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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애드리절트 이승민 Sep 05. 2023

돈 콜레오네의 마케팅은 죽은 지 오래다.

이 팀장, ‘그깟 5만 원’이 아까운 게 아니야

점심 식사 시간. 김 대표가 직원들과 칼국수를 먹는다. 다 먹어갈 때쯤, 이 팀장이 전 직원이 들을 수 있는 큰 소리로 말한다. 


“대표님 저희 부추전 좀 시켜도 될까요?” 


김 대표는 고개를 끄덕이고 이 팀장은 5만 원 치의 부추전을 주문한다. 김 대표는 ‘칼국수만 먹기엔 양이 부족했겠구나’라고 생각하면서도 이상하게 기분이 나쁘다. 김 대표는 왜 불쾌해진 걸까?


분명 이 팀장은 제안했고 김 대표는 승낙했다. 그런데 김 대표에게 선택권이 주어졌을까? 김 대표가 거절하면 전 직원 앞에서 시원시원하게 요청한 이 팀장을 무안하게 만드는 답답한 리더가 된다. 직원을 위해 ‘그깟 5만 원’ 쓰기를 아까워하는 쪼잔한 리더가 된다. 거절의 대가가 너무 가혹하다. 극단적으로 과장 좀 해서 비유하면 동네 양아치가 번듯하게 정장을 차려입고 와서는 정중하게 “그깟 5만 원만 좀 삥 뜯어도 되겠습니까?”라고 묻는 것과 같다. 거절의 대가는 두들김이다. 누가 거절할 수 있겠는가?


사실 이 팀장은 의도여부와 상관없이 제안의 탈을 쓴 명령을 한 셈이다. 제안에 대한 답의 선택지에는 승낙과 더불어 거절도 포함되어야 한다. 승낙과 거절의 가능성이 50대 50에 가까워야 진정한 의미에서 제안이다. 제안에 답하는 당사자가 상황에 맞춰 합리적으로 판단할 수 있어야 한다. 즉, 상황을 통제할 수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답하는 이가 통제할 수 없는 상황에서의 요청, 제안은 실은 명령, 강압이다. 영화 대부에서 마피아 두목 ‘돈 콜레오네’가 허스키한 목소리로 속삭이는 “I'm gonna make him an offer he can't refuse.”(그에게 거부할 수 없는 제안을 하겠네)라는 말은 꽤나 멋있게 들리지만 모순적이다. 


‘거부할 수 없는’은 ‘제안’의 수식어가 될 수 없다. 


인간은 통제 불가능한 상황에서 불안함을 느낀다. 장시간 지속되면 무기력해지고 인생이 불행해진다. 대한민국은 OECD 국가 가운데 어린이·청소년의 행복지수에서 꽤 오래전부터 단골 꼴찌다. 우리나라 어린이와 청소년들이 느끼는 불행은 많은 부분 통제 불가능한 교육 환경에서 기인한다. 요즘 고등학생들은 고교학점제라는 시스템 하에서 본인이 수강하고 싶은 과목을 선택하기도 하지만 필자가 초, 중, 고를 다닐 당시, 그리고 교사로 근무하던 시절만 해도 그런 건 꿈도 못 꿨다. 학생이 선택할 수 있는 건 동아리 정도였다. 이제는 조금 개선되긴 했지만 여전히 학생들이 선택할 수 있는 폭은 매우 제한되어 있다. 짝꿍도 선생님이 지정해 주거나 제비 뽑기로 결정되며 좋으나 싫으나 그 짝꿍과 한 달을 같이 보내야 한다. 어쩌다 입 냄새 심한 친구가 걸리면 한 달 내내 곤욕이다. 사교육을 선택하고 학습하는 과정에서도 대다수가 부모님의 개입에서 자유롭지 않다.

학생의 통제권이 상실된 대한민국의 교육 환경 / 영화 '죄 많은 소녀' 캡처

인간은 스스로 상황을 통제할 수 있을 때 의욕이 생기고 안정감을 느낀다. 자신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일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아야 하며, 그런 상황에서 결정을 내리고 선택해야만 뒷맛이 깔끔하다. 통제권을 상실하는 순간 찝찝함은 필연이다.


돈이 오가는 비즈니스에서도 나와 거래하는 당사자가 거래 상황을 충분히 통제할 수 있다고 느끼게 해야 한다. 특히나 인터넷을 통한 정보 검색이 너무나도 용이한 오늘날에는 고객에게 통제권을 어떻게 부여하느냐에 따라 사업의 성공 여부가 크게 달라진다. 세계적인 미래학자 다니엘 핑크는 자신의 역작 <파는 것이 인간이다>에서 정보 대칭의 세상이 만든 변화를 기술한다. 여기서 정보 대칭이란 구매자와 판매자가 상품에 대한 정보를 거의 동등하게 접근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온라인이라는 세상이 펼쳐지기 전에는 구매자가 접근할 수 있는 정보가 별로 없었다. 판매자가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인지 확인할 정보가 없기에 현란한 말솜씨와 설득의 기술로 무장한 판매자 앞에서 구매자는 속수무책으로 계약서에 사인해야만 했다. 오늘날은 어떤가? 휴대폰만 꺼내면 거의 모든 정보를 알 수 있다. 중고차를 산다면 차종의 시세가 어떻게 되는지, 사고 이력은 없는지, 판매자가 과거에 판 상품에 대한 고객의 만족도가 어떤지 너무나도 쉽게 파악할 수 있다. 더 이상 통제권을 상실한 수동적인 구매자가 아니다. 일반인들이 범접하지 못할 전문지식의 소유자로 여겨지던 의사마저도 자신의 질병에 대해 조사하고 연구하여 치료의 방향까지 생각하고 찾아오는 환자들을 대면해야 한다. 

이제는 현란한 말솜씨만으로 구매자를 설득할 수 없다. / 영화 '더 울프 오브 월스트리트' 캡처

이처럼 똑똑해진 고객을 마주하는 비즈니스 환경이다. 고객으로 하여금 상황을 충분히 통제할 수 있다고 느끼게 해주는 기술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사소해 보이는 정보도 귀띔하며 언제나 한 발 앞서 고객이 불편함을 느끼지 않게 해야 한다.    


우리 가족이 이용하는 치과 병원은 고객 만족도가 높기로 유명하다. 원장님은 5분 정도의 짧은 치료 과정 중에도 문득문득 고객에게 진행 상황을 알려준다. 


“한 10초 있다가 살짝 시리실 거예요.” 
“드릴은 20초 정도 계속될 겁니다.” 
“5초 정도 따끔할 거예요.”
“잘하고 계세요. 지금 4분 정도 됐고요, 1분만 더하면 끝납니다.”


사실 그 하나하나의 의미로 보면 그렇게까지 중요한 정보는 아니다. 또한 정보를 받은 고객이 실제로 상황을 통제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어떤 고객이 ‘잠시만요, 드릴은 15초로 끊어주세요’라고 말하겠는가. 그럼에도 진행 상황을 알려주는 간단하고 친절한 설명은 고객으로 하여금 상황을 통제할 수 있다고 느끼게 만든다. 자신이 통제권을 상실하지 않고 치료 과정에 함께한다고 생각한다. 고객은 병원을 나오면서 왠지 이 치과에서의 치료는 아프지 않다고 만족하며 휴대폰을 꺼내 이 치과 병원을 SNS에 소개한다.  


유념하자. 고객이 상황을 충분히 통제할 수 있다고 느끼게 해야 한다.


김 대표는 왜 기분이 상한 걸까? ‘그깟 5만 원’이 아까워서가 아니다. 통제권을 상실해서이다. 이 팀장이 조용히 김 대표를 찾아와 작은 목소리로 제안했다면 어땠을까? 김 대표는 여러 상황을 고려하여 제안에 대한 답을 할 것이다. 흔쾌히 승낙할 수도 있고 부추전 말고 새로 생긴 핫플레이스의 디저트를 먹으러 가는 건 어떻겠냐고 이 팀장과 상의할 수도 있다. 어젯밤에 거하게 회식했으니 오늘은 가볍게 먹고 끝내자고 할 수도 있다. 이러나저러나 김 대표나 이 팀장 모두 잃은 건 없다. 김 대표는 이 팀장이 주변 상황을 살피는 센스 있는 중간 관리자라고 생각할 것이다. 


제안받는 상대가 상황을 충분히 통제할 수 있다고 느끼게 해야 한다. 거부할 수 없는 제안이 통하지 않는다. 


돈 콜레오네는 죽은 지 오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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