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토 하우스로 가는 길에 만난 멋드러진 카페들
독일에 있을 때 친구 토마스가 알려준 커피 이론이다. 사실 토마스 역시 멕시코에 연수를 갔을 때 만난 호주 친구가 알려주었다고 했다. 유럽과 남미 등지는 커피가 오래전부터 주 음료였기 때문에 어르신들이 많이 계신 곳은 무조건 훌륭한 곳이라는 이론이다. 나는 토마스의 말을 아로새겨 여행 중 할아버지가 많은 카페를 보면 일단 들어가 라떼 한잔을 주문한다.
알토 하우스를 가던 도중 발견한 까페 Max’s café 역시 대. 성. 공.
엊그제 코펜하겐에서 만난 동갑내기 건축인 K씨는 알바 알토의 작품세계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라며 알토 하우스에 가 볼 것을 추천했다. 아침부터 온몸이 찌뿌듯하고 늦잠까지 잔 상태라 눈이 퉁퉁 부었던 나는 알토 하우스 맞은편 골목에 할아버지들이 모임이라도 하듯 가득 찬 카페를 발견하곤 오늘의 모닝커피로 그곳을 망설임 없이 선택했다. 꽤 한적한 주택가인데도 아침 7시에 오픈을 하는 이 카페는 이 동네 사람들의 아침식사를 책임지는 곳임에 틀림없었다. 부드러운 라떼가 목을 타고 온 몸으로 퍼져나간다. 그제야 나는 겨울잠을 자듯 웅크린 눈꺼풀을 만개시킬 수 있었다.
“오늘은 뭔가 다 잘 풀릴 것 같아.”
나는 룰루랄라 콧노래까지 불러가며 알토 하우스에 도착했다. 하나 도착한 알토 하우스는 문이 꽁꽁 닫혀 있었다. 당황한 나는 집의 이곳저곳을 배외하며 들어갈 수 있는 곳을 찾아보았으나 모든 곳은 잠겨있다.
“아, 일부러 여기까지 찾아왔는데…… 웬일이야.”
나는 급히 한국 시간을 확인하곤 K씨에게 문자를 보냈다.
-저기, 오늘 알토 하우스 문 닫았나 봐요. 원래 평일에도 문을 닫아요?
-그럴 리가, 거기 몇 시죠? 알토 하우스는 가이드 투어만 되는데. 매일 1,2,3,4,5시 가이드 투어로만 들어갈 수 있어요.
-아. 지금 12시 좀 안됐네. 그럼 꼭 1시에 들어가야 하는 거죠? 그럼 1시간 동안 뭐하지.
알토 하우스가 있는 이 곳은 중앙역에서 트램을 타고 20분 정도 와야 하는 곳으로 조용하고 고급스러운 주택가이다. 아까 머물렀던 까페 외에는 아무것도 시간을 보낼 만한 곳이 보이지 않았던 지라 나는 잠시 고민에 빠졌다.
- 그 들어오던 길목으로 쭉 직진하면 바닷가예요. 거기에 바닷가 앞에 있는 Café Torpanranta 추천할게요. 알토 하우스 직원이 전에 추천해 준 곳인데 가봐요.
-우와, 고마워요. 나 진짜 좀 당황했었는데.
-당황하지 마요. 그리고 아카데미카 호스텔 근처에 있는 교회랑 바닷가도 꼭 가고.
-우와, 헬싱키 며칠 안 있었잖아요. 당신 왜 이리 전문가야?
헬싱키 박사 같은 K씨 의 도움으로 나는 바닷가를 발견했고, 그 옆에 자리 잡은 너무나도 아름다운 까페 Torpanranta를 만났다.
-여기 진짜 좋네요. 너무 감사해요. 최고다.
-여유 있게 앉았다가 가요. 정각 즈음에 잘 맞춰서 알토 구경도 잘 하고. 그냥 작은 집이지만 그는 거의 핀란드의 영웅이니까요.
바다를 바라보면 맑고 푸른 하늘을 본다. 커피 한잔에 시나몬 롤을 입에 넣는다. 씁쓸한 커피와 쌉쌀한 계피향, 달콤하고 두툼한 설탕이 입안에서 서로를 껴안아 더욱 깊은 향을 뿜어낸다. 눈이 번쩍 뜨이는 황홀하고 거창한 맛은 아니지만, 언제 먹어도 질리지 않는 시나몬 롤의 달콤 쌉싸름함이 참으로 헬싱키를 닮았다. 조용하고 한적한 바다는 내가 천천히 흘러가는 구름을 따라 시선을 옮기는 동안 나의 시간을 이끌고 가고 있었고, 금세 1시가 되었다.
알토 하우스에 들어가자 이미 많은 사람들이 도착해 가이드 투어를 시작하려 하고 있었다. 나는 헐레벌떡 신발을 벗고 조용히 그들 틈바구니 사이에 숨어들었다.
핀란드 태생의 세계적인 건축가 알바 알토는 1936년 첫 번째 부인 아이노 마르시오와 함께 이 집을 완성했다. 알바 알토는 명실상 부한 핀란드의 대표 인물로 그의 이름을 딴 대학부터 지폐까지, 핀란드 국민들이 그를 얼마나 사랑하고 존경하는지 알 수 있다.
아이노와 이혼 후 두 번째 부인 엘리사와 재혼한 후에도 오랜 시간 이곳에서 주거와 작업을 함께 진행했던 알토 하우스 곳곳에는 우리가 말하는 ‘스칸디나비아 스타일’의 정석을 보여주는 것 같았다. 정적인 느낌과 자연 친화적인 소재들과 컬러, 아내들이 디자인한 모던한 조명들과 가구들, 이태리에서 가져왔다는 다이닝 체어 등, 어느 하나 모나게 튀지 않고 잘 어울려져 있다. 알토 하우스 투어를 진행하는 직원은 입이 마르도록 알토는 천재라 칭하며 이 집은 몇십 년이 지났지만 전혀 인테리어가 촌스럽지 않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 말한다. 마치 알바 알토가 현재까지 존재하는 듯한 느낌이 드는 이집은 진실로 시간의 흐름이 멈춘 듯했다.
나는 가구들을 손으로 쓸어 보았다. 이 가구도 집도 알바 알토란 한 사람의 유품이다. 유품이란 본 주인을 죽음이란 것으로 완벽하게 소멸시키지 못하고 현세와 이어주는 매개체로 떠나버린 자에 대한 하나의 대용품이자 우리에게 위안을 주는 새로운 존재이다. 그가 세계적인 건축가라는 것을 모르더라도 그가 이 집을 진심으로 사랑하고 아꼈음이 손 끝으로 느껴지며 알 수 없는 위안을 준다. 따뜻한 집과, 그곳에 머물렀을 아름다운 가족. 나는 알바 알토의 초상을 바라보며 아 따스함을 나눠준 것에 감사의 인사를 보냈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