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어린 시절을 기억하는 사람이 없는 곳, 서울.
회색 빛이 짙어 낮임에도 불구하고 시야는 어둡기 그지없었다. 커다란 회색 쥐의 등을 타고 거친 털을 헤쳐 나가는 것처럼 한 발자국 한 발자국 걸어가는 길은 낯섦이 조장한 불안함에 발걸음을 재촉하게 만들었지만 도대체 어느 길로 가야 할지 몰라 당황스럽기만 했다. 나는 왜 지도 한 장 가방에 챙겨 넣지도 않고 무슨 생각으로 이 곳으로 왔나. 나는 끊임없이 나의 무책임함을 자책하며 이쪽저쪽 골목을 두리번거렸다. 한쪽에 여전히 끼워져 있는 이어폰에서는 내가 언제 이런 곡을 넣어두었나 싶을 만큼 생소한 음악이 흘러나왔고 나는 낯선 풍경과 낯선 음악이 만들어내는 이 당황스러운 상황에 선뜻 더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이어폰을 귀에서 빼냈다.
시간은 낮이었다. 낯설고 사람이 많이 없긴 했지만 분명 지나가는 사람들이 존재했다. 왠지 조금만 더 걸어 나아가면 큰 길이 나올 것 같았고, 혹은 다시 뒤로 돌아가 역으로 들어가 길을 물어보면 그만이었다. 하지만 이상스럽게도 나는 아무런 생각도 이어가지 못한 채 멍하니 길 한복판에 서서 복잡해진 생각을 정리하기 위해 노력하기 시작했다. 마치 시험기간에 책상을 정리하기 시작한 학생처럼, 나는 여행과도 상관없는 여러 가지 기억들을 쓸데없이 정리하기 시작했다. 한국에 돌아가려면 얼마나 남았지? 와 같은 가장 근시일 내의 기억부터 '난 어릴 때 전쟁터와 오지를 다니며 소식을 전하는 기자가 되고 싶었어' 라던지 그때 나에게 다가와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고백했던 얼굴 아니, 이름조차 기억나지 않는 남자의 이름을 생각하려 애썼다. 달리는 기차를 스쳐가는 풍경들처럼 우스웠던 기억, 미간을 찌푸리게 만드는 기억까지 수없이 많은 기억들이 내 옆을 스쳤다. 나는 다시 고개를 휘저으며 눈앞에 보이는 초록색 나무와 차가운 바람, 선명하게 내 앞에 존재하는 건물들을 바라보려 애썼다. 그러자 이젠 길만 찾아도 나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저녁을 보낼 수 있을 것 같다는 자신감과 희망이 샘솟음 침과 동시에, 금세 길을 찾지 못하는, 타국에서 미아가 된듯한 내 처지가 서글퍼져 방금 전까지 머릿속에 떠올렸던 기억들을 다시 모두 리셋해버리고 말았다.
“Are you OK?”
누군가 나의 어깨를 두드렸고 눈앞에는 바싹 마르고 컬러차트의 맨 끝에 자리 잡은 컬러같이 하얀 외국인이 살짝 찌푸린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순간 긴장이 풀린 듯 눈가에 경련이 미세하게 일어났다. 그제서야 나는 정신을 차리고 그에게 길을 잃었으며 내가 가야 하는 곳을 물어보았다. 우습게도 내가 찾고 있었던 호스텔은 골목을 하나 넘어 가 오른쪽으로 돌아서면 보이는 매우 가까운 곳에 존재했고, 그는 기차역 앞에선 흔히 일어나는 상황이라며 나처럼 길 잃은 사람들을 많이 보았다고 했다. 나는 그제서야 겨우 미소를 지으며 그에게 감사의 인사를 건 내고 터벅터벅 길을 걸어갔다. 불안했던 마음은 천천히 사라져 갔고 나의 얼굴에는 어색하고 어이없는 미소가 번졌다. 흐리기 그지없던 하늘과 냉랭한 공기는 한국에서 보았던 엽서 속 잘츠부르크의 몽환적이고 흐린, 이국적인 풍경으로 변모하였다. 세 삼 나는 겨우 몇 분동 안 나의 삶이 송두리째 나락으로 떨어졌다가 아름다워졌다는 것에 황당했다. 몇 분.. 그러고 보니 내 인생은 너무나도 가벼워서 쉽게도 흔들리고 위로 아래로 왕복하기를 수없이 반복했다.
나는 요즘 길을 잃은 듯한 기분에 사로잡혀 하루하루 무기력한 어깨와 눈 위에 한 꺼풀 덧씌워진 회색 빛 눈물 속에서 껌뻑 껌뻑 흐린 시야를 헤엄치고 있다. 문득 잘츠부르크의 역에서 길을 잃었던 기억이 수면을 뛰어오르는 물고기처럼 번뜩번뜩 머릿속을 스친다. 이러다 보면 어느 순간 진짜 눈앞을 또렷이 바라보는 시선과 웃음을 컨트롤하고 울음을 컨트롤하는 정신이란 리모컨을 잃어버릴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스물스물 피어오른다.
어젯밤 서까래가 보존된 한옥의 바에서 좋아하는 달콤한 글렌 모란지 위스키 한잔을 마시며 "서울은 참 좋아, 이런 곳도 있고. 이런 곳 때문에 서울이 좋은 것 같아요."라고 문득 말을 내뱉었다. 그리곤 달큼하게 취해 비틀비틀 계단을 올라 회색의 차가운 문을 열고 냉기가 도는 집으로 돌아왔다. 매섭던 겨울이 한풀 꺾여 봄기운이 얼굴을 잠시 내비쳤다지만, 보일러가 돌지 않는 혼자 사는 집의 바닥과 공기는 몸을 움츠려 들게 만들었다. 술을 마셔 더욱 차가워진 손을 비비며 나는 옷도 갈아입지 않은 체 전기장판을 켜고 침대 이불속으로 숨어들었다.
오늘따라 1년 가까이 산 집이 무척이나 낯설게 느껴졌다. 8년 가까이 걸어온 서울의 길이 섬뜻하리 만큼 새롭게 느껴졌다. 25년을 살았던 부산의 길들이 기억나지 않는다. 잘츠부르크의 회색 빛 역의 낯섦이 고스란히 오버랩된다. 지금 나는 어느 길을 걸어가고 있는 것일까? 마치 미도리를 찾아 부르짖던 와타나베가 서있는 전화부스 속에 나는 서 있는 듯하다. 거기가 어디냐고 묻는 상대의 목소리가 전화기 반대쪽에서 들려오는 것 같다. 이러한 상태를 지속시키며 길을 걸어가다 보면 어느 순간 피로한 내 정신은 '너는 아직 서울의 이방인, 하지만 이제 고향으로 돌아갈 수도 없어.'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타지에서의 삶, 이방인의 무게는 시간이 지날수록 왜? 스스로를 더욱 죄어가며 무거워지는 것일까? 나는 정말 서울이 좋은 걸까? 나는 술냄새가 가득 벤 한숨을 쉬며 하얀 천장의 벽지를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그리고 계속해서 자문했다.
서울에서 산다는 것은 어연 8년이 다 되어도 늘 조금 외롭고, 조금 쓸쓸하다.
익숙해졌다고 생각하며 스스로를 높이 평가하게 되는 순간, 낯선 지하철 노선에서, 푹 고개를 숙인 회색의 사람들 사이에 들어섬과 동시에 순식간에 낯섦에 휘감겨 바닥에 내동댕이쳐진다.
나의 어린 시절을 기억하는 사람이 없는 곳. 나의 유년은 존재하지 않기에 그 어떤 곳도, 그 어떤 사람도 나에게서 그들에게서 첫 번째가 될 수 없는 곳.
지하철을 걷고 있는 사람들보다 한참이나 함께한 시절이 뒤처져 항상 두 번째, 아니 다섯 번째, 그 이후가 될 수밖에 없는 곳.
서울.
고향에서 친구를 만날 때 긴 설명을 하지 않아도 '시내'란 한마디로도 고개를 끄덕였는데, 서울은 시내가 한군 대가 아니라 여러 군대인 곳. 내가 말하는 것을 텔레파시처럼 아는 게 아니라 스무고개 하듯 여러 설명을 덧붙여야 찾아갈 수 있는 곳. 작은 골목골목이 얽혀 순식간에 나를 미로에 빠지게 하고 홀로 가두는 곳. 수많은 사람들 사이에 섞여 계단을 오르다 보면 느껴지는 짭짤한 짠내와 사람들의 입을 통해 뱉어진 찐득한 공기가 오늘을 살아내고 버티기 위한 아우성처럼 느껴지는 곳.
서울에 올라온 후 몇 년은 서울역 앞에 보이는 벽돌색의 서울스퀘어 건물을 보며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 뚜벅뚜벅 정처 없이 앞으로 걸어가는 줄리안 오피의 작품이 마치 제자리걸음 하듯 이곳에 적응하지 못하는 나 같아서, 집으로 가는 버스를 기다리며 눈물 한 줌을 훔쳤다. 역사 앞에서 수없이 구원을 외치며 '하늘의 계신 우리 아버지'를 찾는 사람들을 보며 말 그대로 일용할 양식을 찾아 상경한 나 역시 그들과 같지 않나란 생각을 했다.
이젠 집을 지칭할 때 부산 집, 그리고 우리 집 혹은 내 집이라는 말을 한다. 부모님이 사시는 고향집, 그리고 내가 사는 나의 집을 이제 내 집으로 인정한 걸까. 부산에서 평생 이사 간 것보다 더 많이 옮겨다닌 서울의 집들. 길을 걸을 때 당황하지 않고 높은 담벼락에도 낯설어하지 않고, 고개를 들어 하늘의 별과 달을 바라보는 여유가 생길 즈음이면 늘 쫓겨나듯 옮겨다닌 서울의 집들.
처음엔 외골수적인 성격을 바꾸고 '아는 사람'을 많이 만들려고 안간힘을 쓰며 노력해서 사람들을 만났다. 하지만 결국 그중 핸드폰에만 저장된 번호가 아니라 이름을 입 밖으로 내뱉어 부르는 사람은 몇 남지 않았다. 서울에서도 꽤 좋은 사람들을 만났으나 그 이상으로 나에게 상처 준 사람들이 많았다. 서울에서 꽤 많은 연애를 했지만 그 순간순간의 충만한 만큼의 텅 빈 공간들이 몸속 곳곳에 남았다.
아침에 일어나면 라디오를 켜고, 집에 도착하면 라디오를 켠다. 서울에서 생긴 버릇이다.
잠들기 전까지 라디오를 듣다, 아니 BGM처럼, 백색소음처럼 흘려놓다 잠든다. 가족이 있는 집에서의 적막은 작은 일탈이지만 서울 집에서의 적막은 오롯이 혼자임을 증명하는 것이었기에 나는 언제나 사람의 말소리가 집 안에 베어날 수 있도록 라디오를 켜 둔다. 라디오에서 재잘재잘 사람들의 사연과 그들이 신청한 곡이 흘러나온다. 핸드폰 속 낯선 타인들의 삶의 한 조각과 디제이의 웃음소리가 없었다면 난 서울생활을 버텨내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시끌벅적 소리치는 걸걸한 목소리의 디제이, 드라마 남자 주인공에게 반한 중년의 여성,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고 혼자 커피를 마신다는 여성, 여자 친구에게 프러포즈할 거라는 남자, 시험을 앞두고 라디오를 듣는다는 학생들의 이야기.
아마도 주파수 너머 저마다의 외로움이 나의 외로움과 연결돼 공동체가 됐다는 생각에 그나마 외로움을 잠시 잊을 수 있다.
서울살이의 처음은 돈이 없어 힘들고, 통장 잔고를 보며 울게 만들었다. 첫 월급의 기쁨과 뿌듯함보다는 월세와 공과금, 식비를 계산하기 바빴다. 서울살이의 중간은 사람의 말에 상처 받고, 사람의 행동에 울고, 사람의 배신에 병을 얻었다. 조금 먹고살 만하니 병원비로 재산을 탕진했다. 보험사에게 미안하고 감사할 만큼 보험 실비의 혜택의 수혜자였다. 사람들은 나에게 좋은 아침! 대신 오늘은 괜찮아요?라고 인사를 건넸다. 서울살이의 현재는 수백 개의 버스 노선, 초보자의 뜨개질처럼 뒤엉킨 지하철 노선처럼 바쁘고, 가쁘게 하루를 살아낸다. 몸은 한층 건강해졌지만 빠르게 흘러가는 시간만큼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내가 무엇을 꿈꾸는지,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를 잊어간다.
나는 진짜 서울을 좋아하는 것일까? 나는 결국 답을 찾지 못한 체 취기와 두통을 안고 함께 잠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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