 다 해뒀다. 이젠 짐만 싸면 된다. 어떻게든 해낼 거니까 1달도 안 남은 지금, 나를 내려놓고 껍질을 깨보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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