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나는 예전보다 건강하다. 그걸 느끼고 살아가고 있다.
아다치 미츠루의 만화 'H2'에서 히로는 중학교 때 전국 톱을 달리던 투수였으나 팔꿈치 부상 후 이대로 야구를 하면 3개월 후엔 부서져 망가질 거라는 의사의 말을 듣는다. 그렇게 히로는 야구를 그만두고 야구부가 없는 센카와 고등학교로 진학한다. 하지만 그곳에서 자신의 팔꿈치 부상이 오진이었다는 걸 알게 된다.
"검사 결과는 어떻게 됐냐?!"
"유리는 유린데... 총알에 맞아도 끄떡 않는 방탄유리라는군."
재검사 결과 정상 판정을 받은 히로는 급히 조성된 야구부원들과 함께 갑자원을 향해 달려가는데...!
뜬금 웬 만화책 이야기인가 하면, 나는 나의 귀를 쫓는 모험 중의 어느 한 부분이 히로의 팔꿈치와 비슷하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는 조금 억지인 것 같지만. 나는 그날의 고통스러웠던 기억을 그나마 청춘만화의 한 장면처럼 명랑하게 기억하고자 노력 중이다.
응급실에 실려가길 2번, 처음 응급실을 다녀온 건 저염식과 이뇨제를 복용한 지 약 2달 후의 일이었다. 체력이 떨어지고 몸이 조각나고 부서지는 듯한 느낌이었다. 살깥이 얇아진 건지 근육이 사라진 건지 무언가가 닿기만 해도 통증이 느껴졌다. 모래알을 씹듯 언제나 까슬한 혓바닥, 하고 싶은 것도, 먹고 싶은 것조차 없는 날들이 2달 더 지속됐다. 약해빠진 나의 몸에 속한 이 귀는 여전히 힘없이 팔랑였다. 예전처럼 풍선이 뻥하고 터진 것 같은 먹먹함은 한결 수그러 들었으나 매서운 칼바람에 귀가 부딪혀 근육들이 팽창하면 귀는 반사적으로 에어백 같은 걸 터트려 잠시 1~5분 정도 멍한 상태를 유지하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차가운 공기에 편도까지 말썽을 일으킨 날, 내가 그 당시 서있던 도로 근처에서 가장 가깝고 유명한 이비인후과를 찾아갔고, 그곳에서 나의 귀는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게 된다.
약 40분의 대기, 북적북적한 사람들로 보아 이 곳은 유명한 병원임에 틀림없다. 나는 오랜 시간 끝에 조금 날카로운 인상의 노의사에게 입을 펼쳐 편도를 열어보였다. 그는 능숙한 손놀림으로 편도를 소독하고 약을 발랐다.
그리곤 몇 가지 편도에 관한 처방 이야기를 하더니 나를 돌려보내려 했다. 그때였다.
"제가 메니에르인데요, 진짜 메니에르인지 모르겠어요."
나는 무언가 개시를 받은 종교인처럼 중얼중얼 나의 증상을 설명했다. 아직도 내가 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분명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기분이었을 것이다.
"메니에르요? 검사는 해봤어요? 우리 병원에서도 검사할 수 있는데?"
"다른 병원에서 이미 검사를 받았어요. 그런데 검사 결과가 모두 정상인데 전 어지럽지도 않고, 그냥 가끔 귀가 먹먹하고 이명이 생겨요. 숨 쉴 때 근육이 움직이는 소리가 들려요. 4개월 정도 됐어요."
노의사는 나를 빤히 바라보더니 불쾌한 듯한 시선과 탄성을 내뱉었다.
"왜 남의 병원에서 결과까지 받아놓고 여기서 그런 질문을 해요? 전 다른 의사가 내린 결론을 반박할 수 없습니다. 나가세요."
눈물이 터졌다. 의사는 왜 이리 불친절할까. 의사는 내가 얼마나 힘들게 4개월을 버텼는지 알까? 온갖 서러움이 몰려왔다. 의사의 매서운 말에 쪼그라든 나의 입술은 굳게 닫혔으나, 모든 서러움이 역류하여 터져 나온 눈물은 멈추지 않았다. 나는 결국 엉엉 소리 내어 울었고 옆에 서 있던 간호사의 부축을 받으며 방을 나섰다.
방 문이 닫히자 눈물은 더욱 거리낌 없이 꺼억꺼억 터져 나왔고 나는 바닥에 주저앉았다.
"한 번만, 한 번만 다시 검사해보면 안 될까요? 아무리 노력해도 나아지는 게 없어서 물어본 건데, 저렇게 심하게 말할 필요는 없잖아요. 전 이제... 점점 제 병이 뭔질 모르겠어요. 이렇게 죽은 듯이 계속 온몸을 아파하며 사는 게 맞는지 모르겠어요. 한 번만 다시 봐주시면 안 될까요."
나는 간호사 앞에서 정신 나간 사람처럼 애걸했고 간호사는 다시 진료실에 들어가 의사와 잠시 이야기를 하더니 나를 불렀다.
의사는 여전히 말이 날카로웠고 마치 법원에서 징역을 판정받아놓고 이제 와서 다른 변호사를 찾는 흉악한 피의자를 대하는 양 나를 몰아세웠다. 나는 입을 틀어막고 최대한 스스로를 달래 가며 의사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나는 애걸 끝에 몇 가지 검사를 받을 수 있었고 결과는 역시나 '정상' 판정을 받았다.
"메니에르가 아닙니다."
"네???"
"이관 문제인 거 같은데 이관은 딱히 약이 없고... 이명 있다고 했죠? 이명 관련 약 조금 처방해 줄 테니 먹어요. 소금 먹어요. 짠 거 좀 챙겨 먹고 당장 그 이뇨제들 쓰레기통에 버리세요. 체력을 키워야 해요. 이관은 면역력이랑 체중이 떨어지면 더 안 좋아져요. 오늘 당장 제일 먹고 싶은 걸로 잔뜩 사 먹으세요."
나는 아직도 진료실에서 그 의사가 했던 말이 생생하게 귓가에 맴돈다.
나는 그에게 몇 번이고 인사를 하고 간호사에게도 감사를 표했다. 이상한 기분이었다. 가짜인 약을 비타민으로 속아 매일 복용했는데 몸이 나아진 실험자가 있다. 나는 내가 가지지 않은 병명에 써져 몸이 더 아파졌던 걸까? 메니에르가 아니란 말을 듣자 어찌 그토록 기쁜 마음이 들었던 걸까?
그 이후 나는 이관으로 전국에서 가장 유명하다는 모 교수님을 찾아가 검사를 받았고 메니에르가 아닌 <이관 개방증>이란 진단을 받았다. 물론 가장 유명한 교수님 조차 이관 관련해서는 약도 처방해주지 않았다. 그저 체력을 키우고 비염 관리를 하라는 정도의 가벼운 처방만을 내렸다.
사실 아직도 나는 내 귀의 문제가 정확히 무엇인지 모르겠다. 정말로 메니에르였는지, 메니에르가 사라진 건지, 애초에 그런 병 따위 나에겐 없었는지, 이관 개방증이란 건 의사 말대로 평생 안고 살거나 그저 자연 치유되길 바라야 하는 건지. 이 이관 개방증이란 건 언제 나에게서 종적을 감출 것인지. 메니에르란 단어 자체가 나에겐 속박과 병의 굴레였던 것인지. 아직도 명확한 것은 하나도 없다.
추석을 앞둔 9월, 선선한 바람이 부는 가을의 초입.
나의 귀의 근육은 아직도 나의 숨소리와 말소리에 크게 움찔거린다. 그간 체력을 키우고 병을 그저 받아들이려고 했다. 이 병의 존재를 두려워하지 않으려 노력했다. 아니 노력을 했다기보다 시간이 서서히 나를 이 병에서 무딘 사람으로 만들었다.
새찬 겨울 뒤 봄이 오고 나는 많이 먹고 살이 쪘다. 스트레스 원인들이 한두 가지 사라졌다. 귀는 여전히 움찔거리지만 새로운 가을을 맞이한 지금, 나는 그럭저럭 건강하다.
겨우내 썩어가던 잎사귀 사이로 새싹이 돋아나듯 싱싱한 자두 같은 두 뺨을 다시 찾았다.
맛있는 걸 먹는 순간이면, 하루 종일 돌아다녀도 괜찮은 체력이 생기니 이만하면 귀가 다 낫지 않아도 되었다는 생각마저 든다.
나는 여전히 여러 질병을 가지고 있다.
직장인이라면 누구나 있다는 역류성 식도염과 위염은 나았다가 사라지곤 한다.
환절기가 되면 늘 그러하듯 알러지성 비염도 잠시 들렀다 간다
그래도 나는 예전보다 건강하다. 그걸 느끼고 살아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