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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경이로운 May 29. 2019

대한민국 최초의 역주행 곡


발표된 지 한참이나 지난 노래가 음원차트 순위권에 오르는 현상을 두고 흔히 ‘역주행’이라고 말한다. 대표적인 역주행 노래로는 한동근의 <이 소설을 다시 써보려 해>, EXID의 <위아래>가 있다. EXID의 경우, 하니의 직캠 영상이 유튜브에서 뒤늦게 인기를 끌면서 노래 역시 관심을 받게 되었다. 한동근의 곡은 노래를 잘하는 한 일반인이 올린 영상이 SNS에 퍼지면서 원곡의 인기도 덩달아 올라갔다.     


요즘은 음악을 들을 수 있는 채널이 다양해진 것은 물론 유튜브 혹은 음원사이트를 통해 아주 오래된 노래도 쉽게 찾아 들을 수 있기 때문에 역주행이 그리 놀랄 만한 일은 아니다. 하지만 MP3는 둘째치고 휴대폰도 상용화되지 않았던 1990년대 초반, 지금보다 음악을 다채롭게 들을 수 없었던 그 시절에 어떤 노래가 역주행했다고 하면 그건 완전 기적 그 자체라고 말할 수 있다.  실제로 발표된 지 한참이 지나서야 인기를 끌게 된 노래가 있었는데 이 곡은 당시 최고의 인기를 누렸던 서태지와 아이들까지 제쳤다고 한다. 과연 어떤 노래이길래...?          


"그대 앞에서만 서면 나는 왜 작아지는가 그대 등 뒤에 서면 내 눈은 젖어드는데"    



애달프디 애달픈 노랫말이 가슴을 울리는 김수희의 <애모>란 곡이다. 아마 기성세대들에겐 슬픈 옛사랑을 떠올리게 하는 노래가 아닐까 싶은데 사실 이 곡은 1991년에 발표했지만 1993년이 돼서야 대중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인기곡이 되었다. 지금으로부터 거의 30여 년 전 일이니 역주행의 조상, 역주행의 시초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 이 곡이 얼마나 대단한지 실감하기 위해선 한국 대중가요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갈 필요가 있다.     


우리나라는 식민지 시절, 일본 엔카의 영향을 받아 흔히들 뽕짝이라 말하는 트로트가 무려 1930년대부터 유행했다. 1960~70년대에 로큰롤의 황제 엘비스 프레슬리의 영향으로 남진의 <님과 함께>와 같은 펑키한 곡들이 발표되기도 했고, 한때 미국에서 물 건너온 디스코 음악에 열광하기도 했지만 한국 대중음악을 대표하는 장르는 오직 ‘트로트’ 뿐이었다.    

  

                                        


한국 음악시장을 영원히 주름잡을 것만 같았던 트로트는 1980년대 중반이 지나서야 그 기세가 꺾이기 시작했다. 대한민국 음악시장 판도를 단숨에 뒤바꾼 여가수가 등장했기 때문인데 파워풀한 춤을 추며 어둠이 무섭다고 노래한 김완선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데뷔하자마자 센세이션을 일으킨 김완선을 필두로 소방차, 박남정 같은 댄스가수들이 연달아 등장했고 1992년, 드디어 한국 대중문화의 아이콘 ‘서태지와 아이들’이 데뷔했다. 그때부터 한국 음악 시장의 우위는 트로트가 아닌 가요가 선점하게 되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댄스가수들이 한창 활약하고 있을 때 발표된 김수희의 <애모>는 주목을 받고 싶어도 받을 수가 없었다. 그런데 웬걸, 예상치 못한 시기에 이변이 일어났다. 1993년, 서태지와 아이들의 <하여가>를 꺾고 <애모>가 가요 톱 10(현 뮤직뱅크)에서 1위를 차지한 것이다. 당시 서태지와 아이들은 4주 연속 1위를 달리고 있었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한 주만 더 1위를 하면 5주 동안 1위 한 가수에게만 주는 골든컵을 수상하는 명예를 얻을 수 있었다고 하는데 아쉽게도 김수희의 <애모> 때문에 골든컵을 받지 못했다고 한다.    

 



대중가요가 큰 인기를 끌던 시기에 트로트 곡이었던 <애모>가 역주행하게 된 배경은 무엇일까? 아마 1980년대부터 90년대 후반까지 성행했던 ‘길보드 차트’ 덕분이 아닐까 싶다. 사람들은 번화가를 걷던 중 리어카나 노점상에서 들려오는 김수희의 구슬픈 목소리에 반해 불법 카피된 카세트테이프를 샀을 테고, “애모 좋다더라~” 하는 입소문이 차차 퍼지면서 우리나라 최초의 역주행 곡이 탄생된 게 아닐까 예상해본다.


                                


30여 년 전의 일에 대해 굉장히 잘 아는 것처럼 이야기를 했지만 사실 난 이제 갓 서른을 넘긴 처자다. 이 노래가 유행했던 그 시절을 기억할리 만무하다. 하지만 어렴풋이 생각나는 장면은 아주 어렸을 때 아버지의 차 안에서 항상 이 노래를 들었다는 것이다. 아마 우리 아버지도 그때 당시, 대세에 따라 이 노래를 즐겨 들으셨던 것 같은데 난 그때의 우리 아버지 나이가 돼서야 이 노래의 진가를 알아볼 수 있게 되었다. 사랑하는 사람 앞에서 한없이 작아짐을 느끼고 또 그 사람의 뒷모습에 눈물이 난다는 가사는 많은 이들의 공감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하다.     


명곡은 시대를 초월하고 세대를 거스르는 법이다. 그러한 맥락에서 봤을 때 김수희의 <애모>는 발표된 지 오랜 시간이 흐른 지금도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고 있으니 단순히 역주행 곡이라고만 말할 순 없다. 이 곡은 한국 대중음악 역사에 길이길이 남을 명곡임이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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