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보면 유난이라고 말할 수 있겠지만
난 어릴 때부터 유독 일본을 싫어했다.
중학교 1학년 때, 수업시간에 위안부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나서부터 그랬던 것 같은데
그 이후로는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자발적으로
일본 제품 불매운동을 하고, 주변 지인들이 일본 여행을 떠날 때도
난 절대로 일본은 가지 않겠다고 굳게 다짐했었다.
하지만 끝내 그 다짐을 지키지 못했으니
올해 초, 다큐멘터리 영화 <우키시마호> 작가로 합류하게 되면서
일본으로 촬영을 가게 되었기 때문이다.
우키시마호는 지금으로부터 74년 전,
강제징용 조선인들이 탔던 배가 폭침된
<우키시마호 사건>을 기반으로 한
다큐멘터리인데 74년 전 발생한 사건을
바탕으로 한 진실규명 영화라고 말할 수 있다.
지난 9월 19일 날 개봉을 했지만
안타깝게도 일주일이 지난 지금은 상영을 하는 영화관이 거의 없다.
이 영화에 참여한 작가로서 굉장히 아쉽고,
내가 좀 더 잘했으면 더 많은 사람이 영화를
보지 않았을까? 하는 죄책감도 드는데
사실 이 영화를 하면서 흥행보다는 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우키시마호 사건에 알게 되길 하는 마음으로
임했기 때문에 벌써부터 실망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상영이 막바지에 다른 지금도
감독님과 나, 그리고 우리 스텝들은
우키시마호 사건 자체를 더 많은 사람에게
알리기 위해 여러 가지 방면으로 노력하고 있다.
https://www.asiae.co.kr/article/2019092016501453818
이 영화에 관련된 역사적 사실을 말하자면
일본이 2차 세계대전에서 패한 1945년 8월 15일,
일본의 항복 선언과 동시에 우리나라는 식민치하에서 벗어나 광복을 맞게 되었다.
이와 동시에 일본 내에 거주하던 강제 징용인들의 본국 송환 작업도 이루어졌는데
당시 일본 해군성은 일본 아오모리현
시모키타 반도에 거주하던 조선인 만여 명을 우키시마호라는 배에 태워
돌려보내라는 명령을 내린다.
이 배는 1945년 8월 22일 일본 오미나토항을
출발, 3일 뒤 한국 부산항에 도착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출항 직후, 부산으로 향하는 항로 대신
일본 해안선을 따라 내려왔고
이틀 후인 8월 24일 일본 중부 연안에 있는
마이즈루항에서 폭발 침몰돼버렸다.
이 사고로 인해 8천여 명에 달하는 한국인들은
낯선 타국의 바닷속에 수장돼버렸다.
수많은 희생자를 낸 사고임에도 불구하고
우키시마호 침몰 원인은 아직까지 밝혀지지 않고 있다.
일본은 기뢰에 의한 사고라고 주장하고
당시 배에 탔던 한국인 생존자들은
일본 해군이 고의적으로 배를
폭침시켰다고 주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과연 진실은 무엇일까?
우키시마호 작가로서 수개월 간 사료를
수집하고 역사학자를 만나고
생존자 및 후손들을 인터뷰한 결과,
나는 우키시마호가 일본 해군에 의해 폭침되었다고 확신한다.
(영화 스포가 될까봐 자세한 이야기는 비밀..)
문제는 법정에서 효력을 발휘할 증거가 부족하다는 것이다.
영화 제작과정에서 만난 어느 교수님은
생존자들의 증언은 증거가 될 수 없고
실질적으로 증거가 될 만한 단서들은 세상에
없거나 만약 있더라도 구하기 힘들다고 했다.
우키시마호가 폭침당한 일본 마이즈루만에 가면
혹시 단서를 찾을 수 있진 않을까?
평생 일본을 가지 않으리라 다짐했던
나는 74년 전, 의문의 폭침 사고에 대한
진실을 풀기 위해일본 교토부에 있는 마이즈루만으로 향했다.
내가 일본에 방문한 건 일본의 골든위크 기간이었던 5월 초..
미세먼지로 뒤덮인 우리나라와 달리
일본의 하늘은 무척이나 맑고 예뻤다.
특히 일본의 작은 항구도시인 마이즈루만은
조용하고 아늑했으며 사람들도 참 친절했다.
이번 촬영이 일본을 가는 처음이자
마지막이라고 생각했던 나지만
쓰레기 하나 없는 깨끗한 거리와
아기자기한 상점들을 보니 언젠가 한 번 여행 삼아
이곳에 다시 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사람은 망각의 동물이라더니..
아마 나를 두고 하는 말인 듯싶다.;;;
평화롭기만 한 마이즈루만의 정취를 즐기다보니
어느새 촬영스텝들을 태운 택시는
우키시마호가 침몰한 지점에 다다랐다.
사진으로만 보았던 장소...
실제로 가보면 어떤 느낌일까 항상 궁금했는데
74년 전, 조선인 수천 명이 목숨을 잃은 곳이라
하기엔 너무나도 평온했다.
특히 주변 곳곳에 낚시를 즐기는 사람도 있었는데
촬영팀이 낯설지 않은 듯 우리에게 아무런 관심도 보이지 않았다.
하긴... 일본 NHK에서도 우키시마호에 대한
다큐를 방영했었고
최근 몇 년 간 우리나라 방송에서도
우키시마호 사건을 많이 보도했으니
촬영이나 인터뷰를 요청하는 한국인들을
많이 볼 수 있었을 것이다.
나는 무관심한 일본인들을 보면서
우리나라에서는 기록에도 없는 역사를 밝히고자 노력하고 있지만
정작 이 곳 사람들은 그 일에 관심 조차 없다는 게
이해가 되면서도 한편으로는 왠지 모르게 씁쓸했다.
하지만 마이즈루만의 시민들 중 일부는 여전히 우키시마호에 대해 기억하고
희생자들을 추모하고 있다. 특히 배가 폭발 침몰한 지점 근처에는 희생된 조선인들을 기리는
순난자의 비가 세워져 있는데 이 지역 시민들이 십시일반 돈을 모아
세운거라고 한다.
우키시마호가 폭침하고 수십년 뒤에 세워진 이 추도비는
그때 당시 상황을 생생하게 재현하고 있는데
추도비에 조각된 조선인들의 눈은 우키시마호가
폭침된 마이즈루만 바다를 응시하고 있다.
말도 안 되는 생각이지만 왠지 저 추도비에 조선인들의 영혼이 살아 숨 쉬고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이들은 아마 74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해방된 조국을 돌아갈 날만을
기다리고 있지 않을까?
마이즈루만 마을에는 우키시마호 사건을 기억하는 노인들이 있었다.
나는 촬영을 하면서 74년 전,
물에 빠진 조선인 구조에 나섰던 사람들과
조선인들의 유해를 눈으로 목격한 마을 주민들을 만날 수 있었는데 그들은 나이가 족히 7,80은
돼보이는 어르신들이었다.
만약 우키시마호 사건이 가까운 시일 내에
진상규명이 되지 않는다면
이 사건을 목격하고 기억하는 이들은
모두 세상을 떠나고 증언을 해줄 사람도
남아있지 않을 것이다.
실제로 우키시마호에서 간신히 살아 돌아온
생존자만 해도 겨우 두 명밖에 남지 않았다.
한 분은 백세를 바라보고 있고 한 분은 13살 때 배를 타서
이제 아흔을 앞두고 계신다.
이분들이 살아계시는 동안
우키시마호 폭침 원인이 규명되고
나아가서 일본 정부의 사과와 배상을 받는 건
너무 큰 욕심인 걸까?
최근 몇 달 사이, 급격히 악화된 한일관계는
지난 6월, 현 정부가 일본에게 제안한
한 가지 제안 때문이다.
문 대통령은 일본 정부에게
과거 조선인들을 강제 동원해 노역을 시킨 일본 기업(일본제철, 미쓰비시 중공업 등)
그리고 한일협정 당시 일본이 건넨 경제협력자금을 지원받은 국내 기업으로부터 돈을 공동 출자해
강제 징용 피해자들에게 위로금을 지급하자고 했다.
하지만 일본은 말도 안 되는 소리라며
반도체 수출 제한 조치까지 감행하고
한국을 화이트리스트에서 제외하기까지 했다.
살얼음판을 걷고 있는 한일관계를 두고
일부 사람들은 한국의 경제발전을 위해서는
일본이 꼭 필요하고, 그렇기 때문에 일본에게 과거 문제를 걸고넘어져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물론 그들의 말도 일리는 있다.
하지만 잘못된 역사를 되돌아보고 바로 잡지 않으면
그 역사는 똑같이 반복될 뿐이다.
일례로 1592년 임진왜란 이후,
우리나라가 다시 일본에게 침략당할 거란 걸
예상한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300여 년이 지난 후
일본에게 침략당하고 일본의 식민지가 되었다.
이 일만 보아도 역사는 반복된다는 걸
충분히 알 수 있지 않은가...
특히, 현재 일본 아베 총리가 일본을
군대를 보유할 수 있고
전쟁을 할 수 있는 국가로 만들기 위해
헌법을 개정하려 애쓰고 있는 걸 보면
과거의 비참한 역사는 어떤 식으로든 다시 되풀이될 수 있다.
일본은 우리나라가 점유하고 있는 독도를 빼앗기 위해 무력을 행사할지 모르고
간접적으로 자신들이 보유한 군대와 군사력으로
우리를 위협할 수도 있는 것이다.
누군가는 내 글을 읽고 반대의견을 표할 수도 있지만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는 법이다.
일본을 좋아하고 싫어하고는 개인적인 자유지만 그래도..
과거 우리 민족이 겪은 비참한 역사만큼은
알고 있고 기억해야 하지 않을까..?
이 글에선 우키시마호 사건만 언급했지만
위안부를 비롯해 일본이 과거 우리나라를
상대로 자행한 만행들이
하루빨리 사과를 받고 진실이 규명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