밴쿠버라는 도시
챙겨야 할 물품 리스트를 적어도 항상 빼먹는 것들이 있기 마련이다. 나 역시 그랬다. 며칠 나눠 여유롭게 짐을 싸리라 했지만, 출국 전 4-5일가량 조카가 머묾으로써 짐 싸는 계획은 틀어졌다. 출국 전 부족해진 나의 잠, 그렇게 내가 마지막까지 챙기지 못했던 가장 중요한 준비물, 바로 ’ 체력‘이었다.
비행기
직항이 아니었던 내 비행은 피곤하기 그지없었지만 다행히 내 옆자리는 비었었고 복도 좌석은 탁월한 선택이었다. 화장실을 잘 안 간다는 이유로 평소 창가자리를 선호해 왔지만 장기비행인 만큼 승무원과 대화하기에도 그렇고 복도 자리의 이점은 많았다. 기내 와이파이를 사서 쓴다는 후기를 본 적 있어 당연히 있을 거라 생각 후 탔는데 LA행 아시아나 항공엔 없었다. 비행기 안에서 톡 할 거라는 안일한 생각만 하다가 가족, 친구들에게 제대로 된 인사도 못하고 그렇게 상공으로 떴다. 워홀 갈 때 종종 비행기에서 눈물 난다는 사람들이 있어 나 역시 오랜 컴포트존에서 벗어나 도전하는 스스로의 모습에 감정이 격해질 줄 알았지만, 내 육체적 피로는 그 모든 감정을 완벽히 잠재워줬다. 중간에 잠에 들고 싶어 수면유도 되는 진통제를 먹어봤는데 한 알만 먹어서인지 효과가 그리 세지는 않았다.
밴쿠버 공항
LA 경유해서 오랜 비행 끝에 밴쿠버 공항에 내렸고 모든 이들의 인증샷으로 봐온 익숙한 두 장승이 나 역시도 맞이해줬다, 비자는 여권만 가져가더니 1분도 안 돼서 나왔다. 내 옆에 다른 외국인들은 그보다 오래 걸리는 모양이었지만 확실히 한국인이라는 이유로 빠른 패스가 가능했던 것 같다. 택시 앱을 다운받고 지도를 보려는데 옆에서 가나인과 슬로바이카인이 대화를 걸어 스몰토크를 했다. 슬로바키아인은 남자였고 캐나다에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어 밥이라도 먹으러 가자 했지만 입국 전 친구, 가족들로부터 가장 많이 들었던 얘기가 사람 조심해라였고, 과잉보호 남자친구를 생각해서도 쉽게 Yes 소리가 나오진 않았다. 내 표정을 보고 눈치챈 그는 그렇게 홀연히 떠났다. 가나 친구를 도와주다가 내 몸도 힘든 마당에 더 이상 시간 지체하기 어려워 Lyft 타고 에어비앤비로 갔다. 미리 워홀카페에서 사귄 친구에게서 받은 초대코드로 50% 할인 (최대 10달러 할인) 받았더니 그 머나먼 로히드역 (2존-3존의 경계선)까지 택시비로 팁 포함 $43달러 정도 나왔다. 총 4번 50% 할인이라 에어비앤비 1주일 이후 이사할 때도 유용하게 써먹었다. (혹시나 할인 필요할 워홀러를 위한 초대코드)
임시숙소
에어비엔비에 묵었다. 거리가 멀 거라는 새 친구들 말과 달리 나의 에어비앤비 위치는 지하철역과 가깝고 주변에 몰과 수많은 마트가 즐비하는 최적의 장소였다. 처음 도착했던 날 날씨가 생각보다 너무 추워 덜덜 떨며 에어비앤비 콘도의 벨을 눌렸다. 그 집엔 이란인 한 명이 홀렌트를 하고 있었고, 필요한 부분만 설명해 준 후 각자 생활을 했다. 방해되지 않는 선에서 필요한 이야기 외에는 서로의 사생활을 존중해 줬고 나도 그게 편했다. 방 벽에 히터 버튼이 있는 지도 모른 채 두툼한 이불에 의존한 채 잠에 들었다. 한국에선 늘 새벽 5시쯤 자던 내가 일찍 자고 새벽 3시 반에 깨어나니 기분이 묘했다. 어두컴컴했지만 시차 차이로 남자친구가 깨어있었고 그렇게 아침 7시까지 계속해서 대화를 나누다 보면 해가 떴다. 아 참, 에어비앤비 빨래가 안 되는 곳인지 모르고 부탁하니까 매일은 안 된다며 모아서 달라고 했고, 당연히 그럴 생각이었기에 알겠다 했다. 빨래 말릴 시간까지 계산해서 떠나기 이틀 전쯤 빨래를 했는데 생각해 보니 여긴 건조기가 흔하다는 걸 깜빡했다. 에어비앤비라 요리가 되는 점은 좋았는데, 내가 재료를 이것저것 사기가 애매해서 밀키트만 먹었고, 맛은 대실망 그 자체였다.
SIN넘버 + 은행
이틀 째엔 모든 워홀로의 루틴이 그렇듯, 나 역시 서비스캐나다 + 은행으로 향했다. 은행은 한국에서 미리 꼭 예약을 하길 추천한다. 내가 가려던 은행은 CIBC였고 에어비앤비와 매우 가까워 충분히 편하게 갈 수 있었지만, 서비스캐나다를 가려면 뉴웨스트민스터까지 가야 했다. 그래서 CIBC도 뉴웨스트민스터 쪽에 예약해 뒀었다. 친구 말에 의하면 TD 은행은 신용카드를 만드는 게 아닌 이상 SIN넘버가 필요 없다 했다. 나는 신용카드를 만들 예정이어서 SIN넘버가 필요할 줄 알았는데 CIBC는 신용카드를 발급할 때도 SIN넘버가 필요 없었다. 뭐 그래도 오히려 잘 된 거 같았다. CIBC는 추천링크를 통해 계좌 개설 시 $50 받는 프로모션까지 적용했다. 나머지 $350달러 받는 프로모션은 없어지고 코스트코 카드를 만드는 걸로 대체한 것 같았지만, $50가 어디야 싶었다. (워홀러에겐 피 같을 $50를 위한 CIBC 추천링크) 하지만 이 날 나의 몸상태는 서서히 망가져갔다. 은행 담당자 앞에 앉자마자 화장실을 가야 함을 직감했다. 어쩔 수 없이 직원용 화장실을 쓰게 됐고 나의 예상은 맞아떨어졌다. 평소 다낭성 때문에 불규칙적이던 생리가 이번엔 참 눈치 없이 출국 다음 날에 찾아오다니. 그래서 출국 일주일 전부터 몸이 그렇게 힘들었던 거였다.
집 뷰잉 x 2
하지만 수모는 여기서 시작이었다. 이 날 나는 집 뷰잉을 한 곳 해야 했고, 그 집은 뚜벅이 베테랑인 내게도 참 어려웠던 위치였다. 이상한 숲을 지나 걷고 걷고, 또 걷고. 겨우 도착했던 집은 심지어 뷰잉 하자마자 즉각적으로 아니라는 느낌을 주는 곳이었다. 벌써 상주하는 것도 아닌데 부엌을 어떻게 치우는지를 보여줬다. 전에 타국살이 하며 집 쉐어를 해봤다 하니 그제야 오~! 하며 청소 시범을 자제하셨다. 집은 매우 난잡했고, 주인만 건드릴 수 있는 범주가 넓었는데 쉐어의 느낌이 아니라 그냥 방만 독단적으로 빌리는 느낌이 들어 뷰잉이 끝나기도 전에 다음에 뷰잉 갈 집만 생각했다. 집에 돌아오는데 버스정류장인 지 모르고 3m쯤 더 걸었을까, 눈앞에서 버스 한 대를 보내버렸다. 그렇게 20분 이상 대기하게 됐고 신기하게 그곳에서 찍은 사진이 참 예뻤다. 몸이 힘들었지만 안 힘들어졌다. 길을 잃어야만 볼 수 있는 풍경. 뭔가 인생의 교훈 같았다. 남자친구는 성치 않은 내 몸이 고생하는 게 마음 아프다며 계속해서 지도 검색하며 목소리로 네비를 해줬다. 그 말들을 소화하는 것보다 사실 내가 구글에서 검색하는 게 더 빨랐지만 그 마음이 고마워 계속 들었다. 두 번째 집 뷰잉은 그다음 날이었다. 일본인 한 명과 집주인만 거주하는 공간. 3층 주택이었다. 하루 전 날의 집과 비교하니 모든 것이 좋아 보였고, 많은 사람들이 뷰잉 하러 온다는 말에 나는 바로 다음 날 보증금을 보낼 수 있다고 했다. 지금 보면 섣불리 결정한 게 맞긴 하지만, 그래봐야 7주의 계약이었다. 주인은 호랭이선생님 느낌이었지만 말 끝마다 dear을 붙여주는 상냥함도 있었다. 집을 두 번만 뷰잉하고 정했기에 남은 5일은 마음이 편했다. 몸살이 도져서 그 5일 중 이틀은 집에만 틀어박혔었는데 뷰잉까지 더 다녔다면 진짜 힘들었을 거다.
단기숙소
모든 집은 장단점이 존재한다. 그리고 내 기준 이 집은 장점이 내게 더 크게 느껴졌다. 그래서 지하철과의 거리를 포기하고 돈을 아꼈다. 전공을 살릴 생각으로 레쥬메 드랍을 할 계획이 없었기에 더욱 합리적이라 느꼈다. 대개는 임시숙소 1주 정도 이후 장기숙소를 알아보지만, 나는 내가 토론토로 이주할지, 한국으로 돌아올지 확실하지 않은 상황에서 장기숙소를 계약할 순 없었다. 내 임시숙소는 애매한 11일에 끝이 나서 이 시기엔 집 구하는 게 더더욱 쉽지 않을 걸 알았기에 두 번째 뷰잉 하던 집을 나름 괜찮다는 이유로 그 자리에서 덥석 결정해 버렸다. 딱 7주.
해외살이 4년가량 했지만 집주인이랑 사는 건 전 남친 집을 제외하곤 이번이 처음이다. 충분히 따를 수 있는 선 안이었기에 불평은 없었다. 다만 처음에 무엇을 해야 하는지 명확한 설명이나 리스트 작성 없이, 그저 집주인이 싫어하는 행동 (예를 들면, 아침 일찍 샤워하기, 양치 후 세면대 안 닦기 등)을 하면 무섭게 얘기하시는 편이다. 문자로 그런 건 몰랐다며 미안하다니 괜찮다며, 본인은 괜찮은데 같이 사는 일본인 하우스메이트가 불평할 수도 있다는 말을 강조했다. 사실은 집주인 방과 화장실이 문으로 이어져서 본인이 이른 아침의 화장실 소음을 못 참은 걸 텐데 말이다. 첫날, 집주인은 내게 이 일본인에 대한 안 좋은 이미지를 심어줬는데 나중에 일본인과 우연히 부엌에서 대화해 본 결과, 괜찮은 친구였다. 집주인이 말한 것과 달리 영어도 중급이었다. 심지어 같은 디자인 분야였다. 나중에 보니, 이 일본인과 집주인 사이가 안 좋았던 거였고, 참지 못한 이 일본인 친구는 1년 계약을 파기하고 1달만 살고 나간다 한 거였다. 이후 나에게도 이따금씩 잔소리를 하셨는데, 이해되지 않는 부분도 생기다 보니 나 역시 빨리 집이 나가고 싶어졌다. 일본인 친구가 나가게 되던 날 당일에 내게 한국인 하우스메이트가 오늘부터 9개월 산다는 말을 들었다. 이 일본인 이전에 한 한국인이 이 집에 2년이나 살았고 나간 이후에도 집주인 보러 놀러 온다는 얘기에 경악했는데 과연 이번 한국인 하우스메이트도 주인이랑 친해질까. 그런 생각이 들자 굳이 ‘도망쳐’부터 얘기하지 말아야지 싶었다.
사람들
나는 E가 51%인 외향/내향 반반 소유자이다. 워홀 카페에서 친구 구한다는 글에 엄청나게 댓글이 많이 달렸고 그중에서도 톡을 자주 주거니 받거니 했던 사람들 3명 정도 만나봤고, 내가 이렇게까지 외향적일 수 있는 사람이었나 싶은 순간들이었다. 페스티벌이나 meet up 등 뭔가에 참여하는 일이 설레기까지 했다. 더군다나 집에 있으면 집주인과 부딪힐 일이 많으니 차라리 밖으로 나가버리면 스트레스가 줄어드는 것 같았다. 어차피 늘 붙잡고 있던 데스크탑 PC도 없으니 더더욱 집에 오래 있을 이유가 줄어들었던 거다. 인간관계는 어딜 가도 비슷하다. 잘 맞거나 잘 맞지 않거나. 그래서 혹여나 잘 맞지 않으면 그냥 훌훌 털어버리고 새 인연을 사귀는 데에 더 집중하자 싶었다. 30대가 된 지금은 소소한 인연에 큰 에너지를 쏟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반면 잘 맞는 사람들에게서는 정말 얻는 정보도 많고 배울 점도 많아서 캐나다가 처음이라면 특히 처음 와서 아무도 모른다면 사람들을 여기저기 만나보는 게 좋을 것 같다. 나 같은 경우엔 처음 만나게 된 동생이 알고 보니 영주권이 있는 데다가 이전에 캐나다 정부 아래 직업상담사/강사로 일했던 경력이 있어서 이력서나 면접에 관해서 정말 많은 것들을 알려주었다. 내게는 귀인이었다.
도시
한국에서 걱정해 왔던 거에 비해 나는 밴쿠버 생활이 꽤 맞는 거 같았다. 전에 타국에서 산 느낌과 비슷해 이질감 같은 것도 없었다. 에어비앤비든 단기숙소든 일주일 이상만 돼도 그냥 늘 살아왔던 동네 같았다. 내가 가면 부모님 외로우시겠지 하던 생각도 이곳에 오니 한 순간에 날아갔다. 유료 국제전화 할 필요 없이 페이스톡이나 보이스톡을 할 수 있으니 이런 시대에 사는 것도 복이다 싶다. 확실히 나는 복잡한 대도시보다 평화롭고 덜 북적거리는 곳이 좋았고 그래서 선택한 밴쿠버의 성격은 나와 잘 맞았다. 이전에 다인종 국가에서 살았었기에 밴쿠버 역시 내겐 비슷한 느낌이었다. 심지어 음식점들도 그 인종 따라 다양하니 살기엔 정말 좋은 곳 같다. 아직 해보지 못한 액티비티나 여행지도 많은데 이런 생각이 들다니 신기할 정도다. 다만 확실히 내가 온 이 시기 2024년 여름은 집값이나 물가가 많이 오른 것 같긴 하다. 환율 역시 마찬가지.
구직
물가가 오르다 보니 투잡, 쓰리잡 뛰는 사람도 많다 들었다. 그리고 생각 이상으로 인맥 사회라고 들었고, meet up 같은 곳에서 디자인 모임이라도 나가야 뭔가 기회에 손톱이라도 닿는 느낌이랄까. 한국만 인맥사회인 줄 알았는데 실망이라는 한국인들도 꽤 많았다. 영화 ’행복을 찾아서‘가 떠오르는 엘리베이터 피치 (엘리베이터에 타서 매니저 같은 분들이 타면 그들이 내릴 때까지 내 이력서를 전달하며 자기소개와 어필을 하는 것)까지 해야 하는 세상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의 충격이란. 차라리 지금까지의 내 구직활동은 정말 쉬운 거였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거기다 더 안타깝게도 나와 잘 맞는 밴쿠버엔 내가 생각하는 것 훨씬 이하로 디자인 직종이 올라온다. 6월 한 달간 마음에 드는 곳은 단 1군데 올라왔다. 6월 초 오자마자 넣어뒀는데 운 좋게도 딱 그곳에서 2-3주가 지난 후에 연락이 왔고, 그렇게 1차 면접을 화상으로 보게 되었다. 떨어지면 민망할까봐 아무에게도 얘기하지 않았는데 아는 동생에게 면접 도움을 좀 받을 걸 그랬다. 솔직히 준비를 제대로 못해서 대답도 그렇고 전반적으로 좀 망쳤기 때문이다. 그래도 연락이 온 것에 감사하며 다음번엔 더 잘해야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모든 건 경험이니까. 다만, 좋은 공고가 1달에 1번이라.. 자칫하면 토론토로 옮기거나 한국으로 돌아가야 할 수도 있다. 그 생각이 닿자, 이곳 캐나다는 얼마나 경쟁이 치열한 지 새삼 깨달았다. 정말 절실해야 살아남을 수 있다. 링크드인 같은 경우 공고 올린 지 2시간 만에 지원자 100명 이상 되는 걸 흔히 봐왔다. 전 세계 모든 곳에서 지원을 하기 때문이다. 설렁설렁으로는 절대 살아남을 수 없는 나라다. 적어도 지금 이 2024년에는.
내 목표는 애초에 여행이 아닌 구직 하나였지만, 소소하게 밴쿠버 안에서 여기저기 다니고는 있다. 여기까지 와서 집에만 있을 순 없지. 이곳, 저곳 다녀보니 내가 마음에 드는 곳들은 거의 다 평화로운 장소들이었다. 30대가 되니 확실히 자연이 더 좋아지는 것 같다. 올라오지 않는 공고 앞에서 내가 어떻게 할 수 있는 일은 많이 없다. 다음 한 달 동안에는 직접 회사들을 찾아서 이력서와 포트폴리오를 넣어볼 생각도 있다. 앞으로 남은 시간이 많지 않지만 하루빨리 이어서 살 곳을 생각해보려 한다. 그래도 밴쿠버는 정말 좋은 도시다 싶고, 이 도시 선택한 걸 후회하지 않는다. 그럼 이 좋은 인연들도 없었을 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