춤추는 시선을 설계하기 - 독자의 내적 대화 알아 차리기
책 디자인을 배우면서 흥미로운 표현을 들었다. 시선의 코레오그라피. 디자인이란 춤 추듯 눈동자의 움직임을 만들어내는 일이고, 디자이너는 안무가이다. 읽는 사람이 어떤 춤을 추게 될지, 그 안에서 그 춤이 만들어낼 감정은 무엇인지 기획하고 의도하여 구현한다. 가장 오래된 매체인 책이 얼마나 다양한 춤을 올리는 무대가 될 수 있는지, 이전에는 미처 몰랐다. 그런 게 나의 마음을 끈다. ‘스토리’와 ‘텔링’이 있다면 텔링- 이야기의 방식에 대한 영역이다.
일을 쉬는 주말이면 연희동 만화방을 피난처 삼아 숨어있곤 했다. 만화가 콘텐츠의 왕이라는 게 나의 지론. 디자인이나 스토리텔링을 배우는 사람들의 필독서 책 중 하나로 ‘만화의 이해’라는 책이 있다. 만화라고 써있지만 영상과 글, 디자인을 비롯해 ‘창작’의 이해라고 읽어도 무방한 책이다. 책이라는 가장 오래된 매체를 활용하는 방식으로서, 만화는 특히나 흥미로운 스토리‘텔링’의 도구이다.
컷에서 컷으로의 공간을 나누고 끊어진 여백 공간, 잘린 컷의 크기와 음영을 활용해 시간과 공간의 흐름을 표현한다. 사람들은 인지적 여백을 알아서 채우면서 두 장면을 연결한다. 그리고 그 틈에서 장면과 장면 사이 감정이 증폭 되고, 추측과 이해가 생겨난다. 이 틈을 창작자가 어떻게 활용하냐에 따라서. 이 매체의 특성을 이해하고 잘 활용하는 작가를 발견하면 ‘아 이 사람은 스토리텔링 - 이야기 도구를 잘 쓰는 사람이구나’ 생각한다. 숙련된 이야기 설계자란 보는 사람의 마음에서 어떤 내적 대화가 일어나는지, 어디서 주의력이 높아지고 낮아지고 집중력이 흩어지는지, 샅샅이 따라간다. 그걸 간파해 이야기를 설계 한다.
라디오, TV, 책을 비롯해 각 매체들이 가지는 물리적 특성이 있고, 그 특성이 이야기의 전개를 경험시키는 데 영향을 미친다. 영화는 컷의 모음집이다. 컷의 리듬으로, 전환으로 시각적 코레오그라피를 만든다. 티비 드라마에는 이른바 카페 베네 모먼트 - 클리프 행어(Cliff hanger)라는 이야기 장치가 들어간다. 다음 화를 보게 만들어야 하는데 광고라는 시간적 여백이 들어갈 수밖에 없기 때문에 끝부분에 이야기 갈고리를 걸어두는 것이다. 만화는 책에 담길 때는 페이지를 넘기게 만드는 일이 이야기 설계자에게 중요한 과제였다면, 이제 모바일 환경이 되면서 페이지를 넘기는 게 아니라 스크롤을 내리도록 독자를 끌고 가야 한다. 웹툰의 이런 매체적 변화를 정말 잘 활용했던 게 웹툰작가 강풀과 호랑이었다고 생각하고 그런 이야기 수단이 이야기 자체의 재미와 맞물려 떨어질 때 사람들에게 쾌감을 줄 수 있다.
결론적으로 이야기를 만드는 사람에게 매체를 이해하는 건 중요한 일이다. 자신의 이야기가 최종적으로 어떻게 경험될지를 아는 일이기 때문이다. 이건 기본적으로 갖고 있으면 좋은 콘텐츠 리터러시에 가깝다. 잘 읽히는 이메일을 쓰는 방법은 무엇인가? 그 이메일을 읽는 사람이 어떤 환경과 상황에서 이메일을 읽을지 고려하는 것이다. 바쁜 아침 시간에 이동하면서 지하철에서 한 손으로는 손잡이를 잡고 오른 손 한쪽 엄지손가락으로만 스크롤을 내려야 한다면. 줄글로 쓴 이메일은 최악은 선택일 것이다. 시선 추적을 통해 모바일 콘텐츠 소비 습관을 살펴보면, 우리는 선형으로 문장을 읽지 않고 문장을 어구 단위로 건너 뛰었다가 되돌아오며 글을 읽는다고 한다. 스크롤을 내리면서 콘텐츠를 소비할 때는 F형으로 대제목을 먼저 훑어서 개요를 파악한 뒤 세부적인 내용을 읽을 것인지 말 것인지 결정한다. 이러한 콘텐츠 소비 경험을 구체적으로 고려하고 이야기를 만드는 사람과 아닌 경우는 눈에 띄게 차이가 난다. 이야기 틀을 조각하는 역량이다.
맞다. 매체는 이야기 방식을 바꾼다. 그런데 좋은 이야기 자체는 바뀔까?? 그건 시대를 타지 않는다고 본다. 전설은 전설. TV 딩동댕 유치원에 나오던 뽀미 언니가 유튜브의 지니 언니가 되고 허팝이 될 뿐. 좋은 이야기(스토리)란 세상이 그 이야기를 원하는지- 수요의 문제, 주제의식과 구조, 감각의 문제와 더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그러면 이야기는 왜 시대에 따라 바뀌고, 어떤 이야기는 더 잘 발견되고 전파되는 것일까? 그건 그 시대의 주된 매체와의 적합성을 탄다. 스토리텔링에서 - 텔링이라는 가변적인 영역을 잘 활용하는지의 문제이다. 좋은 텔링(이야기 방식)은 담는 그릇, 보는 사람의 경험 설계, 매체 전략을 고려해 결정 되며, 뉴미디어 스토리텔링 - 이라는 것도 초반에는 이 그릇을 이해했는가의 문제였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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