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의 목적이자 숙명은 무엇일까
좋은 기회에 트레바리 클럽장을 하게 됐고 그 모임의 첫날, 우리는 죽음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처음 만난 사람들과, 처음으로 나누는 주제가 죽음이라니. 모두들 당황스러웠을 것이다. 하지만 죽음은 우리의 삶의 일부이고 필연적이면서도 우연히 우리에게 찾아온다. 며칠 전 보았던 영화 '우연과 상상'은 수없이 많은 삶의 변수들과 우연 속에 상상이란 인간의 특권으로 그것들의 정답 혹은 해석을 가고 있었다. 죽음 역시 우리는 상상으로서 그 미지의 세계에 대한 답을 찾아야 한다. 그날 우리는 다양한 방식으로 우리의 죽음을 상상했고, 언제 닥쳐올지 모르지만 결국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그 존재에 대해 이야기를 했다. "우리는 죽음 앞에서 무엇을 떠올릴까?" 시바타 쇼의 소설 '그래도 우리의 나날' 속 세스코와 사노의 질문. 우리는 세스코와 사노처럼 그 질문에 대해 생각하고 다양한 답을 내뱉었다. 그러고 집으로 돌아오던 길, 어느덧 차가워진 밤공기에 뺨을 비비며, 늦여름이 가을을 만들어내는 바람 소리를 들으며 나는 다시 한번 '사랑'에 대해 생각했다.
한해의 반 이상이 흘렀고, 나의 나이는 어느덧 30대 중반을 넘겼다. 문득 이렇게 무의미하게 흘러가는 삶에 불안을 느낀다. 나는 열심히 살고 있고, 쉴 틈 없이 바쁘지만 그보다 내가 이 인생에서 추구하는 것은 무엇인지, 놓치고 있는 것은 무엇인지에 대해 문득문득 불안을 느낀다. 그래서일까 사랑한다는 말을 입에서, 손끝에서 놓고 싶지 않다. 그 상대가 에로틱을 겸한 상대이든, 플라토닉 한 친구이든, 아가페적 부모이든 그 누구에게도 하루에 한 번이라도 사랑한다 말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다. 마치 사랑이 내 인생의 목적이자 숙명이라 여기듯 말이다.
독일의 작가 모니카 마론의 ‘슬픈 짐승’에서 주인공은 인생에서 놓쳐서 아쉬운 것은 오직 사랑뿐이라고 말한다. 그녀는 자신의 결락이 무엇인지 아는 듯한 한 남자에게 마치 신탁을 받은 것처럼 사랑에 빠진다. 그리고 그녀는 죽는 순간까지 지독하리만치 참혹한 사랑의 잔재를 안고 눈물을 흘리고 탈진하길 반복한다. 이 책을 읽다 보면 이토록 온몸을 집어삼키는 그녀와 같은 사랑은 결코 하지 못할 것이란 생각에 조금의 환멸이 느껴지기도 한다. 그럼에도 언젠가 죽음을 맞이한다면 정갈한 모습으로 나는 사랑을 기억하며 죽고 싶다.
물론 양귀자의 소설 ‘모순’에서 너무 특별한 사랑은 위험한 법이라 말한다. 너무 특별한 사랑을 감당할 수 없어서 그만 다른 길로 달아나버린 주인공 안진진의 아버지처럼. 사랑조차도 넘쳐버리면 차라리 모자란 것보다 못한 일이라고. 나 역시 뾰족하거나 각이진, 혹은 실타래처럼 얇고 긴 사랑으로 인해 무용한 시간을 허비하기도 하고, 서럽고 괴로운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사랑을 주고받는 기적을, 넘쳐나는 귀하디 귀한 사랑을 꿈꾸길 포기할 수 없다.
앞으로 다가올 사랑에 대해 생각하면 몸과 입안이 달고 무척 행복해진다. 슬픔을 아는 아름다움만큼 가치 있는 일은 없다고 하는데 아마 그렇기에 그것이 우연히 다가올 철없는 사랑을 상상하기를 멈출 수 없다.
"주변에서 자신을 가치 없다고 치부한다면 맞서 싸우세요. 세상의 잣대로 자신을 평가한다면 거부하세요. 나만 아는 자신의 가치를 포용할 줄 알아야 해요. 혼자 하려면 매우 힘들 거예요. 하지만 그래도 해야 해요. 그걸 지켜낸 자만이 뜻밖의 인연을 만나 용기를 줄 수 있으니까요." -영화 우연과 상상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