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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ather Mar 05. 2016

노르웨이의 마지막 밤

삶의 특별함이란 참으로 가까운 곳에서 갑자기 찾아온다.

6시간을 달려 다시 오슬로 중앙역에 도착했다. 분명 얼마 전 까진 밤 11시가 되어도 밝던 하늘이 9시 반이 되니 어두워진다.

“북유럽의 여름은 정말 3주뿐인가 봐.”


차가운 바람에 옷깃을 세우고 중앙역 근처의 호스텔로 가 체크인을 완료했다. 같은 비용이면 다른 나라의 독실을 쓸 수 있을 법한 가격의 4인실. 오슬로니까, 그리고 무척 깨끗하고 예쁜 호스텔인 것에 만족한다. 나는 침대와 마주하자 소나기처럼 쏟아지는 졸음을 이기지 못하고 그대로 잠이 들었다.


아침에 눈을 뜨니 이미 방 안의 사람들은 모두 밖으로 나갔는지 홀로 늦잠을 자고 있었다. 창문 밖을 보니 푸르른 하늘이 보인다. 새파란 하늘과 새하얀 구름. 노르웨이에선 좀처런 보기 힘들었던 태양이 얼굴을 내비친 것이다. 나는 허겁지겁 옷을 갈아입고 짐을 싼 후 호스텔 밖으로 뛰어나왔다. 여전히 날은 춥지만 너무나도 아름다운 햇살이다. 나는 기분 좋게 콧노래를 부르며 바닷가로 걸어갔다.



오슬로 시청 앞에 펼쳐진 바닷가는 노르웨이에서 단 한 번도 예상치 못했던 아름다움을 발견한 듯했다. 오슬로에게 이토록 푸르고 차분한 면이 있었던가? 우아하고 따뜻한 귀부인처럼 수수히 차려입고 따뜻한 차 한잔을 건넨다.

나는 그 앞에 앉아 나의 여행을 이야기한다. 햇살 한 줄기가 내 이마를 비추고 따뜻한 차가 온몸에 퍼지듯 몸의 온도가 1~2도 올라간 것 같다.



베르겐에서 만난 뉴욕 출신 미국인 변호사는 자신이 도시 사람이라 그런지 노르웨이에선 오슬로가 가장 좋다고 했다. 또한 다른 도시처럼 화려하진 않지만 숨어있는 아름다움과 즐거움이 많아서라고 했다.

그 당시 함께 앉아 있던 독일인 커플과 나는 “에이, 노르웨이에서 제일 노르웨이 같지 않은 곳이 오슬로잖아. 노르웨이는 자연을 봐야지.” 라며 그의 의견에 반박했었다.


하지만 지금 이 곳에 오니 나는 그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노르웨이 같지 않아 더 특별하고, 또 이렇게 숨어있는 우아한 아름다움을 내뿜고 있으니 말이다.



바다 앞에서 잠시 그 따스함에 시간의 흐름을 잊고 있다 확인한 손목시계에 화들짝 놀란다. 시청사에서 진행하는 12시 무료 투어를 꼭 하고 싶었는데 시계는 이미 11시 55분이다. 나는 폴짝폴짝 발걸음을 재촉해 시청사로 몸을 옮겼다.


“다행이다. 바다가 시청사 바로 앞이라서.”

12시가 되자마자 사랑스러운 외모의 가이드 2명이 우리 앞에 섰다.

“영어 가이드와 노르웨이어 가이드가 진행됩니다. 각자의 언어에 맞춰 줄을 서세요.”



나는 금발의 귀여운 가이드를 따라 시청사를 돌아보게 되었다. 오슬로 시 창립 900주년을 기념해 세운 시청사 안에는 유럽에서 가장 커다란 유화가 있다. 가이드는 벽화에 담긴 의미와 작가에 대해 하나하나 자세히 설명하며 오슬로와 노르웨이의 역사에 대해 설명했다. 노르웨이를 지배했던 덴마크를 트롤로 표현한 작품에선 혹시 여기 덴마크분이 있냐고 묻더니 덴마크 관광객들에게 가벼운 농담과 인사를 건네는 등 꽤 노련한 모습을 보였다.



2층 뭉크의 ‘인생’은 시청사 투어의 하이라이트라고 할 수 있었다. 모든 사람들이 그 작품에 시선을 빼앗겼고 감탄사를 내뱉기 시작했다. 또한 북유럽 신화인 ‘에다(Edda)’를 표현한 작품에서 사람들은 연신 카메라 셔터를 눌렀다.


“그런데, 여긴 노벨 평화상 수여식을 하잖아요. 왜 노벨 평화상만 여기서 진행하나요? 다른 노벨상은 모두 스웨덴에서 수여식을 하잖아요.”

투어 마지막에 나는 쭈뼛쭈뼛 손을 들어 가이드에게 질문을 던졌다. 순간 모든 사람들이 나를 바라보았고 나는 부끄러움에 고개를 숙였다.

“음, 진실은 노벨만 알 거예요. 노르웨이 정부도 그게 너무 궁금해하는데 노벨의 무덤에 찾아가 물어도 답해주지 않더라고요.”

그녀의 재치 넘치는 대답에 우리 모두 큰 웃음을 터트렸다.


노벨의 유언으로 오슬로 시청사에서 매년 거행되는 노벨 평화상 수여식. 노르웨이가 UN 창설 회원국이어서, 노벨이 스웨덴을 골탕 먹이려고, 노르웨이가 덴마크, 스웨덴 평화에 큰 기여를 해서 등등, 다양한 이유가 있지만 딱히 밝혀진 이유는 없다고 한다.



가이드 투어가 끝나고 우리는 크게 박수를 쳤다. 수줍은 인사를 남기고 가이드가 떠난 시청사 안은 다시금 고요만이 남았다. 나는 텅 빈 시청사를 나와 곧장 먹잇감을 찾아 골목을 헤맨다. 호스텔에서 먹은 조식은 왜 이리 빨리 꺼지는지 금세 배가 고프다.


“오슬로에서 제일 맛있는 당근케이크를 파는 곳이 여기 근처였는데. 아, 저기 있다!”


저 멀리 People and Coffee라고 적힌 작은 간판이 보인다. 론리 플래닛을 비롯 트립어드바이저에서 추천했던 피플 앤 커피. 이국적인 분위기, 브라질, 멕시코 등 다양한 남미 국가들의 국기들이 걸려 이 곳의 커피가 어디에서 오는지를 알려주는 것만 같다.


유명한 곳인 만큼 이미 카페 안은 사람들로 가득 찼다. 나는 창가 구석에 한 자리가 비어 있는 것을 보고 얼른 자리를 잡았다.

“블랙커피와 당근 케이크 한 조각 부탁드립니다.”


어디, 오슬로에서 가장 맛있다는 당근케이크의 맛은 어떨까? 달콤하다. 상큼하다. 부드럽다. 그리고 작고 비싸다. 나는 케이크를 먹는 내내 눈 앞에서 사라져가는 작은 케이크 조각을 안타깝게 바라보았다.



포크 한 번에 4분에 1씩 풍덩 잘려 사라져가는 조그만 케이크. 그래서인지 입 안에서 좀 더 오래 맛을 음미하고 천천히 이로 조각을 부순다. 커피 한 모금에 오슬로의 시간이 반나절밖에 남지 않았다는 것을 상기한다.


이젠 어디로 갈까?

조금 많이 멀지만 비겔란 공원은 가 보는 게 좋겠지?

입센의 나라에 왔으니 입센 박물관도 가 보자.


나는 다이어리에 갈 곳들의 주소를 받아 적고, 지도에 형광펜을 칠한 후에서야 피플 앤 커피를 나올 수 있었다.



그런데 이 사랑스러운 당근 케이크는 끝끝내 나에게 달콤한 마법을 부린다.

 카페 앞 횡단보도, 신호로 갑자기 내 앞에 정차한 택시 안에 익숙한 얼굴이 보이는 것이다.


어!!!!!

그 차 안에는 플롬스바나를 함께 탔던 UP할아버지 부부였다. 나는 순간 너무 놀라 Hello를 외치며 그들에게 손을 흔들었다. 그러자 부인이 나를 발견하곤 손으로 나를 가리킨다. 그리곤 옆에 앉은 남편을 흔들어 나의 존재를 알리곤 손을 흔든다. 나는 너무 기뻐 양손을 하늘 높이 번쩍 들고 손을 흔들었다.


그때 갑자기 신호가 바뀌고 택시는 앞으로 향한다. 멀어지는 택시의 창문이 열리고 메아리처럼 부부의 목소리가 들렸다.


“안녕! 다시 보니 너무 반갑구나. 여행 잘해!”

도로에서 택시는 저 멀리 순식간에 멀어진다.


“고마워요! 할머니, 할아버지! 여행 잘하세요!”

나의 대답이 끝나기도 전에 이미 차는 사라졌고 나는 텅 빈 거리를 향해 다시 한번 더 손을 흔들었다.

“너무 반가워요.”



인연은 그 자리에 있는 게 아니라, 인연 스스로가 찾아오는 것인가 보다.

며칠 전, 산 속에서 스쳤던 인연이 오슬로의 카페 앞으로 찾아왔다.

플롬에서의 즐거웠던 대화가 오슬로에서 비로소 특별함으로 완성되었다.


삶의 특별함이란 참으로 가까운 곳에서 갑자기 찾아온다. 나는 다시금 그들과의 대화를, 그 산 속 작은 산악열차에서의 대화를 떠올린다. 그리곤 생각한다.


언젠가 연인과 함께 노르웨이에 오겠노라.

노르웨이 숲에서 두 손을 꼭 잡고 나란히 걷겠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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