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나는 그 애에게 침윤되어 세상엔 그뿐이라 생각했다.
8월 15일을 기점으로 하늘은 새로운 색을 입었고 피부 위 솜털이 꼿꼿이 섰다. 잘 닦여진 LP판처럼 참으로 매끄럽게 계절이 다음 곡을 연주하기 시작한 것이다. 봄에서 여름으로 넘어가는 것은 서서히 물이 끓듯 몸이 데워지는 기분이었는데 가을은 놀랍도록 깔끔하게 계절의 경계에 그어진 선을 깡충 뛰어넘었다.
여름의 마지막 밤이라고 하기엔 애매하지만 완전한 여름의 조각들이 떨어져 나간 15일의 밤, 나는 오래전 사랑했던 존재에 대해 깊이 생각했다.
이제 와서 울기엔 조금 낡은 기억, 잊혔다고 하기엔 아직 내속에 가는 숨을 내쉬며 살아있는 연약한 생명.
그 존재를 떠올리기 위해선 깊이 생각할 필요가 있고, 깊이 들어가 생각이 묻힌 기억에 닿자 나는 알 수 없는 미묘한 기쁨과 슬픔에 휩싸였다. 그리곤 곧 오랜만에, 무겁거나 버겁진 않은, 하지만 쓰고 여린 우울함이 나를 덮쳐왔다.
나를 주로 우울하게 하는 것들에는 몇 가지 공통점이 있다. 바로 '사람'이라는 것이다.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피할 수 없는 '관계'라는 굴레 속에 어쩔 수 없이 맺어지는 사람들과의 연결고리. 어릴 때는 학교에서, 졸업 후엔 회사에서, 혹은 아주 오래전부터 탯줄로 이어진 가족이란 구성체 속에서 나는 언제나 기쁨과 슬픔에 처해지곤 했다. 이 관계는 가장 기본적인 먹고 삶이란 생존과 직결되며 피할 수도 없고, 끊을 수도 없다. 이런 관계에서 마음에 생체기가 나면 약을 바르고 눈물을 닦고 다시 그 구성원들 사이로 스며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사랑, 에로스가 묻어난 사랑이란 것으로 맺어진 관계는 내가 시작과 종결이 확실하고 무던한 노력을 하면 피할 수도 있다. "난 사랑에 빠졌어요, 너무 아파요. 근데 계속 아프고 싶어요." 라던 이은주 배우의 영화 대사처럼 순식간에 나를 점령하는 이 감정을 애써 꺼내보려 노력하여 자발적인 우울을 불러내는 건 도대체 어떤 자학적이고도 고약한 심리인지 스스로에게 묻고 싶다.
나는 15일 여름이 비껴가던 밤, 20대 중반에 접어서 사랑했던 존재와의 안타까운 이별을 떠올리며 무심하게 웃는다. 그때의 이별의 슬픔이 이제는 큰 슬픔이 아니라는 웃음을 짓는다. 그리곤 슬펐던 이별의 장면을 무시한 체 기억에 남는 작별의 장면을 골라 꺼내본다.
- 첫사랑과 KTX에서 헤어진 날 새벽 아침의 기쁘고도 안타까웠던 우울함에 대하여 -
혼자 짝사랑이란 걸 해보긴 했고, 20살에 얼떨결에 첫 연애를 시작했기도 했지만, 나는 나의 진정한 첫사랑은 25살에 만난 남자애라고 말하고 싶다. 매일 나의 얼굴보다는 컴퓨터만 뚫어져라 바라보던, 큰 키에 덥수룩한 머리를 한 남자애를 나는 참으로 좋아했다. 특히 나를 빤히 바라보며 쓰윽 지어 보이던 웃음은 정말이지 가치를 환산할 수 없을 만큼의 기쁨을 나에게 주었다. 그 남자애는 서울에 살았고, 당시 나는 부산에 살았다. 크리스마스날 저녁 나는 그 애가 너무 보고 싶어서 서울에 올라갔고 새벽 첫차로 다시 부산으로 내려왔다. 그때 KTX 앞에서 나를 안아주던 그 애의 미소와 온기가 아직도 생생하게 느껴져 글을 쓰는 지금도 조금 설렌다. 장난기 가득했던 눈동자 속에는 아쉬움과 사랑이 서려있었고, 아무렇게나 맨 머플러는 무심해 보이는 안경만큼이나 그 애와 잘 어울렸다. 그때 나는 어떤 로맨틱한 말을 하기보다는 헤어짐이 아쉬워 눈물을 흘리고 때를 쓰고 투정을 부렸다. 그 애는 그런 나를 달래며 애매모호한 알 수 없는 표정을 잠시 짓더니 이내 나를 안아주었다.
그리고 몇 분 후 내가 탄 KTX가 떠났고 그 장면은 인생에선 다시 마주할 수 없는 처음이자 마지막 장면이 됐다.
차가운 겨울날 새벽 공기에 창문이 얼어 졸던 나는 창문의 냉기에 놀라 잠을 깼다. 시간이 꽤 지났지만 기차는 아직 대전이었고 누군가 새벽 첫차를 향해 몸을 던져 시신을 수습 중이라는 방송이 나왔다.
누구도 기억하지 못할 어느 죽음, 냉기가 가득한 기차역, 방송에 크게 동요하지 않고 욕지거리 몇 마디를 내뱉다 잠든 사람들, 그리고 석고처럼 그대로 굳어버린 나의 설렘.
내 첫사랑과 애틋하였던 이별과 포옹의 순간은 이렇게 이름 모를 타인의 죽음과 함께 기억된다. 나는 첫사랑의, 몸을 던진 누군가의 가족도 아님에도 매년, 혹은 매 계절 그들을 함께 떠올리게 됐다.
그때 나는 그 애에게 침윤되어 세상엔 그뿐이라 생각했는데 그 애와의 기억은 몇 년이 지난 지금도 나를 가끔 흔들어 놓는다. 이제 와서 소회를 털어놓자니 때 늦은 이야기인 것 같지만 나는 진실로 그 애에게 이별을 통보받았을 때만큼 이때 기차역에서의 이별을 깊이, 생생하게 기억한다.
아름다운 것도 슬픈 것도 작은 것도 큰 것도 그 어떠한 형태와는 상관없이 머릿속을 뒤집고 끝내 심장으로 흘러가 마음을 죄어오는 감정의 과부하.
기차역에서 어느덧 7년이 지났고, 식사를 하다가 문득 앞에 앉은 새로운 남자가 말했다.
"J야 너무 예쁘다.”
J가 답했다
"당연하지... 나는 과거에 그 아이가 정말 사랑했던 사람의 얼굴이니까."
우리들의 사랑의 타이밍은 이토록 어긋나 있다.
오늘 밤은 너무나도 졸립지만 잠을 자지 않으려 한다. 반드시 슬픈 이별의 꿈을 꿀 것이기에.
- 사진은 내용과 상관없는... 그보다 더 오래전 사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