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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경이로운 Jun 24. 2019

홍콩에 울려 퍼진 '임을 위한 행진곡'

지난 6월 초, 홍콩으로 여행을 다녀왔다. 며칠이나마 다른 나라를 경험해본다는 건 분명 매력적인 일임이 틀림없지만, 길치인 데다 겁까지 많은 내가 홍콩을 제대로 즐길 수 있을까 걱정이 되기도 했다. 특히나 내가 여행을 하는 기간 내내 홍콩에 비가 온다는 소식이 있어서 출발 전부터 설렘보다는 짜증이 앞섰다. 하지만 걱정과는 달리 난 새로운 여행지에서 매우 잘 적응했는데 홍콩의 모습이 내가 오래 살았던 서울과 굉장히 닮아, 낯설다는 느낌을 전혀 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서울보다 약 1.8배 정도 큰 면적을 갖고 있는 홍콩의 인구는 740만 명이다. 세계에서 인구 밀집도가 가장 높은 나라 중 하나인데 땅은 좁고 인구는 넘쳐나니 적은 면적으로도 많은 사람을 수용할 수 있는 고층건물이 빽빽하게 들어서 있다. 어둠이 내리기 시작할 때쯤이면 그 고층건물들은 저마다 자신들의 용모를 뽐내기라도 하듯 하나하나 불을 밝히기 시작한다. 한 밤중이라는 사실 조차 잊게 만드는 화려한 불빛들을 보고 있자니 별들이 소곤대는 홍콩의 밤거리란 노랫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비슷한 듯하면서 서울과는 다른 매력을 가진 홍콩. 난 처음 와보는 곳인데도 불구하고 홍콩이 왠지 친근하게 느껴졌다. 도시보다는 한적한 시골로 여행하는 걸 좋아하는 나지만 홍콩은 다시 한번 꼭 와보고 싶을 정도로 나에게 좋은 기억들을 심어주었다.


3박 4일의 일정을 마치고 한국에 돌아온 후, 난 여행의 여운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인터넷을 뒤적이며 홍콩 여행을 검색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뜻밖의 뉴스를 접하게 되었는데 홍콩에서 반중시위가 일어나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시위에 참여한 시민만도 무려 100만 명이 넘는다고 했다. 홍콩의 인구가 740만 명이라는 걸 감안할 때 시민 100만 명이 거리에 나왔다는 것은 어린아이와 노인을 제외한 대부분의 사람들이 시위에 참여했다는 걸 의미한다. 난 홍콩 시민들이 이토록 분노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했다.



홍콩인들의 시위에 나서게 된 건 홍콩 정부가 제정하려는 '범죄인 인도 법안' 때문이었는데 대만에서 발생한 한 살인사건이 법안을 추진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 


지난해 2월, 홍콩 국적을 가진 한 커플이 대만으로 여행을 떠났다. 남녀 싸움이 으레 그렇듯 사소한 일로 두 사람은 말다툼을 하기 시작했고, 싸움이 커져 결국 남자는 여자친구를 살해하기에 이른다. 남자는 곧 체포되었지만 홍콩법은 다른 나라에서 발생한 살인에 대해서는 죄를 처벌할 수 없어 남자는 죽은 여자의 신용카드를 쓴 죄로만 처벌받고 살인죄로는 처벌받지 않았다. 


홍콩 정부는 앞으로도 이런 일이 발생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인지하고, 해당 사건을 처리하기 위해 '범죄인 인도 법안'을 만들었다. 법안이 통과되면 중국, 마카오, 타이완 국적의 사람이 홍콩에서 살인죄를 저질러도 본국으로 송환돼 처벌받을 수 있게 된다. 살인을 저지른 사람을 처벌하는 건 당연한데 왜 홍콩 시민들은 이 법안이 통과되는 걸 반대하는 것일까? 이 문제에 대한 답을 알기 위해선 홍콩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갈 필요가 있다.



1841년, 중국은 영국과의 아편전쟁에서 패배한 후 홍콩을 빼앗기게 된다. 이에 따라 홍콩은 영국의 식민지가 되었는데 1900년대 후반에 접어들수록 중국의 국력이 커지면서 영국도 계속해서 홍콩을 지배하겠다고 우길 수만은 없는 상황이 되어버렸다. 결국 영국은 울며 겨자 먹기로 1997년, 중국에 홍콩을 반환하였고 홍콩은 식민 통치 155년 만에 비로소 독립을 맞게 된다. 홍콩인들 입장에선 잃어버린 조국의 품에 안기게 되었으니 기뻐야 하는 게 당연. 하지만 오히려 중국에 대한 거부감을 나타냈다. 오랜 시간 영국의 민주주의 통치 하에 자유와 번영을 누렸는데 이제 와서 중국의 공산당 통치를 받으라니 어떤 사람이 좋아할 수 있겠는가. 중국 역시 홍콩을 자국으로 다시 편입시키기 위해선 시간이 필요하다고 판단, 홍콩을 특별행정구로 지정해 2047년까지는 너네들 스스로 나라를 운영해보라며 자치권을 부여한다. 


홍콩이 중국에 완전히 귀속되기 까지 29년이라는 시간이 남았고, 그때까지 중국은 홍콩을 하나의 국가로 인정하고 내버려 두는 게 마땅하다. 하지만 공산주의를 거부하고 민주주의를 갈망하는 홍콩 시민들을 보면 중국 입장에서는 홍콩을 그냥 내버려둘 수만은 없다. 실제로 중국은 호시탐탐 홍콩에 대한 지배력을 강화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데 홍콩 시민들은 '범죄인 인도 법안'이 시행될 경우, 중국 정부가 이 법을 악용해 살인자뿐 아니라 홍콩에 있는 인권 운동가나 반중 인사들까지 중국에 송환시켜 처벌하는 건 아닌지,  또한 홍콩에 대한 중국의 간섭이 강화되지 않을지 우려하고 있다. 그 공포심은 결국 시위로까지 이어졌고 수많은 홍콩 시민들은 거리에 나와  '범죄인 인도 법안' 철회를 외쳤다. 


홍콩 정부도 마지못해 ‘범죄인 인도 법안’을 무기한 연기하겠다고 발표했지만 홍콩 시민들은 이제 이 법안을 추진한 홍콩 행정장관의 퇴진을 요구하며 시위를 계속 이어나가고 있다. 재밌는 점은 홍콩 시민들이 5·18 광주 민주화운동을 상징하는 민중가요 <임을 위한 행진곡> 부르며 시위에 나서고 있는 것이다. 겉으로는 행정장관의 퇴진을 요구하면서도, 사실은 우리나라처럼 진정한 민주국가를 이륙하고 싶은 게 아닐까 생각이 든다.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홍콩이 중국으로부터 독립해 민주화를 이루길 응원한다. 하지만 홍콩을 포기할 수 없는 중국의 입장도 100% 이해가 간다. 그도 그럴 것이 중국이 영국에 홍콩을 뺏겼던 1841년, 그때 당시만 해도 홍콩은 아주 보잘것없는 작은 섬에 불과했다. 하지만 지금의 홍콩은 아시아의 금융허브뿐 아니라 물류 허브로써 큰 위상을 떨치고 있다. 중국 입장에서도 홍콩을 쉽게 포기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홍콩 역시 155년 동안 민주주의 체계 하에 살아왔는데 한 순간에 중국에 편입되어 중국인으로 살아야 한다는 사실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할 것이다.


홍콩이 중국으로 편입될지, 홍콩이 중국으로부터 독립할지 두 나라 간의 합의에 달렸다. 하지만 오랫동안 영국의 식민 지배를 받고, 이제 좀 살만 하니까 중국의 지배를 받아야 하는 홍콩인들을 보니 그저 안타까운 마음만 든다. 과거에 일제 식민지 시절을 겪고 광복 후에도 미국의 통치를 받은 우리나라의 상황과 비슷해 보이기도 하는데 비참했던 식민지 시절을 극복하고 민주화의 꽃을 피운 우리나라처럼 홍콩 역시 그렇게 되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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