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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경이로운 고작가 Jul 09. 2020

안재모를 봤으니 그걸로 족해

2002년, 대한민국을 강타한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월드컵, 또 하나는 바로 드라마 <야인시대>다. 당시 여중생이었던 나는 월드컵이 열린 6월엔 거리에 나가 밤늦게까지 응원을 하고, 8월 즈음에는 <야인시대>에 푹 빠져 본방은 물론 재방, 삼방까지 봤던 기억이 난다.


https://www.youtube.com/watch?v=4B-8-rMeWjA


내가 <야인시대>를 좋아했던 이유는 스토리 자체가 워낙 재미있어서도 있지만 극 중 김두한으로 출연한 안재모의 광팬이었기 때문이다. 드라마 속에서 많은 이들을 휘어잡는 리더십과 화려한 무술 실력에 반해 "나도 김두한처럼 될 거야"라고 공공연히 말하고 다녔는데 지금 생각하면 안재모란 배우는 당시의 나에게 아마 우상과도 같은 존재가 아니었나 싶다.


그렇게 내 학창 시절 추억 한 부분을 자리하고 있는 배우 안재모. 그를 간간히 TV에서 볼 때마다 반갑기도 하고 또 몽골에서 인기가 많다는 소식을 접할 땐 내 일처럼 기쁘기도 했는데 내 진심 어린 팬심이 통했던 걸까? 오랜 시간이 흐른 후, 난 그를 직접 만나게 될 기회를 얻게 되었다.


지난해 여름, 나는 극장에 개봉할 다큐멘터리 영화작가로 일하고 있었다. 편집도 마무리되고 내레이션 원고 작업도 끝나가는 상황이라 더빙할 사람만 섭외하면 됐었는데 예상치 못한 난항에 부딪혔다. 영화 내용이 일제 강점기를 다룬 내용이라 접촉했던 배우와 성우 몇몇이 거절 의사를 밝혔던 것이다. 그들은 일본을 비판하는 영화에 참여했다가 자칫 옆 나라 활동에 차질이 생기진 않을까 조심스러운 태도를 보였다.


연예인이란 게 인기를 먹고사는 직업이니 만큼 그들의 마음을 이해 못하는 건 아니었으나 이렇게 다 외면하기만 하면 우리 아픈 역사는 누가 기억해주나 속이 상했다.


개봉일은 점점 다가오고, 누구에게 내레이션을 부탁해야 할지 고민하던 그때. 회의 중에 누군가의 입에서 '안재모'라는 이름이 나왔다. 다들 좋다는 반응이었고 나는 고민할 것도 없이 찬성표를 던졌다. 다행히 안재모 배우님은 바쁜 와중에 아주 흔쾌히 내레이션에 응해주셨다.


http://mksports.co.kr/view/2019/683352/


더빙이 있던 날, 안재모 배우님은 내게 악수를 청하며 영화가 꼭 대박 나기를 바란다고 응원을 해주셨다. 사람은 믿고 싶은 것만 믿는다는데 그분의 신뢰감 넘치는 용모와 목소리 덕분인지 정말 대박이 날 것만 같았다. 영화 개봉 전부터 언론사에서 많은 관심을 받았고 또 감독님께도 인터뷰 요청이 쏟아졌기 때문에 안 될 거란 생각은 추호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너무 큰 기대를 했던 걸까? 막상 개봉을 하고 보니 영화관에서는 관객이 별로 없다며 하루 이틀 만에 상영을 중단하기 시작했다. 영화 시작을 앞두고 예매한 사람이 딱 한 명뿐이라는 이유로 상영을 취소한 곳도 있었다.


상영관이 점점 적어지다 보니 영화를 보고 싶어 하는 사람들은 오랜 시간 운전을 하고, 내 지인은 고속버스를 타고 다른 지역으로 넘어가 영화를 보는 말도 안 되는 상황이 벌어졌다. 관객들을 조금이라도 늘리고자 친척, 친구들을 동원하고 사비를 털어 공짜 예매도 해주었지만 결국 나의 첫 영화는 순식간에 극장에서 사라졌다. 개봉한 지 불과 열흘 만이었다.


영화를 위해 서울로 이사까지 오고, 1년여 가까이를 영화 작업에만 몰두했던 난 말할 수 없는 실망감과 아쉬움을 느꼈다. 함께 일한 스텝들에게도 미안한 마음이 컸는데 내가 작가로서 좀 더 잘했다면 상황이 달라질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죄책감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 후 나는 한동안 힘든 시간을 보냈다. 퇴근 후,  불 꺼진 방 안에서 멍하니 누워있다 잠들기가 일쑤였고 갑자기 정신이 번쩍 들 때는 영화를 다시 보며 왜 실패했는지 원인을 찾으려고 애를 썼다. 사람들과도 잘 만나지 않았는데 마음의 여유가 없었던 것도 있지만 행여나 영화는 잘 됐냐고, 관객은 몇 명이나 왔냐고 물어볼까 봐 두려웠던 건지도 모른다.


그렇게 한참을 의욕 없이 살아가던 나는 아픈 마음도 달래고 오랜만에 휴식도 취할 겸 고향에 내려갔다. 1년여 만에 만난 중학교 친구는 엄지를 치켜세우며 영화 너무 잘 봤다고, 친구로서 내가 자랑스럽다고 말해주었다. 난 그 말이 하나도 기쁘지 않았다. 관객 수가 너무 적어서 많이 속상했고 그게 다 내 탓인 것만 같다고 솔직한 마음을 털어놓았는데 친구는 위로 대신 코웃음을 쳤다.


"대박 나기가 쉬운 줄 아냐? 욕심도 커. 네가 좋아하는 안재모 본 걸로 만족해"


그 말을 들은 난 '남일이라고 쉽게 말하냐?' 한마디 톡 쏘아붙였지만 사실 친구 말이 맞았다. 한 해에 수천 편의 영화가 제작되는 대한민국에서 대박 나는 영화는 한 손가락에 꼽을 정도이니 첫 술에 대박을 바랐던 나의 욕심은 과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친구 말처럼 어릴 적 우상을 만난 것도 아무나 경험할 수 없는 대단한 일인데 그 부분에 대해선 전혀 감사해하지도 않고 있었다.


난 친구와의 만남을 계기로 영화에 대한 아쉬움을 조금은 내려놓을 수 있게 되었다. 마음을 편히 가지니 좋은 소식도 들려왔는데 독립영화나 예술영화를 상영하는 작은 영화관에서 뒤늦게라도 영화를 상영해주겠다는 곳이 나타났고, 국제영화제에서  수상까지 하게 된 것이다.


우리는 흔히 어떤 일에 실패하면 모든 게 끝이라고 생각한다. 나 역시 그랬기 때문에 한동안 힘든 시간을 보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실패라고 해서 늘 안 좋은 결과만 낳는 건 아니다. 실패를 통해 몰랐던 걸 배울 수도 있고, 내가 안재모 님을 만난 것처럼 경험하지 못한 걸 경험할 수도 있고, 또다시 도전할 수 있는 기회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제 난 누군가 내 영화 성적에 대해 물어보면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잘 안됐어. 근데 안재모 봤으니 그걸로 만족해"


https://brunch.co.kr/@missko94/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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